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6
얼마만에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지.
노트북이 방전되어 화면이 켜지지 않아 어댑터를 연결하고 까만 화면이 밝아지길 기다리며 코코아를 휘젓는다.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음료를 마시고 싶은데 커피말고 뭐 없을까 찾다가 아이들에게만 타주던 마쉬멜로우가 동동 떠있는 코코아 한 팩을 뜯었다. 올해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만든 빨강과 초록이 뿌려진 유리 머들러도 집에 데려와 달가락달가락 소리나도록 저어주니 뽀얀 가루가 진해지며 코코아가 완성된다. (빨강과 초록은 같이 있기만 해도 자동으로 크리스마스가 되는 마법인데, 거기에 따뜻한 코코아라니.)
호로록 마시니
달콤하고 조금은 끈적한,
따뜻한 음료가 몸에 퍼진다.
찬바람이 쌩 불면,
'아 겨울이네, 또 한 해가 갔구나' 하는 기분이 훅 다가올 때가 있다.
연말이라는 몽글몽글한 시간에 대한 설렘과 실체 없는 무언가가 얼마 안남았다는 약간의 조바심, 그리고 약간의 허망함이 한데 뭉쳐져 코 앞에 던져지는, 고만큼의 차가움이 있다. 공기가 좀 차가운 날 열심히 걸어갈 때 느껴지는 건데 요즘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니 아직 그 "순간"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곧 오겠지. 그 차가운 공기.
지난 주말에는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다. 트리를 "장식했다"라고 해야할까, "설치했다"라고 해야할까 하다 "세웠다"가 맞을 거란 느낌이 든다. 물론 아이들이 집에 있는 온갖 방울을 모두 달아 주렁주렁 "장식"이 되었지만 트리에 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트리를 세우며 큰 아이는 크리스마스가 오는 것 같다며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둘째 역시 이것저것 만지고 간섭하며 흥미로워했다.
영하의 날씨가 며칠 있으니 "겨울이네" 하는데, 큰 아이가 "엄마, 왜 11월은 가을 아니야? 세 달씩 계절이 바뀌잖아. 9, 10, 11월은 가을이고, 겨울은 12월부터 2월인데 왜 벌써 겨울이야?"한다. 아이야, 계절도 세상 모든 일도 그렇게 칼같이 잘라지지 않는단다. 가을이 갑자기 겨울이 되고 또 잠깐 가을이 되고 다시 한겨울이 오고 그런 거지 뭐.
시댁 김장도 마쳤고, 겨울 우리집 주요 식량인 부사도 한 박스, 친구가 제주에서 보내준 귤도 한 박스, 겨울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준비되고 있다. 아이들 내복도 꺼내고, 남편과 나란히 기모바지도 장만하고.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