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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Mar 02. 2021

46살 아줌마 하버드 생존기 I

하버드에서 발견한 나, 내가 발견한 하버드

하버드에서 나를 발견하다


2009년 8월 말,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하버드를 만났다. 보스턴의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 아래 하버드에서의 경험이 시작되었다. 하버드 학생들의 첫인상은 여름의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강렬했다. 여유 있는 표정. 활짝 웃는 미소. 그들의 얼굴이 빛났다.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또 다른 성취를 위한 출발선에 서 있는 그들이었다.


신입생 환영 파티가 시작되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래드클리프 야드 Radcliffe Yard는 어느새 신입생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야드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이미 몇몇이 춤을 주고 있다. 건너편에서는 둥근 탁자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래드클리프 야드에 가득하다.


하버드 생활을 시작하는 행복감과 설렘이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배어 나온다. 2009년 가을학기 신입생 환영 파티장에서 만난 하버드 신입생은 모두 활기 넘치고 환했다. 그들은 목표를 성취한 뿌듯함과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다시 서게 된 학문의 전당에서 느끼는 감회는 특별했다. 이날 나는 그 어느 집단에서도 느끼지 못 한 강한 자신감과 충만한 행복감을 그들에게서 보았다.


9월의 첫 주. 드디어 하버드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떨리는 가슴으로 첫 수업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교수들은 어떨까? 학생들은?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대부분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다.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하거나 1-2년 사회경험을 쌓고 온 학생들로 보인다. 나의 클래스메이트들! 나와는 2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난다. 이 젊은이들과 함께 힘든 하버드에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는 잘 해낼 거야! 내 나이에 뭐가 두려워. 아줌마 배짱으로 해 보는 거야. 설렘과 긴장감으로 팽팽해진 마음을 다 잡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첫 학기에 네 과목을 수강했다. 대부분의 수업이 학생 간의 토론과 질문 위주로 진행되었다. 수업 전에 100-300 페이지 정도의 교재와 논문을 읽고 가야 한다. 교수는 학생이 미리 읽고 왔다는 전제 아래 수업을 진행한다. 교수가 핵심 논지를 말하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학자의 견해를 설명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낸다. 개념과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기에 수업 전에 예습은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교수의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문에도 답할 수 없고 토론에도 참여할 수 없다.


교수가 질문을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온다. 서로 발표하려고 야단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토론 참여의 모습은 처음이다. 발언권을 교수에게 얻어 발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업의 흐름이나 의견교환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논의에 끼어들어 말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열띤 토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멍하니 지켜보았다. 강의가 아닌 발표 중심의 수업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모두 발표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 속에서 첫 주 수업은 거의 듣기만 했다. 그러던 중 ‘나는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면 유난히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인 데다가, 교수와 학생 모두 낯설어 토론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게 영어는 외국어다. 논리력도 달리는 내가 학문적인 토론을 영어로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5년 넘게 공부나 학문적인 토론과는 담쌓고 지내온 나다. 아이 엄마로 가정 주부로의 지낸 몇 년의 간극이 하루아침에 메워질 수는 없음을 인정하자. 서두르지 말자. 스스로를 타일렀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시작하기로 했다.


“전략을 짜자!”


 매일 질문 한 가지씩 하자. 일단 교재와 논문을 정독하자. 미리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논의나 논쟁의 중심이 되는 내용을 찾아 질문거리를 서너 개 준비했다. 교수의 강의와 수업의 흐름을 잘 포착해 적절한 순간에 질문을 했다. 이렇게 한 시간에 질문 한 가지로 시작한 도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수업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긴장감도 누그러졌다. 때때로 핵심을 찌르고 순발력을 발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교수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안 하거나 토론이 진행되다가 막히면 교수는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에 대한 기대의 표출이었다. 이런 순간이면, 느끼는  뿌듯함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수업 중에는 언제나 긴장되었다. 간혹, 토론을 하다가 말이 꼬이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허둥댄다. 간신히 말을 마치고 나서 내 모습을 떠올리면 부끄럽고 창피하다. 내 도전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실패했고, 실패에 따른 자괴감으로 한동안 발표도 안 하고 강의실 귀퉁이에 박혀 있기도 했다.


