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서 경험한 미국의 계급과 인종 문제
애틀란타 총격 사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시안 혐오 범죄가 우리에게 큰 층격을 주고 있는 이 때, 인종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시안, 흑인, 라티노 모든 소수인종들은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 함께 인종차별없는 평등한 미국을 이루어야 하는 동지들입니다. 이 생각을 나누며 고군분투 했던 3년전의 경험을 글로 써 보았습니다. 흑인 커뮤니티 학교에서 경험한 미국사회의 계급과 인종 문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는 없다
사회 계급별로 양육방식과 언어 사용에 차이가 클 뿐만 아니라 교육의 기회도 불평등을 앞에서 언급했다.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가정에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교사로서 체험한 부자 학구와 가난한 학구의 교육여건의 불평등 또한 컸다.
계층과 인종별로 모여 사는 미국이기에 기반 시설이나 교육시설의 편차 또한 지역별로 크다. 철저한 지방자치제에 근거하는 미국이기에 그 지역에서 걷어들이는 재정은 그 지역 주민의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교육시설과 문화시설 모두 그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설립되고 운영된다. 세금이 적게 걷히는 도시나 타운의 재정은 어렵기에 교육이나 문화 시설에 지원도 적다. 가난한 지역의 학구의 교육 여건은 열악할 수밖에 없다.
지난 7년간 4개의 학교를 거쳤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경험했다. 각각 다른 학구에 속한 학교다. 첫 학교는 노동자 계급과 저소득층이 많은 흑인이 대다수인 보스턴 도심의 학교였다. 두 번째는 보스턴 근교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블루칼라 타운의 학교였다. 브라질 이주민 가정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세 번째는 보스턴 근교의 큰 도시로 노동자 계층과 저소득층의 흑인들이 많은 학구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네 번째는 보스턴과 인접한 백인 중산층 타운의 학구로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이주민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들은 서로 20마일 (30km) 정도 떨어진 거리로 차로는 30-40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다. 넓은 미국 땅에서는 30km는 가까운 거리다.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이 학구들에서 나는 교육환경과 교육기회의 큰 차이를 경험했다. 인종과 계층의 구성도 아주 큰 차이가 났다.
2018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가장 큰 도시, B시의 중학교에 근무했다. 미국에서 근무한 세 번째 학교였다. 그 이전에 근무한 학구는 아이랜드계 이주민이 많이 사는 백인 타운이었다. 이 학구의 유일한 동양인은 나였다. 백인 문화 속에서 백인에 둘러싸여 2년 반을 근무했다. 보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첫 근무지인 차터스쿨에서 흑인 학생들과 맺은 끈끈한 유대는 미국 교사 생활에서 진정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때의 따뜻한 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흑인 커뮤니티 학구의 S 중학교에 근무를 시작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120명의 ESL 학생을 가르쳤다. 하루 5시간의 수업을 했다. 매시간 25명 정도를 가르친 셈이다. 원래, ESL 수업은 소그룹 지도를 특성으로 한다. 학생들의 수준과 학습 특성, 요구에 맞게 짜인 교육과정과 수업모델을 적용하기 위해서다. 효과적인 언어 학습을 위해 소그룹 수업을 권장한다. 첫 학교와 그 전 학교에서는 한 시간에 4-8명 정도를 가르쳤다. 내가 맡았던 전체 학생 수는 25명 정도였다. 이 학교에서는 무려 5배나 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교사 1명당 학생수가 25명에서 120명으로 껑충 뛴 것이다. 수업의 질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수업을 디자인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교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사회 교사가 부족해, 사회과목 전공이 아닌 내가 7학년 학생들의 사회를 가르치기도 했다. 미국의 정치제도와 헌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공자가 아닌 나는 새롭게 공부하며 가르쳐야 했다. 최선을 다 했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내게 사회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학생들 중 대다수가 무료급식 대상자였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지 않다.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무료 점심 Free Lunch나 소득에 따라 점심값을 할인해 주는 Reduced Lunch가 제공된다. 대다수 학생들이 무료 점심이나 할인된 가격의 점심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이 학구의 주민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나타낸다.
더 많은 배려와 지원이 필요한 곳이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회과목에서는 15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ESL 수업에서는 25명에서 30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그야말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은 나은 편이었다. 교사 중에는 한 교실에 30명이 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다.
낙후된 학교시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흑인 학생들. 삶의 불평등, 교육의 불평등은 가정으로 이어졌다. 학부모 대부분이 삶의 무게에 눌려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었다. 매일매일 불안정한 고용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분들이었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가정에서의 보살핌과 돌봄이 없기에 숙제를 하라고 말하는 어른도 챙겨주는 어른도 집에는 없다. 숙제를 내주어도 제대로 해 오는 학생이 별로 없었다.
