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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May 03. 2021

북녀 북남 그리고 평양의 연인들

북한 사람들은 연애를 할까? 남녀의 사랑도 통제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나도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는 우리와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북한을 여행하며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평양에 발을 딛었던 첫날, 나의 편견은 산산이 부서졌다.


여성과 남성으로서의 북한 동포들의 모습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북녀 동포들의 일상을 보고 느끼고 그들과 대화하며, 때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측면이 두드러져 다가왔다. 2019년 여름, 평양을 여행하며 본 북한의 여성, 북한의 남성, 북한의 연인과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필자의 렌즈를 통해 본 북녘의 남자와 여자, 그들의 연애에 대한 단편적 이야기다. 북한의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숲은 아닐지라도 숲을 이루는 나무 몇 그루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 숯불구이에서 만난 평양 여성과 평양 남성


추억은 다시 나를 평양으로 초대한다. 2019년 7월 31일 수요일. 평양에 도착한 첫날이다. 해방산 호텔에 짐을 풀고 안내원과 일정 조율도 완료했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시장기가 확 밀려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저녁을 먹으러 간다. 북에 와서 첫 끼니다. 진짜 기대된다.


안내원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한 가지 더 요구했다. 평양시민들이 많이 가는 숯불구이 식당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씩씩한 안내원 답한다. “물론입네다! 리 선생님!”


평양 순안 공항에서 나를 맞은 안내원은 37세의 남성이다. 김책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씩씩함이 넘친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 걸음걸이, 말투에서  그만이 지닌 개성을 감지했다. 이제 그와 만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안 되지만, 나의 첫인상은 그대로 이어진다. 박력이 넘치는 북한 남성이다. 그는 7박 8일의 일정 동안 나의 여정을 안내할 여행도우미다.


안내원이 차 문을 열어준다. 부담스러운 배려와 친절이다. 안내원은 기쁨이라고 한다. 나는 평화자동차에 올랐다. 평화자동차. 내가 배정받은 북한 차의 브랜드다. 외부에서 부품을 들여와 북에서 조립한 자동차다. 우리의 평화의 염원을 담은 평화자동차는 평양에서의 첫 만찬을 향해 달린다. 보통문거리 숯불구이 식당으로 간다.  평양 숯불구이. 맛은 어떨까? 식당의  분위기는 어떨까?  평양에서의 첫 만찬을 앞두고 살짝 흥분마저 된다. 종일 나를 휘몰았던 긴장감은 이미 다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평양 맛집을 찾아가는 미식가의 태세다.  


“현지 맛집 탐방,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아직 일몰 전이어서 평양의 저녁은 밝다. 평양시민들의 퇴근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여기저기 빠른 발걸음에서 귀가를 재촉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를 탄 인민복을 입은 남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보안원도 보인다. 퇴근길은 평양이나 서울이나 보스턴이나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직장인들의 귀갓길은 더 바빠 보인다.


15분 정도 차로 달리자, 보통문이 보였다.  남대문보다는 작다. 아담한 보통문이 고즈넉이 평양 시내를 지키고 있다. 보통문(普通門)은 북한 지정 국보 제2호로,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위치한다.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성문으로 보통강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이라는 간판의 네온싸인이 반짝인다. 고기 상점 안 2층 숯불갈비식당으로 간다. “까스맥주, 숯불갈비”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까스맥주라? 무엇일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왔다. 식당 입구에서 여성 봉사원이 우리를 맞이한다.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식당에 들어서자, 숯불로 고기 굽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10여 개의 테이블이 거의 차 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먹고 마시는 모습이 보인다. 40대와 50대의 남성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가족으로 보이는 60대와 20-30대의 여성과 남성이 앉아 있는 테이블, 30-40대 여성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가족 또는 친구들끼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은 즐긴다. 우리는 여성 봉사원이 안내해 주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봉사원이 차를 따라 주었다. 향긋한 내음이 난다.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 닿는다. 처음 맛보는 차다. 무슨 차냐고 물었다. 쑥차라고 한다. ‘아, 이 은은한 내음이 쑥 향이었구나.’   따끈한 쑥차가 더욱 식욕을 자극한다.


봉사원이 차림표를 가져다준다. 고기의 종류가 다양하다. 소고기, 돼지고기, 낙지... 북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칭한다.  오리고기, 타조고기, 참새고기… “호주에 사는 타조가 어떻게 북한에 있지? 수입인가? 제재로 수입이 안 될 텐데..” 여러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타조고기가 있네요. 오, 특이해요. 호주에서 사는 타조가 평양에 있네요. 게다가, 참새고기까지. 참 고기 종류가 다양해요.” 궁금함을 못 참고 안내원에게 물었다.


“호주가 어디 입네까?” 안내원이 호주를 못 알아듣는 듯했다.

“네, 오스트레일리아요. 시드니가 수도인 오세아니아에 있는 나라요.”