의기소침해지고 용기를 잃게 되더라도 그냥 주저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30대 후반에도 할 수 있었던 것은 40대 중반인 지금도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었다. 그래. 뻔뻔해지자. 실수와 실패는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성공의 순간만 기억하자. 자꾸 작아지고 물러서려는 나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아가도록 최면을 걸었다. 용감한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되어 버텼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프리젠테이션은 더 큰 도전이다. 프리젠테이션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이용해 짧게는 10분에서 수십 분을 발표해야 한다. 성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여러 사람 앞에 서면 지나치게 긴장해 발표를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나 자신을 잘 알기에 긴장감을 줄이려면 발표 내용을 장악해야 했다. 완벽하게 준비하면 긴장이 돼도 비참하게 실패하지는 않는다.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철저히 준비했다. 발표 내용의 스크립트를 작성해 연습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용을 반복해서 읽고 말해 외우다시피 했다. 녹음도 했다. 녹음한 내용을 모니터하고 다시 연습했다. 발표하는 날, 강의실에 새벽같이 도착해 미리 리허설도 했다. 실전과 똑같은 물리적 공간과 상황에서 연습하기 위해서다.


공부를 하면서, 발표를 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느꼈다. 내용이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핵심을 정리해 나의 말로 전달하려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늘 배움의 과정에 고군분투하였다. 부족함을 알기에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능력은 노력으로 메꾸면 된다. 연습을 여러 번 하고 리허설까지 하면 긴장이 덜 되었다.


노력으로 메꾸려는 나만의 전략 아닌 전략이 안 먹힐 때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연달아 프레젠테이션이 몰린 주가 있다. 이런 때는 거의 잠을 못 자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한다. 시간이 부족해 충분히 연습을 못한 경우, 결과는 좋지 못했다. 발표 중 헤매고 할 말이 기억이 안 나 버벅거리기도 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더구나 40이 다 되어 미국에 와 현지 영어를 체험한 나에게 연습과 노력은  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학 캠퍼스에 살지 않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에서 통학하는 나에게,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유치원생 아이들 돌보는 엄마에게, 충분히 연습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잠을 줄여 준비하고 발표 연습을 했다. 몰아치듯 몇 차례의 프리젠테이션을 끝내고 난 후의 주말 휴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변화하고 발전했다. 땀과 눈물의 시간 가운데 나의 인내와 노력은 고스란히 나의 몸에 녹아들어 나의 능력으로 자리잡았다. 나의 학문적 토론 능력이 성장한 것이다. 마지막 학기에는 수업 중 토론을 어느 정도 즐기게 되었다. 교수가 편안한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업은 토론 참여가 더욱 즐겁다. 토론을 통해 ‘나의 지식과 통찰’ , ‘나’를 표현함으로써 얻는 기쁨이 크다. 나의 발언이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때는 더 큰 성취감을 느꼈다.


 프리젠테이션도 보다 편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적당히 긴장이 되면서 심장이 살짝 쫄깃해지는 느낌에서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고도의 집중을 하며 나를 표현하는 순간을 즐기려고 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즐기자! 이런 생각이었다.


이제는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이 있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고자 한다.  초긴장 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숨이 멎을 것 같아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하던 내가 아니었다. 첫 주 수업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나였다. 나의 이런 변화는 내가 봐도 실로 놀랍다. 따뜻하고 편안한 토론 분위기를 만들어준 교수와 동료 학생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교수의 역할이 컸다. 소심한 나를 용감한 토론 참여자로 이끈 교수님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하버드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학문적 이론이 현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생의 창의적인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학생 스스로 이론과 자신의 경험을 결부시켜 나름대로 독창적인 논리를 만들어 가도록 격려한다. 단순히 저명한 학자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바탕으로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고무한다. 이런 하버드 교수의 지도방식은 엄마와 교사로서의 나의 경험이 학업의 원천으로 쓰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육아 경험과 교직 경험이 토론과 발표는 물론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로 양육하는 엄마의 경험을 토론과 연구에 적용하였다. 특히, 아동의 이중언어 발달,  읽기/쓰기 능력 발달에 관한 수업에서 큰 몫을 했다. 다섯 살 난 아들의 한국어-영어 쓰기 발달 사례 연구를 수업의 프로젝트로 제출했다. 연구자로서의 훈련과정에서 쓴 사례연구이지만 공부를 시작해 처음 독자적으로 수행한 연구였다. 이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큰 성취였다.


