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원물 간식을 비롯해 미숫가루, 타래과, 식혜, 감자전, 김치전, 야채튀김, 카스텔라 등등의 다양한 간식들이 있었다. 그중 도나스가 우리에겐 가장 강렬한 간식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오래되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젠 기억이 안 나신단다.
매우, 아주, 오래전, 먼 옛날, 어릴 적 내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갔을 거고 계란과 물을 넣으셨을 거라 짐작한다. 내 기억 속 엄마의 도나스 식감을 떠올렸을 때 쫀쫀하고 단단했다. 그렇다면 부드러운 우유보다는 물이었을 거 같다. 완성된 도나스 반죽은 노랬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아마 달콤한 맛을 위해 설탕도 넣으셨을 거다.
당장이라도 떼먹고 싶을 만큼 먹음직스럽게 된 반죽을 밀가루를 뿌린 나무 도마에 놓고 반죽 위에도 밀가루를 폴폴 뿌린다. 마늘 빻는 절구 공이에도 밀가루를 바르고 나서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밀어주시면 이다음 과정은 우리가 나설 차례다. 스텐 밥그릇이나 주전자 뚜껑을 사용해 큰 동그라미를 찍어내고 그 안을 병뚜껑으로 다시 찍어내어 도나스 모양을 만든다. 큰 동그라미를 찍어낼 땐 최대한 서로 바짝 붙여서 찍는다. 남은 반죽은 다시 뭉치고 주물러 밀어 찍어내기를 반복한다. 우리가 찍어낸 ㅇ모양의 반죽을 기름에 옅은 갈색으로 튀기면 빵빵해져서 나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금방 튀겨 낸 뜨끈한 도나스에 계핏가루를 섞은 설탕을 듬뿍 뿌리면 설탕가루들이 도나스에 잘 달라붙는다. 계핏가루가 느끼하고 기름질 뻔한 맛을 잡아주어 먹고 먹고 또 먹게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실컷 집어먹고도 엄마의 도나스는 커다란 분홍색의 플라스틱 김치통에 가득 찼다. 며칠 동안 집안에 기름 냄새가 가득했지만 도나스는 그전에 동이 났다. 나는 마지막 조각이 아쉬워 바닥에 있는 설탕까지 손가락으로 찍어서 먹었다. 기름에 튀긴 데다 설탕까지 뿌렸으니 그 맛을 어떻게 참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좀 크고 나서 엄마는 밖에 나가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예전처럼 도나스를 같이 만들 시간이 없으셨다. 대신 건빵을 튀겨서 설탕에 버무려 주셨다. 우리가 스스로 생라면을 튀겨 설탕을 뿌려먹기도 했다. 모두 도나스와 같은 카테고리다. 설탕에 버무린 튀긴 탄수화물. 내겐 추억의 간식들이다.
마흔이 넘으니 설탕에 버무린 튀긴 탄수화물은 예전처럼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입에선 당기지만 먹고 나면 소화시키는 게 부담된다.
2주 전에 아이와 ‘도나스 가루’를 사서 집에서 한 봉지를 몽땅 만들었다. 봉지 안에 모든 가루가 계량에 맞게 버무려있고 나는 계란과 우유만 넣어서 반죽하면 되었다. 이렇게 간단했나 싶을 만큼 뚝딱 만들 수 있었다. 계핏가루와 흰 설탕에 잘 버무려 통에 담아놓았는데 아이는 한 개도 채 다 먹지 못한다. 세련된 도넛의 맛을 알고 있는 아이는 도나스가 맛이 없다고 했다. '그래 니가 안 먹으면 엄마가 먹으면 되지.' 했지만 반도 못 먹었고 뚜껑 열어본지도 꽤 되었다. 죄책감을 느끼며 곧 버려야 할 거 같다.
도나스의 맛은 그대로다. 내가 변했고 시간이 흘렀다.
도나스를 만들었던 기억이 점점 멀어지고 도나스를 소화시킬 위장이 점점 늙어가니 엄마의 도나스를 맛있게 먹었던 그 시절이 자꾸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