안내원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타조고기는 북한에서 사육하여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부터 평양 근교에 타조농장을 만들어 타조를 북의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 사육하고 있으며 관련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타조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조를 길러 그 고기를 먹다니… 이것 또한 새로운 발견이다. 참새 역시도 야생의 참새를 적응시켜 사육해 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 또한 사고의 전환이다. 환경에 맞게 적응시키고 사육해 다양한 고기를 생산하고 이를 즐긴다. 흥미롭다.


타조고기나 참새고기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나. 식성이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고기에 대한 시도가 두려웠다. 도전적이지 못한 나 때문에, 결국 우리는 소고기, 돼지고기, 낙지 불고기와 반찬으로 김치를 주문했다. 빼놓을 수 없는 까스맥주와 더불어. 북에서는 생맥주를 까스맥주라고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배움의 연속이다. 그런데, 생맥주와 까스맥주? 어떤 이름이 더 나을까? 그냥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남쪽의 식당 문화와 다른 점을 하나 발견했다.  보통 남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김치와 반찬은 기본 상차림으로 무료로 준다. 여기서는 김치와 반찬을 따로 주문하고 돈을 낸다.  식당에서 무료로 주는 반찬은 남한에서 발달한 특유한 문화인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식당 문화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졌다. 남과 북이 헤어져 살아온 지 70년, 여전히 많은 삶의 부분들이 동질적이지만 식당 반찬 문화처럼 달리 발달해 온 생활의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어 보인다. 문외한인 교사의 소견이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두 남성과  나는 술잔을 부딪쳤다.  “남과 북의 하나 됨을 위하여”  모두 까스맥주로 목을 축였다.  평양 까스맥주. 차갑고 쌉싸름하고 톡 쏘는 맥주가  7월 마지막 날 초저녁 평양의 더위를 씻어준다. 와우, 확실히 맛있다. 보스턴에서 마셨던 수제 생맥주와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다. 평양 생맥주 매력적이다.


두 남성이 열심히 구운 고기를 먹을 차례다. 소고기부터 시작했다. 부드럽게 베인 양념 맛을 비집고 육즙이 터져 나온다. 바로 이 맛이다.  감칠맛이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다.  역시, 내 기대를 만족시킨다. 적당히 씹히는 이  식감. 너무 질기지도 너무 연하기도 않은 느낌이 딱 좋다.  소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고 담백하다. 이 건강한 맛! 풀 먹인 소고기가 분명하다.


“이거 풀 먹인 소고기 맞지요?”라고 내가 물었다.

안내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 소가 풀을 먹지 뭘 먹습네까!” 대답한다.

“미국에서는 소에게 옥수수를 주로 먹여요. 생산단가가 옥수수가 풀보다 몇 배나 싸기 때문이죠. 풀 먹인 소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하고 콜레스테롤도 적어 영양 면에서 월등하죠. 맛도 더 좋고요. 풀 먹인 소가 훨씬 비싸요.” 내가 설명했다.


식당 봉사원에 의하면 송암 소고기라고 평양 근교 송암지역 농장에서 기른 소라고 한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오징어 숯불구이 모두 입안에서 착착 감기며 살살 녹는다. 양념갈비와 불고기인데, 양념의 간이 강하지 않고 파나 마늘의 향도 은은하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강한 향신료나 자극적인 조미료의 사용을 절제하는 것 같다. 양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김치도 고춧가루가 아주 적게 들어가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았다. 짜지도 않고 적당히 익어 발효된 김치 내음이 향긋하다. 마늘, 생강, 파와 같은 향신채도 아주 적게  쓰는 것 같았다.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다. 위가 약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김치는 거의 내가 다 먹었다.


세 가지 고기와 김치, 그리고 까스맥주에 이어 마지막으로 탄수화물류의 요리를 주문할 차례다. 나는 강냉이 국수를, 안내원과 기사는 섭죽을 주문했다. 강냉이 국수는 온면이었다.  국수가 큰 대접에 나오고 고명과 양념장이 따로 곁들여진다. 손님이 먹기 직전에 고명을 국수 위에 올리고 양념장을 넣는다. 고기와 해물 육수가 어우러진 국물 맛이 깔끔하다. 옥수수 내음이 구수하다. 약간은 까끌까끌한 식감인데도 술술 넘어간다. 고기로 조금은 느끼한 입맛을 단번에 시원하게 씻어준다.


두 남성은 열심히 섭죽을 먹고 있다. 죽에서 향긋한 바닷냄새가 났다. 섭이 무엇인지 물었다. 안내원과 기사가 설명을 한다. “아, 홍합이군요.” “홍합”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생소한 단어였다. 섭은 알지만, 홍합은 모른다. 70년간 헤어져 살아온 결과인가.  남과 북의 언어의 차이에 관한 연구도 의미 있고 흥미로울 것 같다. 일분일초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그녀들을 위한 밤


우리 테이블 옆에 40대 중년 여성들이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숯불구이 고기를 먹는다. 모두 국수 종류 한 가지씩 주문하는 듯하다. 나의 시선은 계속 그녀들의 테이블로 향하고 있었다.  그 옆 테이블도 조금 더 젊어 보이는 40대 초반 여성들의 차지다. 그들도 생맥주를 마신다.


