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사와 박약사는 부부약사였다.
둘은 부모들의 소개로 만났다.
교회 장로과 권사였던
각각의 부모님들은
서로의 집안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신실한 믿음과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났으니
얼마나 잘 자랐을까 생각하며
서로의 자녀를 중매했다.
결혼식은 성대했다.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와 박수가 쏟아졌고
막대한 축의금이 들어왔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으나
진실로 행복한 사람들은 딱 5명뿐이었다.
돈을 세느라 밤을 지새운 4명의 부모들과
감사헌금이 얼마나 들어올까 생각하니
행복해진 목사님.
결혼 당사자들은
연애부터 결혼식까지
좋기는커녕 서로가 귀찮고 힘겹기만 했고,
나머지 청중들은
돈지랄로 꾸며놓은 결혼식장이
배 아프고 못마땅한 데다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축의금을 적잖이 내야 해서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요즘에 누가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을 하겠나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김약사 부모와 박약사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화려한 사람들.
마음이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란
김약사와 박약사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마음을 가진 김약사는
부모에게 없는 것을 가진 자신이
몹시 이상하게 느껴졌고,
김약사의 마음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부모 덕분에
마음을 소외시키는 방법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박약사에게 마음 혹은 감정이란
똥처럼 부끄러워서
못 본 척해야 하는 것이었다.
똑같이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는 부모 때문에
박약사의 마음과 감정은 거대해졌다.
박약사의 부모는
아이가 울 때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넘치도록 채워주며
칭찬만 남발하며 키웠다.
박약사가
거대자아를 가진 나르시시스트로 자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말을 아끼는
김약사와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박약사는
진정
서로에게
재앙이었다.
일찌감치 깨달았으나
헤어질 용기가 없어
부부로 살다 보니
아이까지 생겨
어쩔수없이 낳게 되었다.
태어난 딸아이는
따로
유모의 손에, 유모의 방에서
키워졌다.
몹시 다행스럽게도
유모는 매우 정상적인 사람이었고
균형 잡힌 성품을 지닌
온화한 사람이었다.
유모에게서 자란 아이는
조용하고 단정한 성품으로 자라났으나
유모가 보기에
오히려 그것은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 집안에 어울리지않는,
몹시
불길한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마음을 부정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아이는
사랑 많은 유모로부터
사랑넘치는
건강한 마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나이 먹고 병든 유모가 해고되면서
아이는
마음이 없는 부모와 크고 아름다운 집에
홀로
남았다.
김약사와 박약사는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각자의 약국들은 번창을 거듭하며
돈이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모르는
김약사는
계속
벌기만 하고 있었다.
나르시시트 박약사는
돈자랑할 때 빼고는
돈을 쓰지 않는 식으로 자기돈을 아끼며,
오히려 주변을 통해 원하는 것을 취하는
착취자로 살고 있었다.
그들의 집,
곳곳에는
달러와 금괴 그리고 현금 다발들이
금고에 숨겨져 있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바라며
간절히 바라볼 때마다
김약사와 박약사는
아이 손에
다 쥘수도 없는
돈다발을 쥐어주곤 했다.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거의 소멸되어 버린 김약사에게
아이에게 주는 돈다발은
그나마 흔적이라도 남은
마음을 표현하는 자선 행위였고,
박약사의 돈다발은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하는 도구로서
본인의 아이가 완벽해야 하므로 사용하는
경제적 소비에 불과했다.
심지어
박약사는
그때마다 늘어놓는
온갖 돈에 관련된 잔소리들을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돈다발은
부모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화할 줄 모르는 부모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아이는 모른채 자랐다.
다만 유모가 곁에 있을 때는
유모와 소통하며 사람다움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유모가 곁에서 사라지자
유모와 함께 사람의 온기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물 안 주고 키우는 식물처럼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홀로 남은 아이에게
그나마 공부는 친구였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학교에서 받는칭찬과
모범생을 향한 선생님들의 관심을 먹으며
아이는 자라났다.
시들어 가다가도
자기쪽으로 잠깐 향한 관심이 고마워
잠시 웃었고,
부모가 준 돈으로
반 친구들 생일을 몰래 챙길 때마다
찾아오는 기쁨에
가끔씩 키가 컸다.
아이의 수첩에는
학기 초에 수집한 반아이들의 생일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렇게 돈을 써도
부모가 준 돈다발은 너무 많았다.
날마다 아이의 통장에 쌓여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드디어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적은 남아돌았지만
아이는 아빠가 졸업한 대학의 약대를 들어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박약사는
가끔 약국을 방문하곤 했던
아이의 담임선생에게서
자기 딸의 성적을 들어 알게되었다.
선생은
최고의 대학을 갈 수 있었는데도
아이가 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최고의 대학을 놓친 아이의 어리석음과
엄마로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선생에게 들켰다는 사실때문에
박약사는 몹시 화가 났다
아이를 용서할수가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박약사는
아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제라도 느끼는
엄마의 사랑 혹은 관심이라며 견디던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립을 선택했다.
학대를 모른채 견디기에는
아이는 이미 많이 자라있었다.
어차피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의 독립은 의외로 쉬웠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손에 쥐어준 돈다발은
아이의 수중의
큰돈이 되어있었다.
아이는
그 돈으로
부자동네에 낡은 아파트를 샀다.
아파트 내부는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고쳐서
월급쟁이 약사로 살아가는 내내
그곳에서
홀로 살아갔다.
원래는 집을 나와 유모를 찾아갔으나
유모는 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김약사가 된 아이는 자책하며 울었다.
본인에게 있던 돈다발로
유모를 치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후회하며.
아이는 자라 김약사가 되었고
아버지 김약사는
크고 넓은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취한 채 계단을 내려오다 굴러
뇌출혈로 즉사했으나,
한 달간 여행을 떠난
박약사의 부재로 인해
한 달 후에 발견되어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남편 김약사가 죽은 집이
너무 무서웠던 박약사는
가장 최근에 지어지고 제일 비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박약사는 그곳에서
갑자기 귀신을 보기 시작했다.
유명한 의사를 찾아다니다 만난 마지막 의사는 정신과의사였다.
그 명의는
오래된 불면증과 성격장애에 가려져 안 보였던
조현병을 진단 내렸다.
조현병을 받아 들 일수 없었던 박약사는
신내림이라는 주변의 말에 혹해
차라리 조현병보다는 신내림이 낫다며
신내림을 받던 중
벼락에 맞아 즉사했다.
그 옆에 있던 당산나무가 갈라 쓰러질 만큼
엄청난 벼락이었다.
가족이라고는 젊은 김약사밖에 없었으니
소식은 김약사에게 전해졌고
부모의 그 많은 재산은
김약사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돈 쓸 줄 몰랐던
아버지 김약사를 닮은 김약사는
자신의 몸에 병이 생길 정도로 불행하게
돈을 벌며
근근이 살아갔다.
김약사 가방에서 나온 돈다발은
김약사가 늘 지니고 다니던 비상금이었고,
벤츠 차 키는 어머니의 물건이었으며
낡은 명품 지갑은 아버지 물건이었다.
온전히 김약사의 것이라곤
보잘것없는
가방뿐이었다.
쓰러진 김약사 옆에 놓인 가방 안에는
부모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부모를
평생 이해할 수 없어 미워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다정도 병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던
김약사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