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불온한 미쿡 아줌마의 당돌한 북한 여행기
모란봉에서 만난 카드놀이하는 소녀들
2019년 8월 3일 토요일. 안내원과 나는 비탈진 콘크리트 길을 천천히 오르고 있다. 뜨거운 한여름 불볕더위 탓인지, 안내원은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뿜어낸다. 얼굴에 주르르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우리는 지금 모란봉에 오르는 중이다. 평양 도심에 우뚝 솟은 봉우리 모란봉. 그 모양이 마치 활짝 핀 모란꽃과 같다고 해서 모란봉으로 불린다. 모란봉의 높이는 96m이다. 아주 높지 않은 봉우리다. 모란봉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모란봉 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조경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콘크리트나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가볍게 오르는 모란봉 길이다. 길을 따라 군데군데 “청량음료”라는 간판을 단 매점도 보인다. 작은 정자도 예쁘게 꾸며져 있다.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잘 꾸며진 듯하다.
잠시 그늘에 앉아서 쉬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일군의 여학생들이 나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중학생 정도 되었을까. 여리고 앳된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들에게 다가간다. 머리를 맞대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서구권에서 들어온 바로 그 카드놀이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70년 휴전 상태로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북측이다. 내게는 북측이 미국의 문화나 물건은 의식적으로 배척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서양문화 내지 미국 문화의 일부로 볼 수 있는 카드놀이를 북한의 여중생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또 다른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여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학생들, 안녕하세요? 나는 재미동포예요. 지금 뭐 해요? 와, 지금 카드놀이하는 거네요?”
“ 네, 우리 주패놀이합니다.”
머리핀을 얌전하게 꽂은 한 여학생이 수줍은 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학생들 모두 흰색 셔츠에 검정치마 그리고 붉은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있다. 소년 단복이다.
북에서는 서양식 카드놀이를 주패놀이라고 하나 보다. 여학생의 대답에서 새롭게 알았다.
여학생들은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걸자 하던 주패놀이를 멈추고 수줍어 어쩔 줄 모른다. 내 이름을 말하고 이름을 묻자,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해 알아듣기 어려웠다. 재미있던 하던 카드놀이도 멈춘다. 외부인의 존재가 불편한가 보다.
북에서 만났던 동포들은 대부분 스스럼없이 대해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는데, 오늘 모란봉에서 만난 이 여학생들은 아주 얌전하다.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 않고 남은 일정도 많고 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만 갈게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학생들 계속 재미있게 놀아요. ”
북에서 만난 우리 동포들은 모두 각양각색이다. 저마다의 개성과 성격에 따라 나의 질문과 이야기에 대한 대답과 반응이 다 다르다. 그래도, 대체로 붙임성이 좋고 씩씩하다. 대답도 잘해 주고 오히려 나에게 이것저것 많이 묻기도 한다. 만주 벌판에서 말 달리던 고구려인의 정기를 받아서인가. 나와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많은 평양시민들은 활달하고 명랑했다. 살갑고 활발하게 얘기를 잘하는 북녘 동포들도 있지만, 더러는 말을 걸면 수줍어서 대답을 잘 안 하는 동포들도 있다. 오늘 모란봉에서 만난 여학생들은 후자의 경우인가 보다.
불쑥 다가가서 말을 건 나를 무례하게 여기지 않아 주었기를 바랄 뿐이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하느라고 노력한다. 북녘 동포들을 보면 마치 70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두 손 꼭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때로는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으리라. 수줍어 어쩔 줄을 몰라하던 여학생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멀리서 온 이 재미동포 아줌마는 그저 미안할 뿐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자.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에 가다
대동강변을 달려 우리의 평화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이다. 육아원과 애육원은 고아를 돌보는 보육기관이다. 20여 년을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필자이기에 보육시설과 교육기관은 나의 최대 관심사다. 평양의 고아원은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안고 차에서 내린다. 유리창이 많은 산뜻한 삼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앞에 육아원 교원이 마중 나와 있다. 나를 반갑게 맞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육아원 투어가 시작된다. 건물 안에 들어선다. 너무도 친숙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다. 남쪽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 많이 보던 그런 실내 장식과 분위기다. 서울의 유아원에 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색동옷을 입은 남녀 어린이가 방긋 웃으며 평양육아원을 찾아온 나를 환영한다. 실제 어린이가 아니라,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 옆에 예쁜 글씨체로 쓰인 “평양육아원” 실내 간판이 보인다. 화사하고 아동 친화적인 인테리어와 벽지가 이곳이 아동 보육시설임을 말해준다. 그의 친절한 안내가 시작된다.
육아원은 신생아부터 만 4세까지의 고아, 미숙아, 부모가 사정상 보살필 수 없는 아이, 세 쌍둥이 등을 양육하는 시설이다. 100여 명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양육 교사와 생활한다. 육아원은 아이들의 주거 공간, 놀이실, 학습실, 목욕탕, 식당, 실내외 수영장, 야외놀이터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의사, 간호사, 약사가 상주하는 의료실도 있다.
그를 따라 육아원 시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처음 안내된 곳은 놀이장. 100평은 더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다. 원형의 공간에 온갖 놀이기구와 장난감으로 가득하다. 미끄럼틀, 모형 주방, 동물 모양의 자동차, 작은 공으로 가득 찬 공덩이 등이 보인다. 20 정도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세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돌본다.
놀이장 한쪽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한다. 까까머리 남자아이가 나에게 모형 과자를 건넨다. 나와 함께 놀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나를 소꿉놀이에 초대한 것이다. 기쁘게 아이들의 소꿉놀이에 함께 한다. 나는 과자를 받아 들고 먹는 시늉을 한다. “냠냠, 누가 만든 과자인지 참 맛나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귀엽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식탁 뒤에 Little Tikes라는 미국 브랜드의 장난감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제품을 더구나 장난감을 평양의 고아원에서 보게 되리라 생각 못 했다. 뜻밖의 발견이다. 미국 제품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다는 의미일까? 이런 궁금증이 인다. 재미있는 소꿉놀이를 마치고 우리는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다.