생맥주를 치켜든다. 가득 채워진 생맥주가 경쾌하게 부딪힌다. 시원한 평양 까스맥주는 마치 그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활짝 웃는 얼굴들. 들뜬 듯한 여성 특유의 고음의 목소리가 오간다. 여성들의 수다가 즐겁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흥겨움이 무르익는다.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회식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직장동료끼리 온 건지 아니면 그냥 친구들인지 이웃들인지, 여성들이 회합하면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일반적인지,  혹시, 술을 마시면서 흡연을 하는 여성들도 볼 수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두 테이블의 여성들은 언뜻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직업동맹 같은 단위에서 동료들끼리 온 것 같다고 한다.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식당에서 회합하면서 맥주도 마시고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늘 얼굴 보면서 지내는 관계이니 회합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서로 얘기도 하고 고민이 있으면 들어주기도 한다. 안내원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인상적이었다.


“어데요. 식당과 같은 장소에서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말입네다. 나는 못 봤습네다. ”


실은 그들 자리에 합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북에서의 첫날이었다.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합석을 요청하는 것이  적절한지 어떤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나의 부주의나 무례한 행동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무엇보다 앞섰다. 이제 평양에 도착한 지 몇 시간 안 되었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밖에 없었다.


그녀들을 위한 밤. 활기가 넘친다. 재미난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하다.  계속 웃음소리 터진다. 맛있는 음식, 까스맥주 그리고 정다운 사람들…즐거운 회식이다.  그녀들의 밤은 무르익어 간다. 그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합을 파하는가 보다. 모두 검은색 비닐봉지에 뭔가를 들고나간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그녀들이 우리 테이블 앞을 지날 때,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그 비닐봉지에 무엇을 들고 가세요?” “아 구럭지 말입네까? 구럭지에 집 식구들 주려고 국수를 싸갑네다.” 북에서는 비닐봉지를 구럭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여성 동무들끼리 회합을 하는 경우, 보통 남편들이 알아서 저녁을 해결한다고 한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맛있는 것을 싸간다. 맛난 음식을 먹고, 가족들이 눈에 밟혀 음식을 챙겨가는 그 마음은 북이나 남이나 다르지 않다. 그렇게 그녀들은 냉면과 국수가 든 구럭지를 들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그녀들과 합석하지 못한 게 못 내 아쉽다. 좀 더 용기를 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내년에 가면 꼭 북녀들과 합석해 까스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리라. 더 나아가 언젠가는 남과 북, 해외에 사는 여성 동포들이 함께 하는 밤을 갖으리라. 평양 까스맥주와 함께!



보통문거리 식당에서 마주한 평양시민들


북에서의 첫날, 식당에서 마주한 평양시민들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조차 경이로움으로 바라는 보는 나는 왜일까?  70년 세월을 갈라져 살며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서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혹은 언론을 통해 부지불식 간에 받은 반공반북 교육의 영향인가? 스스로 의문을 던진다.


첫날 평양에 내리자마자 모든 것이 다 신기한 경험이다. 신비의 세계에 왔다. 현대적인 평양 시가의 모습. 그 속에서 일상을 사는 평양시민들. 보통문거리 고기 상점 식당에서 또 다른 생동하는 북의 삶을 보고 있다. 가족끼리, 직장동료끼리, 친구끼리 온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겁게 얘기한다. 술잔을 부딪치고 건배를 한다. 여기저기 웃음소리도 들린다. 왁자지껄 여기저기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즐거움과 흥이 식당을 가득 메운다. 그 흥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톡 쏘는 평양 까스맥주를 나누며, 나와 안내원, 기사의 대화도 무르익는다. 다시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중년의 남성들만 앉아있는 테이블도 보인다. 소주병이 여러 개 보였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테이블도 보인다. 술잔을 기울이는 테이블이 여럿이다.  안내원에게 물었다.


“식당에서 술을 많이 마시네요? 2차로 술집에  안 가나요?”  

“2차라니요? 2차라고 하니 잘 못 알아듣는 듯했다.

그래서 부연 설명을 했다. “남쪽에서는 회합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을 회식이라고 하는데, 회식하고 나서 뒷풀이로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를 2차라고 해요.”


“우리는 보통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십네다.”   식사를 하면서 또는 마치고 식당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자기가 알기로는 평양에는 술집이 없다고 했다. 평양에는 술집이 없다? 이것도 흥미롭다.


봉사원은 여성의 일이라구요?