라루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방과 후에 아이스하키, 축구, 농구, 야구 등의 스포츠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플루트 등의 악기 연주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하느라고 바쁘다. 이런 방과 후 활동이 그들에게는 여가와 놀이이며 전인교육을 위한 학습의 연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조직된 교육활동에는 부모의 관심, 시간, 경제적 능력이 필요하다. 한국처럼 학원차가 운행되지 않기에 부모가 운전을 해 아이를 예체능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데려다주고 데려와야 한다.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나 가능한 교육지원활동이다.
내가 근무했던 흑인 커뮤니티 학교의 아이들에게는 다른 중산층 타운의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방과 후 활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하루하루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기에도 이미 버거웠다. 이 부모님들에게는 스포츠와 음악 등의 예체능 수업료와 부수적으로 필요한 경비를 지불할 여유도 아이들을 차로 라이드 해 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티브이를 보거나 동네를 돌아다닌다.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
부모님들이 느끼는 삶의 힘겨움은 학생들을 통해 전해 젔다. 생계를 꾸려가느라고 힘겨운 부모들은 돌봄과 관심의 손길을 자녀들에게 내밀 수가 없었다. 부모님들의 깊게 파인 주름과 거친 손에서도 그들의 삶의 힘겨움이 느껴졌다. 정기적인 학부모 면담 행사에서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인사하며 악수를 나눌 때, 나는 언제나 가슴이 뭉클 해졌다. 나의 손에서 느껴지는 거친 손의 감촉으로 부모님들의 성실하고 고된 삶이 전해졌다. 육체노동으로 박힌 굳은 살. 삶의 무게가 전해지는 얼굴 표정. 이 사회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바로 이 부모님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부모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한다. 자식을 위해 더 시간을 내고 더 신경을 쓰지 못하는 미안함을 표현한다. 교사에게는 최고의 존경과 예의를 표한다.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의 문제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알려 가정에서의 도움을 구할 때도, 내 말을 신뢰하고 나의 판단을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나의 평가나 권고에 저항하지 않고 존중하며 받아들였다. 순수하고 순박한 흑인 학부모님들의 모습을 통해 자식 교육을 위한 그들의 진심을 느꼈다.
학생 S의 부모님과의 면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케이프 버디 출신인 이주민 부모님 두 분이 자식의 학교생활에 전반에 대한 상담을 하고자 학부모 면담 행사에 오셨다. S는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나에게 자주 주의를 받는 학생이었다. 수업에 집중 안 할 뿐 만 아니라 수업 중 소리를 내거나 돌아다녀 다른 학생들에게도 수업의 지장을 주는 일이 많았다. 부모님께 솔직하게 S의 문제에 대해 말했다. 가정에서 잘 타일러 수업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이럴 경우,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교사에게 항의를 하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부모님들은 언제나 자식의 잘못을 수긍하고 교사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마치,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우리 부모님들이 학교 선생님을 대하는 그런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았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과 삶의 무게로 자식을 제대로 보살필 수 없는 현실의 간극은 컸다. 많은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문제를 겪었다. 수업 중 소란과 수업태도 불량으로 수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 학업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 하고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 모두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학업에 관심이 없고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갱단에 연루되는 아이들도 있다. 이 학구의 고교 자퇴율은 매우 높다.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범죄에 연루되어 극한의 상황을 맞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 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다.
동료 교사가 신문을 읽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감정을 진정한 후, 그녀는 한 흑인소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이 총을 맞아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 얼마 안 가서 학교를 그만두고 갱단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녀는 그 소년이 많이 걱정되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소년은 마약 배달을 하는 심부름을 하다가 다른 갱단의 총에 맞았다. 제자의 죽음을 신문기사로 접한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마주하는 어두운 일상과 앞으로 비극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진정 지원과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한국인 이주민 아줌마 교사인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미력한 내 존재가 답답할 뿐이었다.
아침마다 등굣길에는 경찰차가 순찰을 했다. 매일 학생들은 경찰 순찰차를 보고 경관을 보며 등교했다. 이 학교에는 경찰이 상주하였다.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기에 그러하다. 나 역시 학교 경관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다. 교장이나 교감의 권위와 감독만으로 다룰 수 없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종종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이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학교에서 수백미터 거리의 주택가에서 총기에 맞아 남자 성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학구에서 갱단 멤버들 간의 총기 사망 사건도 있었다. 이런 지역의 특성상, 학생의 안전을 위해 경찰차가 수시로 순찰을 하고 학교에 경찰이 상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