놀이장을 둘러보았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아이, 말을 타고 있는 아이, 미끄럼을 타며 놀고 있는 아이, 공을 굴리는 아이들, 형형색색 작은 공이 들어있는 공덩이에서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취향대로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가지고 놀고 있다. 보육교사는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보살핀다.
귀엽고 발랄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남이나 북이나 아이들은 해맑고 예쁘다.
안내하는 교원을 따라 아이들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로 이동한다. 복도를 통과한다. 격자모양으로 된 건물의 한가운데는 정원으로 꾸며졌다. 복도의 벽면은 전면이 여러 개의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이 유리창을 통해 정원이 훤히 보인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볕이 복도에 가득하다. 복도의 다른 벽면에 공주와 왕자가 백마를 타고 하늘을 난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 같다. 동심을 반영한 세심한 인테리어다. 복도뿐만 아니라 육아원 모든 공간에서 아동 친화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교실 여러 곳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양 1반 교실에서는 아동들이 교사를 따라 율동을 하고 있다. 교양 2반에서는 아이들이 퍼즐놀이와 블럭조립을 하고 있다. 퍼즐을 조립하고 있는 여자아이를 교사가 도와준다. 남자아이가 외부방문객인 나를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귀여운 표정이다. 큰 교실에 12명정도의 아동들이 두명의 보육교사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침실과 욕실,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4세 미만의 어린 아동들의 체격에 맞는 작고 아기자기한 침대와 이불, 가구들이 갖추어져 있다. 여러 개의 곰돌이 인형이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아이들의 옷과, 모자, 가방이 가지런히 정리된 사물함도 보인다. 가방에 “GYMBOREE Play & Music”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다. 미국 브랜드인 짐보리 가방을 평양의 육아원 어린이들이 사용하고 있다니! 또 다른 뜻밖의 발견이다.
욕실에 여러 개의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마련되어 있다. 파란색 타일이 깔린 예쁘고 산뜻한 디자인이다. 이곳에서도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한 세심함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는 수영장으로 안내한다. 먼저, 실내 수영장을 둘러보았다. 고아원에 실내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다니! 놀랍다. 수영장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감탄은 계속된다. 마치 디즈니 영화에 나올법한 해양생물 캐릭터들이 수영장 벽과 수영장 여러 곳에 장식되어 있다. 수영장은 메인 풀과 여러 개의 보조 풀로 이루어져 있다. 미끄럼틀, 백조모양의 보트, 사과 모양의 집... 마치 미니 테마 워터파크를 연상케 한다. 동심을 사로잡을만한 수영장 시설이다.
‘샤와실’ 팻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자기 귀엽게 꾸며 놓은 샤워실이다. 샤워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어린이용 물놀이 튜브도 여러 개 비치되어 있다. 창 밖으로 실외 수영장이 보인다. 물은 채워져 있지 않고 비어 있다.
다른 방으로 갔다. 세 쌍둥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놀고 있다. 색동옷을 입은 세 쌍둥이는 블록 쌓기 놀이를 한다. 그 옆방에도 귀여운 세 쌍둥이들이 보육교사와 놀이를 하고 있다. 나를 보고 반가운 듯 손을 흔든다.
이렇게 많은 세 쌍둥이를 한꺼번에 보기는 처음이다. 이 곳에 여러 명의 세 쌍둥이가 있는 이유를 물었다. 육아원에서는 세 쌍둥이도 돌본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을 힘들어 하기에 부모들의 요청에 의해 세 쌍둥이들 이곳에서 양육한다. 또한 세 쌍둥이는 나라의 경사이기 때문에 국가가 기꺼이 보살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치료 병동으로 이동한다. 의사실, 내과, 외과, 입원실, 약국 등을 둘러보았다. 의사, 약사,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외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 캐릭터 모양의 치료대와 치료기 구들이 있었다. 아기곰 인형 두 마리가 대롱대롱 치료대 위에 달려 있다. 치료에 대한 어린이의 공포를 완화하기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천사들이 따로 없다”
육아원 투어를 마치고 애육원으로 이동한다. 애육원은 만 4세에서 5세의 고아를 돌보는 시설이다.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간다. 잔디 위로 미니 기차 철로가 놓여 있다. 아이들을 위한 기차다. 사과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애육원 마당의 사과나무와 기찻길에서도 동심을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아이들을 위한 꿈동산을 꾸며 놓은 듯하다.
애육원 마당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마련되어 있었다. 시소와 그네, 그 밖의 놀이기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이라, 밖에서 노는 아이들은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모범 애육원’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교장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나를 맞는다. 교장 선생님이 특별히 안내해 주신다고 했다.
육아원과 애육원 모두 시설이 현대적이고 깨끗했다. 놀이방, 학습실, 침실, 수영장, 욕실, 화장실, 식당 등 생활과 교육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각 도에 육아원과 애육원이 있어 그 지역의 고아와 도움이 필요한 가정의 아동을 돌본다고 한다. 그중 평양 애육원이 운영을 가장 잘하여 우수상 탔다고 평양 애육원에 대한 교장 선생님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과연 북한 최고의 애육원답다.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과 활짝 웃는 얼굴로 즐겁게 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천사가 따로 없다. 아이들은 육아원과 애육원에서 즐겁게 놀고 배우며 자라고 있는 듯하다. 고아나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보육시설을 북이 갖추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다.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 탐방은 북의 사회복지시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