여성봉사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숯불 화덕을 옮기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식당이나 마트 등에서 고객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봉사원이라고 칭한다. 남측에서는 보통 종업원이라고 한다. 여성봉사원이  무거운 숯불 화덕을 힘겹게 옮긴다. 다른 음식들도 나른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 에어컨은 작동되고 있어지만, 여름 날씨에 여러 테이블에서 뿜어내는 숯불의 열기로 식당 안은 더웠다.  활활 타오르는 숯불을 이리저리 여러 테이블로 옮기는 그녀. 그녀의 콧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다. 음식을 가져다 줄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화덕을 옮기는 여성은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딸 나이뻘의 젊은 여성이 식당 안에서 무거운 숯불 화덕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엄마의 마음으로 안쓰럽게 바라본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흰 얼굴의 그녀.  뜨겁고 무거운 화덕을 옮기는 일은 버거워 보였다. 남성 봉사원이 혹시 있을까 싶어 식당을 둘러보았다.  남성 봉사원은 보이지 않았다. 식당 안에서 일하는 봉사원은 모두 여성이었다.


나를 위해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는 안내원에게 말을 건넸다.


“안내원 선생, 고기 굽느라고 수고가 많으세요.  덕분에 저는 잘 먹고 있지만요. 이제 제가 구을 테니, 이제 그만 굽고 좀 드세요.”


안내원이 대답한다.


“일 없습네다. 리 선생님 많이 드시라요. 어데, 음식이 입에 맞으십네까?”


“네, 아주 맛있어요. 제 입맛에 착착 달라붙네요. 그런데, 이 식당에는 남자 봉사원이 없나 보네요. 저 뜨겁고 무거운 화덕을 여성 봉사원이 힘들게 옮기는데요. “


과묵한 운전기사는 듣기만 한다. 안내원이 대답한다.


“식당 봉사원은 대부분 여성이라 말입네다.”


“저런 힘든 일은 남성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남성 봉사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내원 선생 그리고 기사 선생, 말씀을 듣고 싶네요” 내가 두 남성에게 말했다.  


안내원이 답한다.  “어떻게 남자가 식당에서 봉사를 합네까? 이건 여성의 일입네다.”  


운전기사는 묵묵부답이다.


안내원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바로 반박했다.


“남자라고 식당에서 봉사하면 안 되나요?. 남성이건 여성이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뜨겁고 무거운 화덕을 다루는 일은 남성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저 여성안내원 무척 힘들어 보이네요 “


안내원과 기사 모두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안내원이나 나나 논쟁을 피하기 위해 이에 대해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하지 않았다.


유교적인 문화의 뿌리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건가?  안내원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유교적인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안내원의 대답에서 북한 마초 남성의 여성에 대한 사고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안내원 한 사람의 생각이 북한 전체 남성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래도, 북녘 남성의 일부는 이런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이후, 운전기사와 나 이렇게 셋은 종종 가정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에게 집안일을 부인과 함께 하느냐고 물었다. 안내원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집안일 대부분은 어머니가 하기에 아내는 간단한 설거지 정도만 한다고 했다. 안내원 자신은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함께 사는 부모님은 자신이 부엌일이나 집안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는 아이가 생후 6개월이다. 아기를 돌봐야 하는 아내가 힘들어 보여 청소나 이불 개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집안일은 한다고 했다. 아기가 새벽에 자주 깨 잠이 부족한 아내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집안일을 하는지 세세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는 아내의 고생을 덜려고 집안일을 많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기사는 신세대 북한 남성을 대표하는 듯했다. 북한에도 다양한 남성상이 존재하리라. 북의 남성에 대한 발견이다.


8일의 여정 동안 마초의 이미지를 풍기는 안내원에게서 뜻밖의 자상함을 발견했다. 방북 기간 중 여러 곳의 마트와 백화점을 방문해 쇼핑도 하고 구경도 했다. 대동백화점에 갔을 때, 그는 소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줄 물통으로 꼼꼼하게 고르고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있는 물통인지, 재질은 어떤지, 빨대가 달린 것이 좋은지 등을 세세하게 살폈다. 심사숙고한 끝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통을 선택했다. 아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이를 이렇게 챙기는 모습에서 가정에서의 그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마초로 보이는 그도 가정에서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북녘의 여성


첫날 대중식당에서 마주한 북의 여성의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째, 평양 여성들의 매우 활달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서 까스맥주를 즐기며 국수를 먹던 그녀들은 목소리가 우렁차고 컸다. 전체 식당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이 일상적인지 이 테이블에 눈길을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즐겁고 흥겨운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종종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평양 여성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씩씩하고 밝다는 것이다.


평양의 여성들도 세계 어느 나라의 여성들처럼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여가를 즐겼다. 북한에 대한 나의 경직된 사고에서 기인한 것인지, 맥주잔을 부딪히며 저녁시간을 즐기는 장면에 실은 놀랐다. 내가 상상했던 북녘 여성의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교와 여가를 누리는 그녀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이다.