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하버드에서 주최한 학생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프리젠테이션 Poster Presentation 부문에 참여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여한 공식 학술대회였다. 10년 전의 나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했다면, 내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학술대회에도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최선을 다 했지만, 엄마로서 주부로서 한정된 시간과 1% 부족했던 도전정신이 여전히 아쉽다.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2년을 하버드와 집을 오갔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먼 거리를 오가며 통학했던 나에게는 공부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너무 한정적이었다. 24시간을 오로지 공부에만 쏟을 수 있기를 소원하며 2년을 보냈다. 거의 고3처럼 살았다. 하늘이 빙빙 돌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돌보며, 아내로서 주부로서 일을 해냈다. 엄마로 주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숨고를 틈 없이 살았다. 후회 없이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태어나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다. 졸업이라는 성취도 기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나의 아침은 새벽 5시 반에 시작되었다. 아직은 캄캄한 새벽이다. 오늘의 수업을 확인한다. 그날 수업에 다룰 교재와 논문을 못 읽은 경우, 학교 도서관에 일찍 가서 읽어야 한다.  필요한 책과 자료를 챙겨 가방에 넣는다.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할  페이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자기 전까지 골몰했는데, 아직도 가닥이 안 잡힌다. 페이퍼를 어떻게 쓸까, 오늘 토론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할 일과 생각이 많은 아침을 시작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긴다. 어제 장을 보면서, 건강과 맛, 아이 기호를 고려한 식재료를 많이 사 왔다.  간식 가방에 넣어 둔다. 오늘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도 꼼꼼히 살핀다. 어제 아이를 깨워 씻기고 먹인 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는 것은 남편의 몫이다. 남편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하는 쪽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나를 위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와 다른 간식을 가방에 넣었다. 나의  하루 양식이다. 오늘 필요한 교재와 노트, 필기구, 컴퓨터가 가방 속에 있는지 다시 확인한다. 아줌마의 버릇이다. 주부 건망증이 도질까 봐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된다.


공부가 내 중심이 되었던 2년간의 일상이었다. 하버드에서 공부하며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매일 정진하는 가운데 배우고 성장했다. 그 여정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실수와 실패로 가슴이 아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속상했고 잘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하지만, 실수와 실패는 나의 부족함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가 어떤 면이 취약한 한지를 아는 것은 나의 지력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었다.  어떤 부분을 고치고 다져야 하는지 아는 이상 더 나은 자신에 대한 희망이 있다.


시행착오로 괴로웠던 기억 중 하나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다. 학생으로서의 나의 노력과 성장, 발전을 성적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점수에는 목숨 걸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공부 자체로 즐기기 위해 점수에 초연해지려고 했다. 실제 나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수업 토론 참여, 프리젠테이션과 더불어 페이퍼 쓰기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나, 업그레이드되는 나의 능력을 요구했다. 또한, 기말 성적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요한 과목의 첫 페이퍼에서 B를 받았다. 내가 제출한 페이퍼에 코멘트와 더불어 B로 매겨진 평가에 충격에 휩싸였다.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 못 자 가며 정성을 기울여 쓴 페이퍼였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수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원하는 페이퍼, 하버드가 원하는 라이팅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채, 용감하게 페이퍼를 제출했던 것이다. 그것이 실수였다. 하버드가, 교수가 바라는 학문적 글쓰기의 스타일과 논문 포맷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은 페이퍼를 쓰는 지름길이었다. 교수는 하버드에서 제공하는 라이팅 센터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했다.


교수의 조언에 따라 라이팅 센터의 컨설팅을 받았다. 그다음 페이퍼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섰다. 과제의 평가기준 Rubrics에 충실했다. 결과는 최고 점수인 A였다. 너무 기뻐 컨설팅을 해준 라이팅 센터의 TF(Teaching Fellow)에게 페이퍼와 교수 코멘트를 보여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이후부터는 시행착오 없이 페이퍼를 쓸 수 있었다.


교수로부터 페이퍼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 나의 학문적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 결과 첫 학기 첫 페이퍼를 쓸 때와 졸업에 즈음해서의 나의 글쓰기 능력은 괄목 성장했다. 그 이후 받은 페이퍼 평가는 모두 A였다. 나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자문과 조언을 구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내가 발견한 하버드


하버드에 다니는 큰 장점 중 하나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교수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지닌 교수에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다중지능 이론 Multiple Intelligences Theory의 창시자로 유명한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의 수업을 접할 수 있었고, 한국에 밥상머리 교육으로 잘 알려진 캐서린 스노우 Catherine Snow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내게는 저명한 석학의 강의를 접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경험이 있다. 하버드에 가기 전에는 전혀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했다.  하버드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하버드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나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가 발견한 하버드의 색다른 모습이란 어떤걸까?


