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미쿡 아줌마의 당돌한 북한 여행기
북한이 미사일을 쏘던 날의 평온한 평양
“여보, 당신 정말 괜찮아? 거기 안전한 거 맞아?”
“엄마, 잘 지내세요?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어요. 엄마 위험한 거 아니죠?”
“금주야, 여기서는 북한이 방사포를 쏘아 올린다고 야단이다. 어서 돌아와.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에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언니, 평양에서 잘 있는 거야? 여기는 북한이 미사일을 쏜다고 난리야. 어서 돌아와.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2019년 7월 31일~ 8월 7일. 보스턴과 서울, 인천에서 평양으로 온 메시지다. 이 기간 나는 7박 8일의 일정으로 평양, 개성, 판문점 일대를 방문했다. 내가 북에 머무는 동안 미국에 있는 남편과 아들, 남한에 있는 부모님, 동생들에게도 수시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보통강 호텔에 있는 고려링크로 가서 인터넷을 연결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자, 평양에서 미국에 있는 남편과 아이, 남한에 있는 가족과 대화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 있는 재외동포들과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나의 방북 소식을 전하고 소통했다. 금단의 땅,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남한과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이들과 연락할 수 있었다. 매일 나의 안부와 안전을 가족들에게 전했다. 방북 기간 내내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평양, 개성, 판문점을 중계했다. 옥류관 냉면은 얼마인지, 장마당 분위기는 어떤지, 평양-개성 도로의 사정은 어떤지 등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답을 해 주기도 했다.
내가 북한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북한은 총 3번, 탄도 미사일과 방사포를 쐈다. 나는 평양에서 남한과 미국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다. 북한의 발사체가 미사일 도발이라는 보도를 접한 가족들에게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가족이 얼른 돌아오라고 계속 SNS 메시지를 보냈다. 미사일 때문에 난리라고 했다. 이런 시기에 북한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미국과 남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쏟아지는 메시지에는 북한에 있는 나의 안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혹시 한반도에 전시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득했다. 나의 안위와 안전에 염려로 가득 찬 메시지를 안내원에게 보여주었다.
안내원은 나에게 “로동신문"을 보여주었다.
“리 선생님, 뭐 그런 걸 신경쓰십네까? 일 없습네다. 안심하시라요.”
그는 북한이 새로 개발한 대구경조종방사포의 시험사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적인 군사훈련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로 남한과 미국의 언론이 난리일 때, 평양은 고요했다. 평양 시민들은 지구촌 어느 곳의 시민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다. 대동강변 운동시설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평양시민, 릉라인민유원지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거리에서 빙수를 즐기는 사람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평양 거리를 산책하는 연인들. 정작 평양의 일상은 평화롭게 흘렀다.
북한에선 자신들의 무기를 테스트하는 거라고 했다. 미국과 남측이 북을 상대로 전쟁연습인 한미 군사훈련을 하는데, 방사포를 테스트하는 것은 이에 대한 북측의 대응이라고 안내원은 전했다. 정말 전쟁을 일으키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 북의 교원과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는데, 한미군사훈련기간 동안에 그는 미국이 북을 침략할까 봐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안내원이나 운전기사, 교원, 내가 만난 북녘 동포 그 누구에게서도 남한을 향한 비난을 듣지 못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던 날, 평양의 풍경은 평온했다.
평양시민의 손전화와 앱
인터넷 이야기가 나왔으니 평양의 시민들의 휴대전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평양 거리 여기저기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은 아주 흔하다. 거리에서 바쁘게 걸으며 손전화로 통화하거나 지하철에서 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ㆍ통일부ㆍ통계청ㆍ코트라 자료와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 주요 외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구는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북한 인구(2560만 명)의 15.6%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폰은 이미 북한 주민의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였다.
