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30
최근 몇 달 열심히 책을 읽는다. "열심히"라는 부사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전심을 다해 열렬히'라는 느낌이라 내가 책을 읽는 행위를 묘사하는 데 적합한가 잘 모르겠지만, 틈이 날 때면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려고 하니 그 정도면 적당한 말이지 않을까 싶어 붙여본다.
요즘 한 주에 한 번 청강하고 있는 공예 수업의 텍스트들로 시작한 책에서 파생되며 읽는 책의 분야가 다양해지고 있다. 공예 이론, 문화사, 인문학, 사회학 그러다 다시 소설, 에세이.. 그렇게 넓어지는 책읽기의 범위는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으로 충당된다. 원하는 책들이 대부분 있고, 가는 곳에 없더라도 상호대차라는 놀라운 시스템으로 금방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보면 서가에서 기웃거리다 발견하게 되는 보물도 있다. 내가 빌리고자 한 책이 서가에 꽂혀 있지 않아 그 주변을 서성이다가 제목과 분위기에 이끌려 책을 꺼내보고 빌리게 되는 경우이다. 그렇게 빌린 것들 중에는 그럭저럭 읽을 만해 끝내는 경우, 생각보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 읽지 않은 채 반납하게 되는 경우, 놀랍게도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마지막 상황일 때 책은 보물이 된다.
김현진님의 <<진심의 공간>>은 그런 책이었다. 일 때문에 도시 공간학, 건축물 관련 서가를 서성이다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을 골라 집었고, 그 부근에서 맴돌던 손이 집은 다른 책이 <<진심의 공간>>이었다. 손가락은 그 책을 끄집어내 스르륵 책장을 넘겼고, 나는 건축가의 가벼운 건축 에세이인 듯 싶어 한 번 보지 뭐 라는 마음에 빌리게 되었다.
처음 작가의 말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아 이 책은 별로 안읽게 되겠네, 대충 보고 반납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조금 모호하게 읽히는 문장들이라, 평소 작가가 생각이든, 느낌이든, 사실의 전달이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명확하지 않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관심이 식어버렸다. 그러다 읽게 된 본문의 문장들에서 나는 완전히 그 책에 사로잡혔다.
"사로잡히다"고 표현하다니. 오글거릴 정도인데 정말 그렇게 빠져버렸다. 아마 시작 부분에 작가가 표현한 "촉각"에 대한 문장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일 거다.
"촉각은 여러 감각들이 뒤엉켜 있는 입체적인 감각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단지 손으로 만져지는 표면의 성질보다는 사람의 움직임에 더 영향받는다. 부드러운 카펫 위로 올라섰을 때, 커튼을 젖혀 숨겨진 경치를 발견할 때, 손바닥으로 쓰다듬던 벽의 미세한 진동과 온도의 변화를 느낄 때, 문소리보다 조금 늦게 바람을 얼굴로 만날 때, 매끈한 손잡이를 움켜쥐고 돌릴 때, 건물은 건축적이 된다." (30)
아침에 일어나 거실 커튼을 젖힐 때 손바닥에 남는 까칠한 느낌과 살랑이는 바람결을 좋아하는데,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촉각을 쓰고 있었다.
책은 일상의 공간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색의 힘을 말한다. 일상과 일상의 사물과 일상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부분 공감이 되고 마음에 남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탁자는 인간의 시간을 멈추고 공간의 밀도를 조정한다. 아무 것도 없는,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에 탁자 하나가 놓이는 순간, 그 자리에는 시간과 공간이 멈춘다. 그 주변으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222-223)
"한 가족만의 생활 습관과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부엌, 주방이다. 그곳의 배열과 외관은, 변함없는 가족의 일과와 경험들을 통해 쌓아온 공동의 습관이 새긴 특징이다. 특히 한 집안에서 내려오는 음식의 의미와 조리법은 현대의 수평적 교류 속에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타인의 집에서 가장 낯선 곳이 부엌이며 그 경험은 모두에게 생생하다." (239)
"독방 감옥의 크기는 0.65평 (2.18제곱미터)이다. 할아버지는 독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자신의 일터가 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30년간 같은 일을 해도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되풀이되 는 행위와 변함없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눈으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평범한 사람이 몇백 그루의 나무를 꾸준히 심을 수 있거나,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시 한 편씩 규칙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자신만이 발견하는 새로움 때문이다." (305)
'이런 책은 소장해야지' 하고 책을 찾아보니 이미 절판되었고, 작가인 건축가는 이미 작고한 분이셨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이렇게라도 알게되었으니 다행이다 하고 중고책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공들여" 책을 읽다 며칠 뒤 중고책은 집에 도착했고, 도서관의 책을 반납한 뒤 "내 책"으로 마저 읽었다. '아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하고.
책을 사면 사둔 연도와 월까지 내지에 적어두고 내 책이라는 의미로 사인을 해두는데, 어두운 보라빛의 책 표지의 날개가 내가 보통 사인하는 내지보다 안쪽까지 덮여 있었다. 무심코 책날개를 펼치고는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는 작가가 누군가에게 써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아마도 작가 사인회 혹은 북토크 같은 자리에서 쓰고 건네게 된 짧은 문장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마음을 전한 문장이 남아 있다. 기분이 묘했다. 다른 사람에게 준 글이 남아 있는, 이제는 내 소유가 된 책. 그리고 글씨로만 남아 있지만 작고하신 분의 친필이라니. 다시 책날개로 덮고 나는 더 안쪽에 "2024. 5" 그리고 내 사인을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