 하버드 하면 명문, 우수, 수재, 리더, 부자… 이런 말들이 연상된다. 실제로, 명예, 성공, 부로 대변되는 많은 인물들을 하버드 출신이다. 2021년 1월 기준,  8명의 미국 대통령, 13000여 명의 억만장자, 15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하버드 출신 미 대통령으로는 루스벨트 Theodore  Roosevelt, 케네디 John F Kennedy, 오바마 Barack Obama 등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인 빌 게이트 Bill Gate와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Mark Zuckerberg도 하버드 출신이다.  


 하버드는 미국 최고의 엘리트 학교다. 세계 제일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학교다. 우리에게 비추어진 하버드의 모습은 미국 주류 사회의 사고와 가치를 지향한다. 최고의 명문, 수재들의 집합소, 성공과 출세의 길로 이해되는 하버드의 이름은 가히 매력적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하는 학교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특권과 오만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하버드 학생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식에서도 잘 나타난다.


아래 글은 수업을 같이 들었던 미국인 하버드 대학원생들이 온라인 토론에서 한 말이다.


 “하버드는 실로 최고의 학교이며 엘리트 코스의 상징임이 분명하다. 하버드라는 이름에는 특권과 오만이 함께한다.”


“누구와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하버드에 다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것과 노벨상 수상자가 아님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하버드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보스턴으로 다닌다고 답한다.”


미국에서도 하버드가 일반인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 그런 하버드의 모습을 역으로 인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연상작용의 영향인지 내게는 하버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미국 주류 사회의 가치를 지향하기에 보수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당히 권위적이고 근엄한 학풍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선입견은 첫 주부터 줄줄이 깨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를 권하는 하버드


하버드에는 나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킬 좋은 강의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이민사에 대한 과목이었다. 이주민의 이중언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미국 이주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 이주민이 처해 있는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한 이해는 내 전공의 중요한 배경 지식이 되기에 그러하다.


중국인 2세 사회학 교수가 가르치는 미국 이민사에 대한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교수는 수업 첫날 강의의 성격과 실러버스, 교재 등을 소개했다.  미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마르크스를 읽었는지 물었다. 자본주의의 구조와 문제, 모순을 명확하게 설명한 자본론과 당시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혁명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했던 그의 사상이 담긴 공산당 선언에 대해 언급했다. 현실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이 있는 한, 그의 이론과 사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고 피력했다.


학생들에게  마르크스 저서를 읽은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강의실에는 30여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단 한 명의 손이 올라갔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하버드에 오기 전에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두 학기를 다녔다. 이 학교의 응용언어학과는 진보적인 학풍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학과는 페다고지 Pedagogy of The Oppressed로 유명한 브라질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 Paulo Freire와 뜻을 같이 하며  언어와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를 추구한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이 학과에  방문해 여러 차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진보적인 커리큘럼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읽었다.


마르크스의 책은 80년대 말까지 한국에서는 금서였다. 마르크스 책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주의자, 용공분자,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의 처벌을 받았다. 미국에서 이 글을 쓰면서 한 순간 잠깐 움찔했다.  혹시, 수년 전 미국에서 마르크스 저서를 읽은 것이 국보법에 걸리는 건 아닌지. 지금은 한국 상황이 좋아져, 마르크스의 저술은 금서가 아니며 심지어 대학생의 교양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2021년을 사는 나를 여전히 위축시킨다. 남한에서 40년을 산 나에게는 잠재의식 속에 국보법에 대한 공포와 이를 피하려는 자기 검열이 자리 잡고 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마르크스를 꼭 읽어 볼 것을 권했다. 너무 뜻밖의 권유였다. 하버드에서 마르크스를 읽으라고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국에서 반공교육, 반북 교육을 아주 세게 받고 자라 나에게 다소 놀랍기까지 한 강의실 풍경이었다. 하버드 하면 보수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버드는 엘리트 학교다. 세계 제일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지키려는 가치를 그대로 지향하는 학교로 알고 있었다.


교수는 강의를 진행해 가면서 마르크스의 고뇌, 사상, 그가 꿈꾸던 새로운 세상에 대해 언급했다. 마르크스를 읽으라고 권하는 하버드는 내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하버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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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보보가 발견한 하버드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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