인터넷이 연결되고 한국과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나의 안부를 전했다. 평양에 잘 도착했고 즐겁게 여행하고 있다고. 그런데, 가족이 얼른 돌아오라고 계속 SNS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사일 때문에 난리라고. 그래서 가족이 보낸 메시지를 안내원에게 보여줬다. 안내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의 앱을 열어 <로동신문>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스마트폰은 어떨까? 너무 궁금했다. 안내원의 허락을 구해 이것저것 앱을 열어 보았다. <공세>라는 앱을 여니 <로동신문>과 다른 언론매체 앱이 보였다. 오락과 도서에 게임 앱도 여러 개 있었다. 북한동포들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정보를 검색하고 인터넷신문을 본다. 젊은이들이 블루투스를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도 종종 보았다.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세계 다른 나라의 시민들처럼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며 일상을 산다. 서울의 시민이나 보스턴의 시민처럼 평양의 시민도 다른 공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매일을 살고 있다. 북녘 동포의 일상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에 평화를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데서 평화는 시작된다.
굿모닝 평양!- 대동강변에서 만난 평양의 아침
2019년 8월 1일. 평양에서의 첫 아침. 아침 산책을 나갔다. 호텔 바로 뒤가 대동강이다. 대동강변을 따라 걷는다. 강변 주변에 아파트들이 쭉 늘어서 있다. 대동강변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화사한 색감의 고층 아파트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강 주변의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어제 평양시내에 첫발을 들이면서 본 현대적이고 발전된 시가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오늘 아침 또다시 눈이 깜짝 놀란다. 연신 속으로 “여기가 서울인가? 평양인가? 한강인가? 대동강인가?”를 묻는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북에서는 살림집이라고 불리는 아파트들. 파스텔 톤의 밝은 색감이 대동강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한 여름의 파란 하늘. 그 아래 연한 풀빛의 대동강. 하늘과 강에 접해 늘어선 쭉쭉 뻗은 고층 아파트. 대동강변의 모습도 이러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강변 보도를 따라 걷는다. 아파트 사이사이 공원과 체육시설이 보였다. 주민 편의시설인 듯하다. 운동기구를 갖춘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의 동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와 비슷한 시설이다. 놀랍다. 주민 체육 편의 시설이 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류의 주민 편의를 위한 공공체육시설을 보지 못 했다. 거의 흡사한 시설들이 남과 북에는 있다. 남과 북의 동질성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인가!
강변을 따라 계속 걷는다. 이번에는 스케이트 파크인 듯한 구조물이 보인다.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설마?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 동공이 커진다. 와우! 스케이트 파크다! 아들이 좋아하겠다. 엄마가 평양에 간다니까 덩달아 신이 난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구글 맵으로 평양에서 스케이트 파크를 찾아보았다. 10살 때부터 스케이트 보드를 타 온 아들은 수준급의 스케이트 보더다. 미국 정부의 대북 여행 금지 행정명령이 해제되면 꼭 엄마랑 아빠랑 같이 북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던 아들이다. 더 나아가 한국 시민의 북한 방문이 가능해지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두 분 고향인 황해도 은율과 장연을 가고 싶다고 했던 아들이 생각났다. 평양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싶다고 했던 아이는 구글 맵에서 평양을 검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 아이의 실망감이란… 그런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있다니!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신기하고 기뻤다.
“어머 저거 스케이트 파크네요! 평양 아이들도 스케이트 보드를 타나 봐요?” 안내원에게 스케이트 파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저거 말입네까? 네 맞습네다. 저기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로라 스케이트도 탑네다.” 놀라운 발견이다. 8시가 조금 지난 이른 아침이었고 평일이었기에 스케이트 파크에서 아이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은 보지 못 했다.
이 기쁜 정보를 아이에게 꼭 알려야겠다. 평양에 스케이트 파크가 있음을 알고 좋아할 아들, 그리고 우리 아이가 평양의 고등학생들과 같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다음 여행에는 꼭 함께 와야지. 평양 스케이트 보드 여행! 우리 아들의 로망이 실현되길!
대동강변에서 만난 노년의 삶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갔다. 60대 노인들이었다.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힘이 넘쳐 보인다. 2명이 짝을 지어 복식으로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여성이 파트너를 향해 콕을 높이 띄워 올린다. 같은 편 남성이 네트 넘어 상대편에게 세게 넘긴다. 콕을 서로 주고 받아친다. 잘하라는 응원의 소리도 들린다.
열심히 배드민턴을 치는 노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5분여 정도 지켜만 보았다. 마침 4명의 복식팀과 함께 온 이웃주민들이 있었다. 내가 재미동포라고 소개하고 먼저 얘기를 건넸다.
