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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숨 Dec 19. 2023

그냥 살지요

2023.12.19

오전엔 병원에 다녀왔다.

1년에 두 번, 많게는 네 번 정도 피를 뽑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가 담당의를 만나고 온다.


3-4개월에 한 번씩 가다가 요근래 들어서는 6개월에 한 번씩 갔으니 

얼굴을 잊을만하면 만나는 의사선생님이다.


산정특례를 연장하기 위해 이미 지난 주에 복부초음파도 찍고 피도 미리 뽑고,

오늘은 진료만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주차장을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예약 시간보다 늦어 

주차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었다.

뛰면서도 

'여기서 이렇게 뛰어다니는 진료 환자가 나말고 또 있으려나' 싶게 숨이 가쁘도록 뛰었다.



5년 전, 

둘째를 낳고 이미 임신 중에 알던 혈소판증가증 때문에 혈액내과를 들락거리다가 골수검사를 받았다.

딱히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라 큰 염려는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심각한 병은 아니다.

뭐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다.


골수검사를 받을 때, 

커튼으로 가려진 옆 침대 아저씨가 하도 비명을 질러대니 조금 무서워서

"많이 아파요? 애 낳는 것보다 아파요?" 물어보니

그때 의사가 웃으면서 "애도 낳아 봤으면 이건 하나도 안아파요." 했다.

사실 아이를 낳을 땐 무통주사를 맞은 후론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었으니 그 전 진통을 생각하고 말한 건데,

역시나 골수에 맞는 주사는 그냥 좀 뻐근한 정도였다.

(그보단 정형외과에서 발등에 맞아본 충격파치료가 오백 배는 아팠다.)




나름 "암"으로 분류되는 병이고, 

산정특례 적용을 받아 진료비가 비교적 싼 혜택도 받지만

일상생활에서 통증이 있다거나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언제 진행될지 모르는 위험이 있는

그야말로 폭탄을 안고 사는 그런 정도랄까.

평소엔 째깍째깍하는 폭탄의 시계음도 못느낄 정도로 멀쩡히 살아간다.



다른 결과는 다 비슷비슷한데 

오늘은 이전보다 빈혈수치가 안좋다고 3개월 후에 보자는 얘길 듣고 왔다.

평소 한 알씩 먹던 철분제는 두 알로 처방을 받았고.

이 또한 크게 신경쓰이진 않지만—아마도 피 뽑은 날 생리중이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꼬박꼬박

약은 잘 먹어야지.



아무래도 내가 다니는 과가 종합병원에나 있는 혈액내과이다보니 아픈 환자를 많이 본다.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마음이 좋지 않다.

웬만하면 이어폰 끼고 영상을 보거나 다른 이들을 보지 않고 볼일만 보고 나오곤 한다.


내가 아직 혼자 거뜬히 운전하고 보호자 없이 씩씩하게 뛰어다닐 수 있어 다행이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참 딱 이만해서 다행이다 싶은 병들을 안고 산다.

이어령선생님이 말년에 투병이 아닌 친병이라 하셨던가.

딱히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함께 해야 하니 운명인가 보다 하고 같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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