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수요일

도가니탕 영감

by 덩이

도가니탕 영감이 왔다.

지난번에 사 둔 도가니를 어제저녁에 꺼내 핏물을 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꺼내보니 온종일 끓여도 세 식구가 한 끼 먹을 양보다 쬐끔 더 될 거 같다. 아이 방과 후 마치고 놀이터에서도 실컷 놀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집에 오면서 스지라고 불리는 냉동 소힘줄도 한팩 더 사 왔다. 그사이 도가니는 핏물이 다 빠져 하얘졌다. 이젠 소힘줄의 핏물을 빼야 한다.

계획 없이 일을 저지르니 진행이 더디다.

핏물 빼는 사이에 점심을 해서 먹고 설거지하고 대파도 다듬도 거기에 어제 사놓은 알밤에 칼집을 내어 군밤까지 만들었다.

목련나무다

이상하게 점점 피곤해진다.

군밤을 만들어먹는 밤이 아니었던 건지 칼집 낸 대로 벌어지지 않고 겉껍질만 바삭해졌다. 그런 데다가 밤 하나가 터져서 오븐레인지 안은 엉망이 되었다.

큰 냄비에선 도가니와 힘줄이 팔팔 끓고 있어서 마음이 바쁘고 군밤은 일일이 칼로 껍질을 까줘야 먹을 수 있을 테니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밤을 한차례 까주고 나니 잠이 몰려온다.

도가니엔 기름이 많았다. 세 시간 끓인 도가니를 꺼내 손질하는데 이게 살점인지 기름인지 헷갈린다. 뭉개져버리는 부분이 기름인 것 같다. 고기를 건지고 국물은 베란다에 내놓아 기름을 굳히는 중이다.

까치가 집을 짓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을 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다음에는 사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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