“와우, 배드민턴 잘 치시네요. 매일 이렇게 나와서 치세요”
“예, 그렇습네다. 매일 아침 나와서 운동합네다. 퇴직하고 뭐 합네까.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 말입네다.”
“이 근처에 사시나 봐요. 친구분들하고 나오셨나 봐요”
(옆의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살림집에 삽네다. 이웃들하고 이렇게 아침마다 나옵네다”.
이 노인들과의 대화는 10여분 이어졌다. 이들은 퇴직하고 여가를 즐기는 대동강변에 살림집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다. 퇴직하고 나서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자는 60세 여자는 55세가 정년이다. 정년 후에는 생활비(연금)가 정부에서 나와서 생활한다고 한다. 기본 생활용품 중 무료로 나오는 것이 있어 노후생활에 크게 돈이 들지 않는다. 정년퇴직 후에는 이렇게 운동을 하거나 손주를 돌봐주며 소일거리를 한다.
배드민턴 치는 젊은 노인들과 헤어져 대동강변을 따라 더 걸었다. 이번에는 강가에서 낚시하는 좀 더 연로한 일군의 노인들이 보였다. 호기심에 다가갔다. 나를 재미동포라고 소개했다. “ 아, 미국에서 오셨습네까?” 약간의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눈빛이다. “낚시를 하시네요. 물고기 좀 잡으셨나요?’ “예, 붕어 한 마리 잡았습네다.” 양동이 안 찰랑거리는 물속에 은갈색의 붕어가 보였다. “이 붕어는 댁에 가서 매운탕 해서 드시나요?” 중절모를 쓴 노인이 씩 웃는다. 말렸다가 구워서 손주 곽밥(도시락)에 반찬으로 보낸다고 한다. 70대로 보이는 이 노인은 그동안 손주 도시락 반찬 대느라고 열심히 낚시했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나와서 고운 손주를 먹이려고 물고기를 잡고 있다. 갸륵한 할아버지의 마음이다. 강가에 다른 노인들도 여럿 보인다. 모두들 손주를 생각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까? 남이나 북이나 할아버지는 언제나 손주가 눈에 밟힌다.
대동강변, 여름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들이 달린다. 대부분 출근길의 흰색 셔츠나 인민복을 입은 남성들이다. 손녀의 손을 잡고 아침 산책을 하는 할머니가 내 앞에 간다. 잔꽃무늬의 시원한 여름 티셔츠를 할머니와 손녀가 맞춰 입었다. 손녀와 할머니 둘 다 귀엽다. 꼭 잡은 손에서 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 옆에 짐을 실은 자전거도 보인다.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아침 대동강변은 바쁜 듯 여유로운 듯 사람 사는 모습을 드러낸다. 평양시민들은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나 보다. 버드나무 늘어진 대동강변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8월 2일.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 종합대학의 전자도서관을 꼭 보고 싶었는데, 그날 마침 내부 정비하는 날이어서 휴관이었다. 방학 중이어서 강의는 없었다. 몇몇 학생이 대학 교정을 오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삼삼오오 여학생들이 양산을 쓰고 걷는다. 8월의 작열하는 태양은 강한 여름 볕을 쏟아낸다. 여성의 피부에는 치명적인 햇볕. 여대생이나 20, 30대 젊은 여성이나 중년의 여성이나 양산을 쓴 평양의 여인들은 이제는 너무도 눈에 익숙하다. 방학 중에도 공부하러 나온 학생들을 보았다. 북한이 방사포를 쏘던 날이었다. 김일성 대학교 학생들은 고요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릉라인민유원지에서 만난 평양 시민들
8월 3일 토요일 오후,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릉라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대동강이 굽어 흐르는 가운데 위치한 섬, 릉라도. 우리는 릉라도에 있는 놀이공원, 릉라인민유원지에 가는 길이다.
