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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숨 Mar 05. 2024

풍뎅이

2024.3.5


우리 집엔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번데기로 변하고 있는 중의 애벌레이다.

작년 가을, 첫째가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데려온 애벌레가 몇 달이 지나자 통 안에서 번데기방을 만들고, 번데기로 변해가고 있다.


나는 애벌레라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학생 때, 학교를 오가는 길 어떤 담벼락 밑에 연두색의 굵은 손가락 마디 크기의 어떤 애벌레를 보고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른 기억도 난다. 그 꿈틀거리는 모습이며, 마디마디 갈라진 모양 모두 징그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런 내가 집에 애벌레를 키우다니. 아이가 데려오고 싶다고 하고, 남편도 키우게 하자고 하길래 “엄마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안할 거야.”를 선언하고 허락했다.


실제로 애벌레가 사는 불투명한 통에 들어 있는 것만 몇 번 스치듯 봤을 뿐, 한 번도 꺼냈을 때 본 적은 없다. 도저히 몸서리가 쳐서 바라볼 수가 없다. 뭘 그정도로 그러냐 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나는 보지도 못하는 그것을 아이는 귀엽다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한다. 저 생명체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귀엽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애벌레 녀석이 우리 집에 와 어느 정도 개월수를 채우니 슬금슬금 “방”이란 걸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혹은 기특하게도 살고 있는 플라스틱 통 바깥 면에 굴을 파서 그 모습을 다 관찰할 수 있다. 통을 채운 발효 톱밥 아래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던 모습과 달리 방을 만들고 위로 올라오지 않길래 “어, 얘 번데기방 만들었나 보다” 했는데, 정말 그 안에서 하루하루 변하는 중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불투명한 재질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아 징그러움의 수치가 최고조는 아닌데, 그 안에서 쉴 새 없이 꿈틀거리며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다. 


재미있는 건 애벌레라면 질색이고 쳐다보기도 힘든 내가, “너무 징그러워”를 연발하면서도 자꾸 몸을 굽혀 그 통 안을 바라보게 된다. 이게 자연의 신비인고 생명의 놀라움인 건가, 하면서. "정말 징그러워, 그런데 너무 신기해."가 절로 나온다. 그저 본능으로 변하고 있는 녀석인데 어떻게 때를 알고 번데기화 하는 건지. 어릴 때 나비나 잠자리나 뭐든 번데기 과정을 거치는 곤충은 때가 되면 번데기 껍질을 먼저 딱 만들어 들어가고 그 안에서 변화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번데기가 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온 몸을 구푸렸다 다시 펼쳤다를 반복하고 몸 안의 변화를 계속 받아들이고 내뿜고를 반복하며 겉부분이 껍질처럼—사실 맨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통 안의 녀석을 관찰한 거라 잘은 모르지만—마르며 마디가 점차 진해지는데, 어제부터인가는 움직임도 거의 없다. 번데기 겉은 거의 완성되고 안에서의 변화만 남았나 보다. 정말 소름이 돋도록 징그러운데 그만큼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된다. 


저러다 어느 날 단단한 껍질의 짙은 갈색의 풍뎅이가 되어 나오겠지. (맙소사.) 그 녀석은 날개도 있으니 집에서 키울 수 없고, 그 곤충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집 바로 뒤 뒷산에 놓아주자고 약속했는데, 아이들이 잘 보내줄까 모르겠다. 딱 이틀만 집에 두고 날려보내자고 했는데. 


살짝 뒷목이 오소소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핸드폰에서 풍뎅이용 먹이 젤리를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틀만 데리고 있을지언정 먹이는 줘야 하는 거니까, 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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