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어른의 음식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돈가스다.

신랑과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맞춰 주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것에 비해 자주 먹는 편이다. 원래 돈가스를 좋아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돈가스가 주는 포만감이 싫어졌다. 같은 튀긴 음식이라도 치킨보다 돈가스가 왠지 더 배부르고 느끼하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입맛도 변하나 보다 했다.

그랬던 내가,

이번 겨울,

돈가스의 맛에 다시 눈을 떴다.

습식 빵가루에 튀겨내어 깨를 갈아 넣은 소스를 찍어먹는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가 아니라, 고기를 얇고 넓게 두들겨서 튀겨 따끈한 소스를 끼얹어 먹는 옛날 돈가스가 내 취향이었다는 걸 최근에야 다시 깨달은 것이다.

얇게 튀긴 돈가스 한가운데에 따끈한 데미그라스 소스를 듬뿍 얹은,

소스를 머금은 촉촉한 부분의 부드러움과 소스가 묻지 않은 테두리 부분의 바삭함을 즐길 수 있는,

후추를 뿌린 크림수프를 식전에 한 그릇 먹고 작은 양에 아쉬워하는,

커다란 접시에 접시만 한 커다란 돈가스와 함께 마요네즈와 케첩에 버무린 양배추 마카로니 샐러드 한 덩이, 밥도 한 덩이, 단무지 조금을 오밀조밀 담아낸, 바로 그 돈가스.

옛날 경양식 돈가스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며칠 전, 돈가스를 사다가 튀겨서 비슷하게 해 주었는데 아이만큼 나도 오랜만에 맛있게 먹은 돈가스 한 끼였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의 음식 중의 하나는 돈가스였다.

시내에 있던 경양식집인 <루이 14세>는 그 꿈의 음식을 멋들어지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식당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멋진 곡선을 가지고 있었던 의자와 두껍고 묵직한 테이블보가 깔린 식탁의 모습에서 위압감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조끼를 맞춰 입은 종업원들이 어른뿐만 아이라 나 같은 애들에게도 격식 있고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면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가서 먹은 적은 있지만 엄마가 우리를 데려가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우리 가족이 그곳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엄마 덕분이었다. 작은 집 두 남매가 우리 집 네 남매와 외식을 할 때면 자주 가던 곳이었다.

조명과 분위기가 주는 위압감도 있었지만 늘 우리가 얻어먹는 처지라는 걸 알았기에 위축감도 함께 들었다. 그렇지만 그곳의 돈가스는 너무나 맛있었고 작은엄마는 우리에게 변함없이 늘 다정하셨다.

우리 시에서 가장 좋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인 <루이 14세>에서 언제든 우리들에게 돈가스를 사 줄 수 있는 작은엄마가 내겐 성공한 어른의 삶처럼 보였다. 또 다른 성공한 어른의 음식으로는 삼촌의 피자와 큰고모의 치킨, 작은 고모의 부침개가 있었다.

나중에 어른 되어 돈 많이 벌면 돈가스를 실컷 사 먹겠다느니, 부자가 되어 큰 집을 사서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고 혼자 마음속으로만 다짐을 했었다.

지금 그때의 그 다짐을 다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주 쪼오오오끔은 해내며 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내 안의 나만 아는 다짐을 이루어 내기 위해 열심히 살겠지만 이미 돈가스는 누구든 실컷 사 줄 수 있게 되었으니,

나, 좀 성공한 어른?

성공한 어른의 음식 2탄

2022년 8월

날이 많이 선선해졌지만 아직 여름이다.

돈가스보단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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