평양의 여성들은 자기 목소리를 확실하게 냈다. 백화점이나 마트, 관광지의 봉사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남쪽에서 볼 수 있는 감정노동은 그들에게서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친절했다. 과잉 친절을 베푸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자신의 일에 관한 한 고유한 권한이 있는 듯했다. 마트나 관광지의 봉사원은 지위나 직급이 높은 나의 안내원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때로는 안내원과 봉사원이 언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 봉사원들의 목소리는 당당했고 안내원에게 한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평양 여성들의 카리스마를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나의 안내원은 북한 인구의 약 10% 정도만 가입할 수 있다는 당원이다. 김책공대 출신의 엘리트다. 그는 공무원이다. 그런 안내원은 봉사원들과의 언쟁에서 항상 물러서야 했다. 봉사원들은 언제나 그에게 단호했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 중 하나가 평양 여성들의 미적 감각이었다. 보통문 거리 식당에서 마주한 여성들은 대부분 파마머리를 하고 경쾌한 원피스 차림에 화장을 한 얼굴이었다. 거리에서 마주한 평양의 여성들은 양산을 받쳐 들고 샌들이나 하이힐을 신은 그야말로 멋쟁이들이었다. 양산으로 여름의 강렬한 햇볕을 피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에서 피부미용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가꾸려는 욕구는 세계 공통이다. 평양의 여성도 서울이나 뉴욕, 보스턴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하얀 피부를 유지하고 미모를 가꾸려는 평양 여성들의 모습은 서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멋쟁이 여성들과 흡사했다. 전통적으로 흰 피부를 선호하는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은 북이나 남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세련되고 화사한 여성을 평양의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북녘 남성에 대한 단상


북의 남성에 대한 첫 인상은 나의 안내원이 많이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마초 스타일이다. 박력과 씩씩함이 넘치는 남성의 모습이다. 남한의 유명 배우 중 마동석 씨를 연상케 하는 그런 분위기다. 처음 평양 순안공항에서 안내원을 만났을 때, 그의 마초다움을 감지했다. 내 첫 느낌은 별로 틀린 적이 없었다. 8일 동안 여행 일정을 함께 하며 북한 마초 남성의 전형을 경험했다.


솔직히 며칠간은 안내원과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안내원의 어투가 조금 불편했다. 그의 씩씩함은 말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미국과 남쪽의 부드러운 말투의 언어문화에 너무 익숙해져서인가. 아니면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의 어미가 불편해서인가. 그가 나에게 명령조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거 하시라요. 이거 하지 마시라요.”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싶기도 했다. 그에게 불편한 심기는 드러내지 못하고 며칠을 혼자 끙끙 앓았다.


8일을 보내고 나서, 나는 내가 그를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70년간 떨어져 살아온 우리가 아닌가. 각자의 사회와 문화에서 형성된 고유의 언어문화가 있다. 나는 그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말투가 투박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나를 위해, 나의 방북 목적인 내가 북녘사회와 북녘 동포를 다양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음을 알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서로 달라진 언어문화를 고려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내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태도에 달려있었던 문제였다.


나와 안내원, 운전기사는 어느새 친해져 서로의 연애담과 결혼담을 나누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대부분 중매나 소개로 이성을 만나고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양가 부모들이 혼처를 알아보고 서로 잘 아는 집안의 자녀들을 지인을 통해 소개받는다. 근래 들어 20대에서 자유연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지만, 30대인 두 남성은 모두 중매와 소개로 결혼했다고 했다.


마초 스타일 안내원의 결혼 성공담은 흥미로웠다. 그는 제대군인으로 김책공대에 합격했다. 코피가 나도록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원하는 곳에 직장도 잡았다. 집안의 중매로 여성을 소개받았다. 그녀도 같은 김책공대 출신으로 회계학을 전공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안내원은 깜짝 놀랐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아 기래, 얼굴에 시커멓게 뭔가를 잔뜩 칠한 여성이 나와 앉아 있다 말입네다. 내래 깜짝 놀랐습네다. 눈에다가 시커멓게 뭘 그린 데다 입술은 뻘겋데 뭐를 발라놓고…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었습네다. 그런데, 부모님이 좋은 처자라고 몇 번 만나보라고 해서, 여러 번 만나 보니… 마음이 곱지 않습네까. 그래서 결혼했습네다.”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호텔에 회계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다. 호텔 직원이다 보니, 외국인 손님들도 있고 해서 직업상 화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화려한 외양이 그녀의 취향이 아니라 업무에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우자로 맞아하기로 했다. 그는 그녀와 6개월의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이것이 안내원의 결혼담이다.


나와 일정을 함께 했던 운전기사는 31세의 남성이었다. 결혼한지 2년 정도 된 신혼의 단꿈에 젖어 살고 있는 그였다. 그는 마초적인 안내원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는 어투가 훨씬 부드러웠다. 호리호리하고 휜칠한 키에 남쪽의 꽃미남 스타일의 남성을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다. 그를 통해 보면, 북녘 남성들이 다 마초 스타일의 안내원 같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운전기사는 7년의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6개월 된 아들이 있는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아내와 아기의 사진을 수시로 보는 가정적인 남자다. 그의 어투는 언제나 권고형이다. 명령어의 어미가 아닌 “이건 이렇지 않겠습네까” 식의 자신의 의견을 부드럽게 표현한다. 그의 그런 어투 때문인지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남성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거리에서, 식당에서 본 북녘 남성들은 다양했다. 엄숙하게 심각한 표정을 한 중년의 남성들, 상냥하고 친절해 보이는 20대 남성들, 씩씩해 보이는 남성들, 섬세해 보이는 남성들.. 표정과 느낌이 정말 다 달랐다.