북에서 맞이 한 토요일 오후다. 북녘 동포의 다양한 삶의 모습, 삶의 표정을 보고 싶다.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는 곳, 놀이 공원. 그곳에 가면 평양시민들이 어떻게 여가를 즐기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평양의 놀이 공원,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호기심을 가득 담고 릉라유원지로 달린다. 다리를 건너자, 얼마 안 가서 릉라유원지에 도착했다
유원지 입구에는 나들이 나온 평양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등학생들이 무리 지어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친구들끼리 놀러 나온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나들이 나온 손녀도 보인다. 손녀를 놓칠라, 할아버지가 손을 꼭 잡고 있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행락객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 입장 순서를 기다린다. 질서 정연한 모습이다.
오늘 하루 여러 가지 일정을 소화한 터라, 더운 날씨에 조금은 지치고 갈증도 난다. 더위와 갈증을 풀어줄 음료수를 사러 입구에 있는 매대(매점)를 찾았다. 다양한 청량음료가 보인다. 나는 그중 건강에 좋은 딸기 요구르트를 골랐다.
천연 딸기 과즙을 첨가한 ‘무방부제 딸기 요구르트’. 시원하고 새콤달콤하다. 출출한 배도 채워준다. 라벨을 읽었다. 두뇌발달 성장발달에 좋다고 되어 있다. 북녘 동포들도 건강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음료나 식료품 라벨에 언제나 그 음식이 건강에 어떻게 좋은지가 표기되어 있다.
릉라유원지에 입장했다. 각가지 놀이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회전반(문어다리), 회전대, 회전그네, 회전 비행기, 회전목마 등의 놀이기구가 보인다. 대규모의 놀이공원이 아니라 아담한 놀이공원이다. 남측이나 미국의 소도시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놀이공원이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온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이 보인다. 놀이기구 이곳저곳 사람들로 붐빈다.
놀이기구 공포증이 있는 나는 놀이기구 타는 것보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놀이공원을 찾은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놀이동산은 보스턴이나 서울이나 평양이나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평양시민들. 그들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이 보인다.
평양 동포와 함께 한 발 운동 오락
실내 오락장에 왔다. 여러 가지 오락기기가 놓여 있다. 중고교 시절 유원지에 놀러 가서 즐기던 그런 오락기기다. 발 운동 오락, 사냥 경기, 시가전… 순우리말로 이름 붙여진 오락기기의 이름들. 북녘 동포의 우리말 사랑이 돋보인다.
오락에 열중하는 사람들과 오락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지켜보는 사람들로 오락장 안은 붐빈다. 그중 두 어린이가 하고 있는 발 운동 오락이 나의 시선을 잡는다. 발 운동 오락이라? 아, 20-30년 전 한창 유행하던 바로 Dance Dance Revolution ( DDR)이 아닌가. 음악에 맞춰 스크린에 나오는 대로 스텝을 맞춰 춤을 추는 오락이다.
나도 한번 해 볼까? 이 발 운동 오락은 두 명이 함께 해야 한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오락장을 찾은 평양 여성 한 분에게 발 운동 오락을 함께 하자고 청했다. 그는 흔쾌히 수락한다. 이제 평양 동포와 보스턴 동포가 함께 하는 환상의 발 운동 오락이 시작된다.
” 나무를 심자. 나무를 심자...” 경쾌한 곡에 맞춰 발을 바쁘게 움직인다. 오랫동안 해보지 않은 터라 몸이 생각처럼 따라 주지 않는다. 지나가던 평양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온 동포에게 따뜻한 시선을 준다. 종종 박자를 못 맞추고 실수가 이어졌지만, 내내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웃음꽃이 피었다. 평양에서 북녘 동포와 함께 음악에 맞춰 발 운동 오락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 내 청을 들어준 평양 시민이 정말 고맙다. 덕분에 평양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오락장에서 나와 다음 갈 곳을 찾고 있다. 웃음 집이라고 쓴 간판이 보인다. '웃음 집’이라? 무엇일까? 웃음 집에 들어가자 왜 웃음 집인지 알았다. 오목거울, 볼록거울, 여러 가지 재미있는 거울들이 나의 모습을 비춘다. 나를 길쭉하게도 짧고 몽땅하게도 만든다. 재미있게 일그러진 모양이 나를 웃게 만든다. 그래서 웃음집이다. 웃음집도 중고교 시절 인천 송도유원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옛 추억을 불러온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시절, 우리의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한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릉라유원지로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꽤 많았다. 전기차(범퍼카)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10여 미터는 되어 보인다. 평양시민과 전기차를 즐긴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운전을 한다. 쿵쿵 부딪힐 때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른다. 즐거운 비명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전기차에서 내리던 두 여성의 밝은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배가 출출하고 갈증도 나, 음식을 파는 매대로 갔다. 닭꼬치와 김밥을 파는 모습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옥외 식당 같은 곳이다. 둘러보니, 닭꼬치와 김밥 이외에도 핫도그, 찐빵, 만두 등의 간식을 판다.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다. 막걸리라고 쓰인 디스펜서에 눈길이 갔다. 막걸리와 놀이공원.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것 같다. 유원지 내 간식을 파는 매대에서 막걸리와 같은 술을 판다는 것이 생소해 보였다.
