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굽다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아이에게 묻는다.

-김에 밥 싸줄까? 밥에 김 싸줄까?

간편하게 아침을 먹일 수 있어서 구운 김은 필수다.

시장에 맛있는 구이 김을 판다. 한 봉지에 이천 원, 세 봉지에 오천 원인데 옛날에 엄마가 집에서 구워 준 그 김 맛이라 식탁에 올리면 자꾸 손이 간다. 꽤 오랫동안 그곳의 김을 사 먹어왔다.

최근에 우리 집 경제에 빨간불이 켜져 생활비를 여기저기서 줄이고 있었다. 그런 참에 김도 집에서 구워야겠다 싶어 저렴한 생김을 사 와 김을 구웠다. 시어머님이 농사지으셔서 짜주신 들기름을 3, 식용유를 1 정도의 비율로 섞는다. 스무 장 정도의 김을 꺼내 쟁반에 놓고 맨 위에 있는 김부터 숟가락 뒷면으로 기름을 바른다. 실리콘 솔로 해보니 솔에 묻는 기름이 더 많아서 아깝다. 숟가락 뒷면으로 해도 충분하다. 소금을 살살 뿌린 뒤 맨 뒤에 놓고 다시 위에 있는 김에 기름 바르고 소금 뿌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제일 처음 기름 발랐던 김이 나온다. 충분히 달군 프라이팬에 김을 두 장 겹쳐서 앞뒤로 바삭하게 굽는다. 다 구운 김을 차곡차곡 갈무리한 뒤 가위나 칼로 잘라 통에 잘 넣으면 김 굽기 대장정이 끝난다.

김을 굽는 동안 공기청정기는 진즉에 빨간색 세 자리 숫자까지 올라갔고 창문을 열어도 파란불이 켜지기까지 오래 걸렸다. 구운 기름 냄새는 다음날까지도 남아 있었고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의 시커멓게 탄 자국은 며칠을 계속 닦아내고 있는 중이다. 처음 구운 김은 굵은소금을 뿌려 놔서 너무 짜 소금을 긁어내고 먹어야 했다. 두 번째로 구운 김은 굵은소금을 갈아서 신중하게 뿌렸더니 좀 더 맛있게 완성됐다.

어떤 일이든 계속해서 하다 보면 조금은 잘하게 된다.

김을 굽는 일도, 가정 경제를 빵꾸나지 않게 경영하는 일도 앞으로 나는 잘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정 경제의 위기는 ‘대출’이란 제도를 이용하여 넘겨보기로 했다. 통장 잔액이 바닥을 쳤을 때는 내 삶도 바닥을 친 것 같아 불안했다. 여유가 없어지고 생산적인 활동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쓸데없고 의미 없다고 느껴져서 괴로워서 죽을 맛이었다가 대출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웬만하면 구운 김은 사 먹어야겠네.’ 허세를 떨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김을 굽는다.

김을 구우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우리 집 경제 상황은 늘 불안했고 위기가 때마다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가장인 엄마는 얼마나 혼자 애태우고 마음 졸였을까, 여기저기 손 벌려야 할 때 얼마나 입이 안 떨어졌을까.

그 시절의 젊은 엄마가 안쓰럽고 애처로우면서 대단하다. 하나도 무거운데 네 남매 한 놈도 안 떨어뜨리고 다 업고 안고 그 험한 산들을 꿋꿋하게 넘어온 엄마가 고맙다.

오늘따라 김 굽는 냄새가 맵다.

발 중독

2022년 9월 현재

작년에 샀던 김이 아직 남아있다. 그동안 서너 번 김을 구웠고 몇 번은 김밥을 쌌다.

냉동실의 김은 어떤 상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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