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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3

by 어떤 숨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는 사부작거리며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것들 만들기를 좋아한다. (희한한) 만들기 도안을 프린트해서 접고 자르고 붙이기도 하고, 색종이를 오려 고양이 가렌더를 만들기도 하는 등 어른들의 눈엔 예쁜 쓰레기를 한가득 만들어 놓기를 좋아한다. 본인이 만든 것에 한없는 애착을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차없이 스스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이게 다행인 건지는 잘모르겠다.

그럼 대체 왜 만드는 걸까. 사용을 위한 만들기가 아닌 만들기 자체를 워낙 즐기는 것 같다. 그 마음을 아니 함부로 그만두라 감히 말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갑자기 책갈피를 만들겠다며 종이를 오린다. 오린 종이를 편지봉투만큼 커다랗게 붙여 한 면에는 스티커를, 한 면에는 색연필로 무지개를 그리고 색칠한다. “다 됐다, 예쁜 책갈피.” 그러고선 하는 말이 우습다. “그런데 난 책 읽는 거 안 좋아하는데 내가 왜 책갈피를 만들었지?”


한때는 나도 책갈피를 꼭 사용하곤 했다. 선물받은 것, 여행가서 기념품으로 사온 것, 어쩌다 서점에서 보고 맘에 들어 사온 것 등 여러가지 것들을 다 사용했는데, 언제서부터인가 인덱스 스티커만 사용하고 책갈피를 쓰지 않는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는 용도로 가장 부피와 크기가 작은 인덱스가 내 원픽이 되었다 할까.


"책갈피는 그래서 가급적 종이로 된 것을 사용한다.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 비닐 코팅된 종이 책갈피는 질겨서 싫고 시시때때로 빛을 반사해 사용하지 않는다. 귀여운 그림이나 풍경이나 얼굴이나 문장이 인쇄된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두껍거나 구멍 뚫린 금속, 나무, 가죽으로 만든 것은 사용하지 않고 가름끈이 달린 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쇼핑몰에서 북마크나 책갈피 카테고리로 판매되는 책갈피 중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종잇조각을 작은 상자에 모으고 있다. 책갈피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종이를 발견하면 책갈피 형태로 잘라 상자에 넣고 한개씩 꺼내 사용한다. 내부 포장재나 책 띠지로 이따금 딸려 오는 유지가 내가 쓰기엔 적당하고 아주 가끔은 책 내지로 사용된 한지나 색지를 잘라내기도 한다." 황정은, 일기, 83


황정은 작가의 에세이에 책갈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갈피처럼 부피도 작고 사소해 보이는 물건일지라도 자신의 필요에 맞는 딱 맞는 걸 선호하고 고르는 모습이 좋다. 많이 사용하는 물건에 대한 기준이랄까 애착이랄까 그런 것이 보여 마음이 간다. 누군가에겐 아무거나 사용해도 될, 혹은 종이를 스윽 접어 표시해 그 필요성조차 못느낄 사물이지만, 마음을 담아 좋아하는 것으로 골라 사용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황정은 작가가 비닐코팅된 것은 질겨서 싫다한 부분에서 슬그머니 웃었다. 난 종이로만 된 건 잘 찢어지니 한 번 코팅된 걸 좋아했는데.


아이가 만든 책갈피는 곧 남편이 읽는 책 사이에서 발견될 것 같다. (엄마는 인덱스스티커를 사용하고 책갈피 안쓰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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