한쪽에서는 닭꼬치를 숯불에 굽고 있다. 지글지글 닭꼬치 익는 소리가 들린다. 빨간 불꽃이 올라온다. 닭꼬치를 사러 온 손님과 봉사원 사이에 흥정을 하는 듯하다. 봉사원이 1500원을 부르는데 손님이 1000원에 달라고 한다. 손님이 가격을 깎는다.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광경이다. 결국, 그 손님은 가격 흥정에 실패했다. 에누리가 안 통한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온 평양 시민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른 저녁시간 간식을 즐긴다. 우리는 닭꼬치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닭꼬치는 양념이 적당히 베어 맛이 있다. 숯불구이 특유의 향긋한 냄새도 그만이다.
유리컵에 담긴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켰다. 시원한 막걸리가 입안과 목을 적신다. 달짝지근하고 고소하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막걸리다 아니다. 무알코올이다. 남쪽에서와는 달리 북쪽에서 막걸리는 쌀음료다. 술이 아니다. 어린아이들도 마실 수 있는 음료다. 남쪽에서 마시는 쌀음료와 비슷한 맛이다. 여름철 더위와 갈증을 날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료일 듯하다.
유원지에서 여가를 즐기는 평양 시민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닭꼬치를 먹고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떠든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여기에서도 발견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휴전선 너머의 북녘 동포들의 삶. 우리의 동질성은 너무나 친숙한 삶의 부분에서 시작된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지지하는 로동신문 논평
2019년 8월 3일 일요일 오전.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평양 천리마거리를 달린다. 전 세계 해외 동포들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온다. 2019년 8월 4일 오전 9시 40분 평양에서 카카오톡이 터진다. 조금 전, 김일성 광장의 모습을 카카오톡을 통해 유럽, 미주, 아프리카, 한국 등지에 전송했다. 8월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그들의 반응도 뜨겁다. 프랑스에 사는 동포가 다음 행선지가 어디인지 묻는다.
방북 기간 동안 안내원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나에게 보여 주며, 나라 안팎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김책공대 출신인 안내원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밝은 듯했다. 그는 손목에 나에게도 생소한 블루투스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었다. 자신의 스마트폰과 연동해 만보계, 혈압계, 체온계 등으로 건강관리를 위해 사용한다.
안내원은 수시로 휴대전화를 통해 <로동신문>을 읽는다. 작년 8월 , 한일 무역분쟁이 뜨거웠다. 일본의 무역보복 정책에 대응하여 남측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 상품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였다. 카톡 라이브 방의 해외동포들은 북측에서는 일본의 무역보복 정책에 대해 뭐라 말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해외동포들의 질문을 안내원에게 전하였다.
안내원은 <로동신문>의 기사를 내게 보여 주었다. 기사는 ‘남측의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도 일본 상품 불매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알리고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일본의 무역보복 정책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보도하였다. 그리고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은 <로동신문> 기사의 일부이다.
“남조선의 각계층 단체들은 반일련대투쟁기구인 아베규탄시민행동을 결성하였다.... 남조선의 지방자치단체들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과거 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고사하고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라고 한 북측 특유의 비유가 정곡을 찌른다. 대일 문제에 있어 우리는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다. 북측은 남측의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에 맞선 일본 상품 불매운동, 성명서 발표 등을 상세하게 알리며 적극적인 지지 표명을 하였다. 앞으로 남과 북이 대일 문제에 있어 함께 손잡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함께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야 할 것이며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