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밥상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이 글 <읽는 먹방>

by 덩이

언니가 사진을 보내왔다. 밥상 사진이다. 추석명절에 시댁 가기 전에 친정 먼저 가서 하루 자고 가기로 한 언니가 보내준 사진에는 밥상 가득 엄마의 음식이 차려있다.

밤밥과 쇠고기 뭇국은 얌전하게 앉아있고 엘에이 갈비, 잡채, 동태전, 부추전은 각자 커다란 접시 위에서 기세 등등하다. 물김치, 열무김치, 포기김치는 작은 접시에 담겨 있어도 눈에 띈다. 도라지 무침, 꽈리고추 찜, 북어조림은 밑반찬이지만 갈비나 잡채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 검은깨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는 중간중간 입맛을 돋워줄게 분명하다. 그 맛을 알고 있기에 사진만 봐도 배가 부르다.

엄마의 밥상은 늘 푸짐하다. 평상시에 가도 이것저것 반찬이 가득한데 명절엔 더하다. 힘드니 이제 제발 많이 하지 마시라고 해도 가짓수가 확 줄지를 않는다.

아빠의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제사음식이며 차례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는데도 엄마는 쇠고기 뭇국과 전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김치와 물김치, 겉절이도 명절 앞두고 항상 새로 담갔다가 나눠주신다. 어느 날부터는 잔칫날처럼 잡채와 갈비와 불고기와 샐러드가 밥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밑반찬들을 한가득 해놓으시고도 또 뭐 먹고 싶은 거 없느냐고 물어보신다. 떡이나 만두를 사서 먹게 된 건 참 다행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명절이나 제삿날엔 음식을 만드시는 엄마를 도와야 했다. 전 부치는 걸 도와드리거나 부치기도 했고 틈틈이 뒷정리도 하고 음식 하시는 중간에 밀가루가 떨어지거나 달걀이 모자라면 심부름을 했다. 도와드리면서 참 많이도 투덜댔다. 추석이면 송편을 한가득 만들고 설날엔 만두도 끝없이 빚으셨으며 미리 뽑아놓은 가래떡도 한 바구니 썰어내셨다. 명절 전전날은 장을 보고, 전날은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하고, 연휴 내내 상을 차렸다 물렸다 설거지에 뒷정리에 부엌일이 끊이질 않았다. 돕는 우리도 힘든 이 일을 엄마는 수십 년을 해오셨다. 음식을 푸짐하게 해 먹이는 것이 엄마에게는 의무이자 낙인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즐거이 기꺼이 행복하게 해 주셨고 지금도 언제나 행복한 밥상을 내어주신다.

나는 엄마처럼 음식을 척척해내지도 못했고 과정이 번거롭다 느껴지는 음식은 해먹을 생각도 안 했다. 떡볶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만 해 먹어도 자취할 때나 신혼 때는 크게 상관없었는데 아이가 생기니 달랐다. 아이를 낳고 본격적으로 살림을 해보니 엄마가 해주셨던 것처럼 음식을 해서 먹이는 일이 쉽지 않다. 메뉴를 정하는 것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뚝딱 안 된다. 아침에 전날 남은 국이나 찌개에 밥을 말아주거나 김에 싸주거나 냉동실에 있던 빵에 달걀프라이면 아침식사로 나은 축에 속한다. 과일 한쪽 먹여 보내거나 요거트 하나면 그래도 먹였다 싶다.

저녁에 신랑이나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하면 메뉴 고민은 덜었으니 훨씬 가뿐해진다. 누군가의 식사를 책임진다는 건 내겐 예상보다 무거운 무게였다. 매일의 끼니를 준비하는 것이 나는 아직도 일이다. 그래도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건 엄마의 솜씨를 아주 조금씩 따라 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늘 괜찮다 하시지만 엄마의 체력이 예전 같지는 않으시다. 몸이 좋지 않으시면 확실히 입맛이 없으시다. 잘 잡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친구 분들과 추어탕을 사 드셨다던가 고기가 먹고 싶어서 한 근 사 왔다던가 상추가 맛있어서 보리밥에 한가득 넣고 비벼 드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참 반갑다. 잡숫고 싶은 것이 앞으로도 계속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뚝딱 행복하게 비워낼 거다.

엄마의 밥상이 예전에는 당연함이었지만 이제는 간절함이다.

김치만두랑 같이 끓여 먹는 게 젤 좋더라

2022년 9월 3일

곧 추석이네

그런데 태풍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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