식당에서 맥주를 즐기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면, 중년의 남성들은 소주를 많이 즐기는 듯했다. 금연이 사회적 대세가 아닌 듯했다.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안내원과 운전기사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유연애가 아직은 일반적이지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평양에 도착한 첫날, 늦은 밤 달빛 아래 연애하는 청춘 남녀의 모습을 목격했다. 방북 기간 내내 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이나 부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정하고 그윽하게 연인이나 아내를 바라보는 남성의 눈빛과 표정에서 북녘 사회에도 로맨티시스트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편과 팔짱을 꼭 끼고 출근하는 아내들은 행복해 보였다. 결혼하면 콩깍지가 벗겨진다지만, 평양의 젊은 30대 부부들은 거리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그들의 금슬을 과시하는 듯했다. 20대 청년층의 자유로운 데이트 장면도 여러 번 목격했다. 청춘의 연애는 달콤하고 뜨겁다. 그들을 보며, 그들의 연애 감정이 그대로 나에게 전이되는 듯했다.


세대별 남성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거리에서 데이트하는 젊은 세대들을 보며, 섬세하고 친절하게 연인을 배려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북녘 젊은이들의 사랑은 거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겠다.


평양에서의 첫 밤, 심야의 데이트족


2019년 7월 31일. 평양에 도착한 첫날, 첫밤에 나는 심야의 데이트족을 보았다. 보통문 거리 고기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평화자동차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평양에서의 첫 밤을 만끽하고 싶었다. 안내원과 기사에게 걸으면서 평양의 밤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밤 산보 요청에 두 사람 다 흔쾌히 “좋습네다” 로 대답했다. 차에서 내려, 안내원과 함께 이미 어두워져 캄캄한 평양의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지만 거리 여기저기에 행인들이 보였다. 도심 공원 주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인민대학습당이 보였다. 인민학습당은 1982년에 평양 중구역에 세워진 국립도서관이다. 처음에는 이 자리에 정부청사를 세우려고 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도서관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40,000 평방 미터의 한국 전통의 합각지붕으로 된 12층 건물이다.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 양식을 살린 건물이 매우 특색 있다고 생각했다. 불이 환하게 들어온 외관은 밤에 아름다움을 더욱 뽐낸다. 건물 앞 조각상 분수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첫날 이런 운치 있는 야경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 못 했다. 솔직히, 평양에서 밤에 나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 못 했다. 특별한 순간이다. 생각지도 기대하지도 못 했던 일들이 첫날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예측과 예상을 뛰어넘는 경험은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분수대 앞을 지나간다. 분수대 앞 벤치에 젊은 남녀가 앉아 있다. 연인인듯한 분위기다.

“좋을 때입니다. 연인 같은데 데이트하나 보네요.” 데이트라는 말은 알아듣는 눈치다. “네, 그런가 봅니다. 청춘남녀가 연애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 아닙네까!.” “ 네. 그러고 말고요. 북에서는 연인들이 주로 어디서 연애를 하나요?” 호기심이 발동해서 물었다.


“연애하는데 장소가 중요합네까? 마음이 통하면 어디서나 연애한다 말입네다.” 안내원이 사뭇 심각하게 대답한다.


그의 심각한 표정에 한편 재미있기도 했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한 안내원의 말이 떠올라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죠. 6개월의 열애 끝에 결혼하신 안내원 동무시니 더 잘 아시겠죠. 하하.” 안내원이 쑥스러운 듯 대답도 못 하고 앞만 보고 걷는다. 남이나 북이나 연애담으로 사람을 놀리는 것은 재미가 솔솔 하다.


연인들은 조각상과 분수 그리고 조명과 잘 어우러졌다. 밤하늘에는 휘영청 달이 떠올라 이들을 비춘다. 까만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달빛과 별빛 아래 젊은이들의 사랑이 빛난다. 인민대학습당의 휘황찬란한 조명과 조각상 분수 앞에서 청춘남녀가 자아내는 로맨틱한 분위기는 내가 처음 맞은 평양의 여름밤을 압도하고 있다.


 평양 밤거리에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을 마주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다정한 연인은 손을 마주 잡고 분수를 바라보며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까만 밤하늘 아래, 휘황찬란한 조명이 이 연인들을 환하게 비춘다. 두 젊은이의 흰색 셔츠가 환한 불빛을 반사한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과 흰색 셔츠를 입은 여성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평양 교원대, 김일성대학, 김책공대를 둘러보면서, 이 복장이 대학생 교복임을 알았다.


