2024.01.09
지난 연말, 몇 년 만에 참석한 대학원 지도교수님과의 연말모임 자리에서 선생님이 곧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출국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스레 여행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는데 “이제 먹을 것도 한국이 최고야. 여기 앉아 먹는 이태리 음식이 제일 맛있는데 뭘.” 하시던 말씀. 가만 듣고보니 맞다. 여기저기 현지에서 먹는 그나라 음식이 제일 맛있다 하지만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이제 한국에서 셰프의 훌륭한 손으로 만들어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러고보니 새삼 “미식여행”이라 이름 붙이고 떠날 나의 이번 주말 홍콩 여행이 우습게—우스꽝스러운 건 아닌 재미있게—여겨진다. 요즘처럼 먹을 것 다양한 우리나라의 모습이 언제 있었나.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들, 여행 때나 맛보던 요리나 디저트들이 백화점 지하, 어느 동네 골목에 가면 다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심지어 택배로 무엇이든 집에서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홍콩의 제니베이커리 쿠키는 직구로 며칠 안에 받아보니 여행 기념품이라고 사올 품목도 이젠 없다.)
말이 미식여행이지 딱히 목적없이 그냥 좋은 사람들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기 위한 여행이다. 예전같이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가 궁금해 가는 것도 아니고 보기 어려운 높은 빌딩에 우와 감탄할 것도 아니고. 대단한 유적지나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예약해 떠난다. 적절한 비행시간 (비행이 길면 나는 비행기 멀미로 심호흡을 만 번씩 해야 한다), 시차 없는 멀지 않은 거리, 영어와 중국어가 통하니 크게 의사소통에 걱정없는 문화권. 그저 “떠남”이 목적인데 약간의 “다름”을 구경하기 위해 해외로 가는 여행. 이처럼 “여행하는 인간”에 부합하는 모습이 또 있을까.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있자니 나는 어떤 연유로 무엇을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나 생각하게 된다. 일상에서의 벗어남, 그것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예전 같은 물욕도 없어 쇼핑에도 시큰둥하고,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다. 아이들 없이 떠나는—두 아이를 놓고 여행가기는 처음이다—시끌벅적한 하루하루가 사라지는 시간. 일상의 부재를 꿈꾸며 떠나는 중년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