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생신은 한여름이다. 작년에 아가씨가 엄마 생신상 차려드린다고 갈비에 전에 고기에 잡채까지 정성껏 만들어 왔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 엄마 생신상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려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반성했다. 아가씨가 싸온 많은 음식 중에 한우 푸짐하게 넣고 만든 잡채가 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싹 버려야 했었다.
올해 시어머님 생신 아침상에는 갓 만든 신선한 잡채를 놔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뚝딱 만드시는 걸 기억해 보면 어렵지 않아 보였다. 집에서 예전에 딱 한번 속성으로 만들어 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전복 미역국은 전복 손질만 마치면 끝나는 거고 불고기는 미리 재워 놓았다가 볶기만 하면 되니 아침에 잡채만 신경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어머님의 생신날 아침.
제일 먼저 목이버섯을 물에 먼저 불리고 미역국 준비를 했다.
무슨 잡채까지 하냐, 국만 끓여 먹어도 되는데 하시는 어머님께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내가 이랬던가?
-생신상인데 잡채랑 불고기는 있어야지요.
신랑이 전복 손질을 도와주어 미역국을 먼저 무사히 만들었다. 문제는 잡채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돼지고기 밑간을 하고 시금치를 데치고 당면을 불리고 야채를 썰고 볶는 과정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켜 버렸다. 시금치를 먼저 데쳐야 하나? 당면은 얼마나 삶아야 하지? 생각보다 삶는데 오래 걸리네...... 생각이 많아지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면은 왜 또 그렇게 많이 꺼내 삶았는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잡채는 간이 덜 되어 싱거웠고 돼지고기 잡내가 났다. 당면은 윤기가 없이 퍼졌고 야채들은 겉돌았다. 매우 심혈을 기울였지만 접시에 담긴 모양새는 영 볼품이 없었다. 사실은 꽝이었다.
-어머님 다음에 데워 드실 때는 간을 좀 더 해서 다시 볶아서 드세요. 제가 잘 못해서 망쳤어요.
-그래도 맛있다.
맛있다고 해주시는 어머님이 고마웠다. 그리고 죄송했다.
이번 추석 명절 아침상에 엄마가 잡채를 만들어 주셨다. 아무리 봐도 엄마는 뚝딱 만들어내신다.
양파, 당근, 파프리카는 길게 썰어서 각각 볶아둔다. 시금치는 데쳐서 물기를 꼭 짜둔다. 새송이 버섯과 표고버섯은 그냥 볶으면 물이 많이 나오니까 데쳐서 볶는다. 목이버섯은 불리기만 해서 그냥 볶고 파는 잘게 썰어 마지막에 버무릴 때 같이 넣는다. 고기를 넣지 않아 맛이 더 깔끔하다. 야채는 집에 있는 대로 해서 먹어도 된다. 시금치 말고 부추를 넣어도 괜찮다.
핵심은 당면을 삶는 방법이었다. 물에 식용유 두 바퀴 정도 두르고 콜라색 정도 나올 만큼 진간장을 넣고 삶는다. 그러면 면끼리 서로 붙지도 않고 간도 배고 색도 예쁘다. 그렇게 삶은 당면을 소쿠리에서 물을 빼고 준비된 재료들과 섞어서 설탕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과 깨를 듬뿍 둘러 겉절이 하듯 버무린다. 삶은 당면을 불 위에서 볶지 않는 게 두 번째 포인트였다.
지난번 잡채를 만들었을 때를 돌이켜 보니 맹물에 삶은 당면을 불 위에서 볶으면서 계속 간을 맞췄으니 퉁퉁 불고 윤기가 없는 게 당연했다. 고기 잡내를 잡지 못할 거 같으면 고기는 빠지는 게 나았다.
엄마도 이렇게 저렇게 잡채를 해 먹어 보니 이 방법이 제일 맛있다고 하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잡채를 만들어 보셨을까. 음식을 만들 때 본인이 해오던 방식만 고수하지 않고 여기서 저기서 배운 방법을 시도하시는 엄마가 참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만드는 방법을 알고 한 번 해봤다고 해서 그 요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번이고 만들어 먹어봐야 한다. 여러 번의 경험을 거쳐 언젠가는 자신감 있게 엄마의 잡채처럼 윤기가 좔좔 흐르는 맛있는 잡채를 생신상에 올릴 거다.
초는 세 개만 꽂아줘...
2022년 여름, 우리 시어머님은 생일을빈소에서 보내셨다. 어머님의 엄마, 할머님이 그 전날 돌아가셨다. 인생 참 얄궂지만 우리는 어머님의 생신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