남녀 대학생들의 여름밤 데이트.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 풋풋한 사랑이 싱그럽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가장 찬란하고 빛나던 시절의 뜨거운 사랑을 추억하게 해서인가. 자꾸 눈이 가는 나의 머리를 억지로 돌려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 연인을 뒤로하고 우리는 천천히 버드나무 늘어진 거리를 걸었다. 중간에 지하보도를 지났다. 지하보도 내부는 깨끗하고 잘 관리되는 듯 보였다. 벽이 흰색과 파란색 타일로 되어 있다. 지하보도를 걷는 사람이 우리 말고 두세명 더 있었다. 내부는 등이 적당히 밝아 무서운 느낌도 없었다. 밤에 다녀도 치안은 전혀 문제없어 보였다. 나는 안내원과 동행하니 두말할 나위도 없이 안전하다.


평양도 역시 세상 다른 곳처럼 사람 사는 곳이다. 밤늦게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보고 말이다. 그런데, 무슨 횡재라고 한 듯 나도 모르게 기분이 묘하게 좋아졌다. 평양에 도착해서 단 몇 시간 만에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경험을 했다. 북에 대한 나의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뭔가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 삶의 모습들을 상상했었다. 첫날 도착해서 지금까지 내가 본 평양은 나의 선입견과 상상을 다 깨뜨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내 다리를 꼬집어 볼 정도로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신기했다. 평양에서의 첫 밤은 경이로움과 흥분 그리고 새로움으로 나를 채우며 이렇게 깊어갔다.



다정한 연인들의 청춘거리


2019년 8월 4일.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청춘거리를 달린다. 청춘거리는 평양직할시 만경대 지구 안골에 위치한 일종의 체육촌이다.  평양의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1989년 제13차 세계학생청년 축전 개최를 위해 건설된 체육시설과 경기장이 밀집된 곳이다. 청춘거리에는 핸드볼관, 수영관, 탁구관, 농구관, 배드민턴관, 역도관, 배구관, 경경기관, 중경기관, 태권도전당, 사격관 등이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를 보고 싶다는 나의 요청으로 청춘거리에 오게 됐다.


주차를 하고 청춘거리를 걸었다. 일요일 오후, 거리는 한산하다.  왕복 4차선의 도로에 파란 버스가 달린다.  거리를 따라 가로수가 늘어져 있다.  늘어선 가로수 아래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자전거 전용 도로와 보도는 나란히 뻗어 있다. 끝이 안 보이는 자전거 전용 도로 저쪽에서 자전거 한대가 달려온다.  일요일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태권도전당> 앞을 지난다. 북쪽  최초의 태권도 전용 체육관이다. 2000석의 관람석을 갖추고 있는 비교적 소규모 시설로 국제경기를 여러 번 개최했다고 한다. 공중을 날 듯 힘껏 발차기를 하는 동상이 이곳이 태권도 경기장임을 알려준다. 태권도 동작이 살아 있다.


배드민턴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단번에 배드민턴관임을 알았다. 수영경기관 앞을 지난다. 수영풀을 연상케 하는 건물 외관과 파란색과 녹색이 잘 조화를 이룬다. 물을 가르며 수영을 하는 수영경기관 마크가 건물 맨 꼭대기 달려있다. 력기경기관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외관이 경기장의 특색을 잘 드러낸다. 예정에 없었던 청춘거리 방문이어서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거리를 걸으며 경기장의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다. 경기장의 특성을 살린 건축물과 주변 조형물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청춘거리는 예쁜 가로수길이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린다.  그 아래, 가로수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 준다.  횡단보도, 교통표지판, 쓰레기통 등이 보이는 평범한 거리의 모습이다.  평양 외곽에 위치해 사람이나 차량이 붐비지 않는다.


우리 앞에 양산을 쓴  젊은 남녀가 걷고 있다. 남자가 양산을 받쳐 들고 있다. 여자는 왼손에 손선풍기를 들고 걷는다.  단발머리에 흰색 셔츠와 검정 치마를 입고 있다. 복장이나 머리 모양으로 보아 대학생인 듯하다. 청춘거리의 청춘남녀는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린다. 양산을 여성 쪽으로 들고 있는 남성. 연인의 피부가 햇볕에 그을릴 새라.  팔을 여성 쪽으로 뻗어 양산을 고쳐 잡는다. 그의 다정다감함이 느껴진다. 일요일 정오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청춘거리에서는 가로수 사이로 젊은이의 사랑이 익어간다.


자전거 전용도로 저편에서 자전거가 달려온다. 남편과 아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앞에는 멋스러운 선글라스를 쓴 남편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다. 그 뒤에서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뒤에서 꼭 잡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그녀의 환한 미소를 느끼는 듯, 남자의 표정도 밝다. 청춘거리 자전거 전용길 다정한 부부의 모습이다.  부부의 사랑이 평양 청춘거리에서 빛난다.


