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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숨 Dec 01. 2023

옛날 이야기

2023.11.17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는 첫째에게 너무 하나의 이야기만 편식하지 않도록 다른 신화를 보여주고자 남편이 이런저런 신화 책을 사왔다. 마침 문학동네에서 어린이를 위한 세계 신화 시리즈가 나와 네다섯권을 묶음으로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읽기 전, 나도 잘 모르는 신화들을 익히기 위해 하나씩 읽어보는 중이다. 한국의 신화도 이전에 간단히 읽었으나—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신기한 할멈과 도령 이야기들—다른 “유명” 문명의 신화는 뭐랄까 스케일이 다르다. 그나마 조금 낯익은 이집트 신화는, 영화나 소설에서 들어본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아누비스 신이 등장하니 이름이 일단 익숙하다. 신화라는 것이 그렇듯 정리된 한 가지 정설만 있는 게 아니라서 전해지는 이야기마다 세부적인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고도 하는데 그 덕에 전체 그림을 그려보고자 하면 오히려 족보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복잡하다. (심지어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도 세계 창조에 참여한 탑티어 신이었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기도 하고 여러 “버전”이 있으니.) 보통 신화라는 것들이 공통적으로 그렇듯이 이집트 신들의 세계에도 신들의 서열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분열 화합 배신 음모 등이 마구 얽혀 있다. 

그리고는 마블의 영화 토르나 로키로 요근래 친근해진 북유럽 신화. “에다“라는 이름의 신화 역시 창조부터 세계의 종말 그리고 다시 재건의 희망까지 방대한 스케일이다. 포스트아포칼립스까지 나오는 신화라니. 어디 저작권을 지급할 필요도 없이 이런 세계관을 이야기로 가져왔으니 거저 먹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인도 역시 만만치 않은 복잡함을 자랑하는데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신들이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대학원 시절 종교학 쪽 수업을 들을 때, 인도는 현대에도 여전히 신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끈다며 짧은 영상들을 봤던 게 생각났다. 푸른 색의 몸을 가진 라마 왕자, 그래서 그 푸른 빛이 얼마나 신성하게 여겨지는지 등등. 낯설어서인지 푸른 몸의 사람 모습—그 푸른 빛 자체가 신성한 빛이라지만—에는 조금 (무서워서) 거부감이 들었는데, ”아바타“라는 말도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단 걸 이제야 알았다. 분신 혹은 화신 이라는 뜻의 아바타. 그러고 보니 “인도말스럽다”. 신과 인간, 신성성, 운명 등 라마 왕자의 악과 싸우며 정의를 위한 투쟁과 여정을 담은 이야기인 라마야나 역시 세계의 창조부터 인간사까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여기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길가메시. 신과 인간의 혼합물이라 해야하나, 그런 영웅의 서사. 여기에도 창조에 대한 것, 자연과 인간, 운명에 대한 거대 담론이 나온다. 내가 읽은 것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었음에도 아직 우리 첫째가 읽다가 포기했을만큼 좀 무겁고 큰 이야기였다. 


읽다가 새삼 “왜 우리나라는..?” 이라는 의문이 든다. 꼭 오래된 것, 예전 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아쉽긴 하다. 컨텐츠, 즉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기에 그 재료가 되는 신화를 가진 이들이 부럽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의 힘이 상상력 즉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있다 했는데! 왜 우리는 그런 보편적인 창조, 질서, 파괴, 아름다움에 관한 신화는 없을까—내가 잘 모르는 무언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쿡 찔러 “말해봐요” 했을 때 없다면 그건 없는 거다. 

석사시절 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한국에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그러나 또 동시에 보편적인) 무언가를 내보이려 했을 때 찾다찾다 “한”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한탄했던 한 교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필요에 의해 참 한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며 웃었던 기억인데 정말 그런가. 그런 정서나 분위기 말고, 이야깃거리는 부족한 건가. 


얼마 전 국제정세와 지정학적 위치에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댓글 중 “단군 할아버지는 매 좀 맞아야 한다”는 멘트가 있었다. 그땐 킬킬 웃었는데, 위치 선정만 아쉬운 게 아니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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