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매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동안 엄마는 여전히 고향에서 계속 일을 하셨다. 아파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님의 넓고 좋은 집에서 함께 지내며 밤낮으로 돌봐드리는 일이었다. 체력적으로 매우 많이 힘든 일이었던 만큼 엄마가 그동안 하셨던 일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버셨다. 체력과 건강이 곱절로 깎이는 건 외면한 채 몇 년을 그렇게 일하시면서 네 남매 서울 살림에 조금씩 보태주셨다.
한 달에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쉬는 날에는 우리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오셨다. 오실 때마다 두 손 가득 밑반찬과 김치를 싸오시고 예쁜 꽃무늬 이불 세트를 사 오시거나 아껴두셨던 새 냄비세트를 들고 오시기도 하셨다.
-엄마, 이불은 여기서 사도 되는데 뭐 하러.
-이불가게에서 보는데 너무 예쁘더라. 이런 건 서울에 없을 거 같아서.
엄마가 서울에 오셨어도 특별하게 뭔가 같이 한 기억이 별로 없다. 토요일 저녁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일요일 아침엔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었다. 시장을 구경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시내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모셔다 드리는 별 거 없는 주말이었다. 그 외의 외출을 하는 경우는 엄마가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으러 나가거나 올림픽 공원 산책을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를 만나러 오는 주말이 무척 기다려지셨던 것 같다.
네 남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 뒤 고향집에 한 명씩 두 명씩 잠시 머문 시기는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 다 같이 한 집에 모여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꿈꿨던 미래는 네 남매 모두 결혼해서 각자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거라고만 단정했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잠시나마 다 같이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하는 소소한 순간을 바라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 와서야 든다.
엄마는 우리를 만나고 집으로 내려가실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시다고 하셨다.
-왜, 섭섭해서?
-응, 새깽이 떼놓고 가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안 좋아.
나이도 꽉 차고 자기 할 일 바빠서 엄마랑 같이 시간 보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무심한 자식들인데 엄마는 뭐가 이쁘다고 아직도 새깽이라고 하나 모르겠다.
엄마가 버스에 올라타시면 터미널 승차장에 서서 손을 흔든다. 그러다 버스가 출발할 때쯤 후다닥 터미널 밖으로 뛰어나간다. 강변역으로 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엄마가 타신 버스가 지나간다. 거기서 또 손을 흔들어드린다. 그게 그때 내가 가장 잘한 일 같다.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엄마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 일주일에 두 번씩 대가족이 사는 커다란 고급 단독주택에서 집안일을 하시고 주말 하루는 병원 청소를 하신다. 꽤 오래 해 오신 일이다.
일하지 말고 친구분들과 놀러만 다니시라고 용돈을 두둑이 드리면서 집에서 쉬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만은 굴뚝같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내 가족의 밥상을 먼저 챙기느라 엄마를 자꾸 미루게 된다. 그래서 자주 찾아뵙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안다.
다 핑계인 거.
괜찮다 괜찮다고 하지만 평생 퇴직 한번 없던 엄마의 고됨과 외로움을 조금은 안다. 알지만 적당히 외면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사는 게 못난 새깽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새깽이가 새깽이를 낳고 기르는 지금까지 엄마의 새깽이로 살고 있어서 참 고맙고 다행일 뿐이다. 나는 해주시는 김치 얻어먹고 반찬 만들 때마다 전화해서 물어볼 엄마가 있는 새깽이로 그저 더 오랫동안 지내고 싶다.
막걸리엔 김치2022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엄마는 우리 집에 보낼 김치를 주문하셨단다. 김치를 직접 담그시기엔 작년과 달리 체력이 많이 떨어지셨지만 우리 집 김치가 떨어져 가는 걸 멀리서도 감지해내시는 엄마의 사랑은 변함없이 여전하시다.
<에필로그>
언제부터인가 혼자 가스레인지를 켤 줄 알게 된 어린애는 맛을 보장할 수 없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를 좋아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프라이팬에 부치면 빵이 되는 줄 알고 자신 있게 만들어 외할머니께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언니와 동생들과 함께 4권짜리 요리책을 펼쳐서 가지고 놀았습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세계 요리를 상상으로 먹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겉절이를 담글 줄 아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얼갈이김치를 맛있게 담그면 누군가 떠오르고, 큰 냄비로 육개장을 끓이면 한 그릇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 마음은 엄마에게서 이어져 온 마음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만만치 않고 귀찮은 일일 때가 많겠지만 엄마처럼 애정을 밥상에 펼쳐내는 사람으로 살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마음을 계속 글로 쓰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것,
내 글을 다른 이에게 꺼내 보이는 것은
조금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나의 글을 따뜻한 눈으로 읽어주고, 소감을 전해주고, 푸근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녀들과의 글쓰기로 커다란 용기와 달콤한 위로를 듬뿍 받았습니다.
2021년 5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일 년 동안 함께 한 <순정 책방>의 책방지기님과 605호님께
감사와 맥주와 오징어튀김과 애정을 보냅니다.
사..사..탕해요
2022년에 꺼내먹은 2021년의 글은 참 맛있었다.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도 계속 글을 써야지 다짐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젠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좀 더 규칙적으로 쓰겠노라 다짐한다.
읽는 먹방의 그림들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도전했다가 낙방한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쓰게 되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