각종 체육시설과 경기장이 모여 있는 청춘거리. 청춘 거리답게 평양시민들의 사랑도 피어난다. 실제,  다정한 연인들, 금슬 좋은 부부들을 평야의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부부들은 아침 출근길에도, 주말 외출에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금슬을 과시한다. 젊은 연인들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 어린 눈빛을 솔직하게 교환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북남 북녀, 북녘 동포들의 모습이다. 평양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사는 곳이다.


사랑이 피어나는 평양 지하철


2019년 8월 6일. 나는 평양 지하철 부흥역 입구에서 서 있다. 승차권을 구하러 간 안내원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나의 소망대로 평양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북한의 대중교통은 어떨까 궁금했다. 평양의 대중교통을 타 보는 것은 북한동포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 같았다. 부흥역에서 개선역까지 5개 구간의 평양 지하철을 체험하게 된다. 평양 지하철은 1973년에 서울보다 1년 먼저 개통되었다. 50년의 역사를 지닌 평양 지하철은 어떤 모습일지? 그 안에서 평양시민의 어떤 삶을 볼 수 있을지? 궁금증을 가슴에 안고 평양 지하철 탐방을 시작한다.


회색 콘크리트의 육중한 느낌의 건물이 보인다. “부흥역’이라는 간판이 건물 맨 위에 걸려있다. 건물 왼쪽에 걸려있는 둥근 시계는 2시 50분을 가리킨다. 아직 본격적인 퇴근 시간은 아닌 듯하다.


양산을 받쳐 든 여인들이 삼삼오오 부흥역으로 들어갔다. 나와 안내원도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자동 개찰구에서 소년 단복을 입이 여학생 몇 명이 나왔다. 평양시민들에게는 무료로 배급된다는 승차권. 나는 미화 2달러를 내고 구입했다. 한 승객이 승차권을 여성 역무원에게 건넨다.


개찰구를 통과하자 내려가고 올라오는 양방향의 에스컬레이터가 펼쳐진다. 에스컬레이터는 끝없이 내려간다. 100m는 족히 내려가는 듯하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지하도를 통과했다. 퇴근하는 남성과 여성들, 하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가기 직전, 전광판으로 된 안내문이 나의 시선을 잡는다.


“신발에 묻은 먼지와 흙은 털고... 들어가야 한다”, “ 지하철도에서는 지하철도카드와 지하철도 차표만 취급한다'는 등의 안내문이다. 전광판 안내문이 걸린 벽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벽의 절반 정도가 대리석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질 좋은 대리석임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대리석 벽으로 된 지하철을 본 기억이 없다.


계단을 따라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밟고 내려간 계단도 은은한 회색과 아이보리빛이 섞인 대리석이었다. 이번에는 휘황찬란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정면을 꽉 채운 대형벽화와 마주했다. 화려한 대형 샹들리에가 높은 천정에서 빛났다. 울긋불긋한 조명을 비추는 샹들리에는 지하철 플랫폼을 밝히고 있었다. 찬란한 샹들리에 불빛에 나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마치, 예술품인 듯 그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지하철 플랫폼 천정을 장식하고 있었다.


지하철 플랫폼은 마치 미술관을 방불케 했다. 대리석 조각과 기둥은 그리스 신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시선을 압도하는 대형 벽화에 그려진 사람들은 마치 막 걸어서 나올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사한 색감의 유화 벽화였다.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심미적으로 매우 신경을 쓴 지하철이었다.

종이신문을 볼 수 있도록 설치한 신문대가 보였다. 그 가까이에 두 명이 남성이 신문을 골똘히 읽고 있다. 플랫폼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팩을 멘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 퇴근하는 청장년 층의 남성들, 그리고 시원한 원피스 차림의 젊은 여성들. 밀짚모자에 안경을 쓴 60대 남성과 아내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이야기를 나눈다.


전동차가 불을 환하게 밝히며 들어왔다. 기차에 올랐다. 아주 밝았던 플랫폼과는 달리 지하철 안은 어두컴컴했다. 아직 러시아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어서인지, 기차 안은 많이 붐비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의 바로 옆자리에 예술품과 같은 지하철에서 피어나는 청춘의 사랑을 보았다.


내 옆자리에는 20대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성은 분홍색 원피스에 멋스러운 샌들을 신고 있다. 두 손에는 수가 놓인 연한 빛의 양산을 들고 있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성의 가슴에는 당원임을 나타내는 배지가 달려 있었다. 이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 눈은 두 남녀를 포착했다. 이 두 젊은이가 궁금해 눈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쳐다보는 것은 충분히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내원에게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통해 이 청춘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 남녀는 서로를 그윽이 바라보았다. 단번에 사랑하는 사이임을 감지할 수 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청춘의 사랑, 말로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연인의 사랑은 이렇게 평양 지하철에서 피어오른다.  북녘 땅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정을 나누며 부대끼며 사는 곳이다. 평양 지하철 안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북녘 동포들의 삶을 말해준다.



심야데이트의 배경, 평양 인민대학습당



평양 청춘거리 다정한 부부와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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