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촛불, 보스턴의 촛불
2018년 6월 11일 저녁. 보스턴 도심에서 촛불이 타올랐다. 적대와 증오의 칠흑 같은 밤을 거두고 화해와 평화의 새 날을 밝힐 촛불이었다. 그날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과 미합중국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던 날이다. 두 국가 지도자들의 최초의 평화 대화다. 한반도에 드리울 영원한 평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은 부풀었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촛불 한 자루와 Peace Treaty Now! 손피켓을 들고 보스턴 커먼 Boston Common에 섰다. 평화에 대한 간절함도 함께 두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우리는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광화문에 넘실거렸던 촛불의 물결을 기억한다. 온 세계가 존경과 경이로움으로 지켜봤던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은 시민들이 밝힌 위대한 촛불로 세계사에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우리가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평화로운 민주주의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촛불이 지구 반대편의 보스턴의 거리에서도 빛을 발했다. 서울 광화문의 촛불의 함성은, 보스턴의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도 전해졌다. 서울의 촛불은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재미 한국인과 미국인이 연대해 촛불을 들고 보스턴의 광장에 서게 했다. 한반도에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밝히는 촛불이었다. 이 촛불이 보스턴 커먼을 밝혔다.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 바로 보스턴에서.
촛불은 서울에서 보스턴까지 서로 다른 공간을 잇고 서로 다른 역사적 순간을 이었다. 그리고 같은 희망을 밝히는 촛불로 피어났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향한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가 보스턴 도심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날의 촛불은 보스턴 시민과 미국의 대중매체에 8천만 민족의 하나 됨과 평화의 메시지를 을 전했다.
그날 보스턴 커먼에서 가슴 뛰는 경이로운 체험을 했다. 정말 많은 일들이 번갯불 치듯이 일어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그 엄청난 일들을 감당해 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날 보스턴 커먼에서 빛나던 촛불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곳 보스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의 보스턴 촛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평화의 미션을 향해 가는 지하철
2018년 6월 11일 오후. 지하철을 탔다. 보스턴 커먼에 가는 길이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학교를 나섰다. 연착과 고장이 잦은 보스턴 지하철이기에 예정 시간보다 여유 있게 출발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은 매우 중요한 날이다. 절대 늦어서는 안 된다. 교통체증이 염려되었다. 차를 학교에서 가까운 역에 주차시키고 지하철을 타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이제 곧 광장에 선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파크 스트리트 역이다.’ 내려야 하는 정거장을 놓칠세라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의 지하철은 매력적인 도시의 이름과는 달리 매우 낡고 시끄럽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은 1897년 미국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된 파크 스트리트 역이다.
보스턴 도심으로 달려가는 지하철. 오래된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도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길게 숨을 들여 마셨다. 내뱉는 숨에도 떨림이 느껴진다. 파크 스트리트 역에 다가올수록 나의 가슴은 점점 더 크게 요동침을 느꼈다. 이제 두 세 정거장 남았다. 다시 한번 길게 숨을 골랐다.
보스턴 커먼을 향해 가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 할 연설문을 보고 또 보았다. 나는 오늘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에서 코리언 아메리칸을 대표해 연설을 할 예정이다. 콜 해리슨 Cole Harrison의 말에 의하면, 오늘 우리의 집회가 주요 방송사의 조명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주요 방송사에 이미 다 연락을 했고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미국 대중과 방송기자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도 대중 앞에서 연설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나다. 게다가 방송국에서 와서 취재까지 한다니.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정말 초긴장이 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콜 해리슨. 그는 매사추세츠 피스 액션 Massachusetts Peace Action의 대표다. 보스턴 지역에서 수십 년간 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콜은 지역 시민운동의 대부다. 여러 개의 주요 티비 신문 방송사 기자들과도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피스 액션과 함께 하게 될 한반도 평화집회.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평화협정을 지지하는 촛불집회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화 집회에 참여하기는 처음이다. 더구나 공동주최다. 콜과 연결되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오늘 보스턴 커먼에서 촛불 집회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70년 동안 전쟁의 그늘에서 살아온 이 용감한 한국인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연대를 표현해야 할 때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할 때다.”
수십 년 풀뿌리 평화운동에 헌신한 노장 활동가가ㅕㅁㄱ 처음 내게 연대를 제안하면 보낸 이메일의 내용 중 일부다. 콜과 나는 서로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미국 시민운동단체와 전혀 연관이 없었던 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할 미국인 평화운동가들을 찾고 있었다. 그 역시 한반도 평화 문제의 주체인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우리는 이메일을 통해 연결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에 함께 하겠다는 뜻을 이메일로 전했다. 그는 내가 코리언 아메리칸임을 알고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반겼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함께 집회를 주최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이후 보스턴 지역의 한반도 평화 운동의 중심이 되는 매사추세츠 코리아 평화운동 Massachusetts Korea Peace Campaign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다시, 연설문을 읽는다. 대중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얗게 되어할 말을 다 잊을까 봐. 여러 번 읽고 읽어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오늘 사용할 종이 피켓도 챙겼다. 어젯밤 늦게까지 만든 피켓이다. 준비물을 다 확인했다. 이제 파크 스트리트 역이다. 다행히 지하철이 연착도 안 되고 고장도 안 나, 여유 있게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른다. 역사적인 사건을 앞두고 가슴이 벅차올라서인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평화 대화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긴장되는 순간이다. 두 나라 지도자의 전대미문의 평화 대화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지대하다. 나는 오늘 집회에서 코리언 아메리칸으로서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는, 한반도에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오늘 나의 미션이다. 내가 우리 코리언 아메리칸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정상회담 전, 미국 주요 언론의 논조가 다분히 부정적이었는데, 왜 우리가 종전과 평화협정을 원하는지 언론과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호소할 수 있을까?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앞섰다.
어깨가 무거웠다. 오늘 집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으로 꽉 채워진 나의 백팩의 무게만큼이나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무게가 나의 어깨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파크 스트리트 지하철 역 출구에서 나왔다.
집회를 준비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단번에 그들이 콜과 그의 평화운동가 동료임을 알았다. 성큼성큼 다가간 나에게 콜이 악수를 청했다. 서로를 알아보고 활짝 웃었다. 이메일로만 연락하다가 이제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반가움이란! 간단하게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콜은 그의 평화운동가 동료 폴, 미셀, 조셉을 소개해 주었다. 십여 명의 보스턴 지역 미국인 평화운동가들 함께 한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하는 동지적 반가움 와 오늘 집회에 대한 기대가 모두의 얼굴에 완연했다. 우리는 모두 들떠 있었다.
보스턴 커먼에 울려 퍼진 평화의 메시지
피스액션과 재향군인회 평화단체 등 보스턴 지역 평화운동단체 소속의 미국인들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보스턴 행동의 한인들이 함께 피켓과 촛불을 들었다. 방송사의 카메라와 기자가 여럿 보였다. NBC, CBS, WCVB 등 방송사들의 차량도 눈에 들어왔다. 북미 정상 회담이 시작되기 2시간 반 전이다. 보스턴 시민들의 퇴근시간이기도 하다. 퇴근길 보스턴 시민들이 팍크 스트리트 역 앞을 지나간다.
콜의 사회로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가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오가는 시민들을 향해 외친다.
“대한민국의 용감한 시민들은 억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남북한 간의 평화와 화해를 요구하며 거대한 촛불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의 연설은 한국의 촛불 집회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정치상황을 이야기했다.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며 눈부신 민주주의를 이룬 한국인들은 이제 오랜 군사적 대결을 끝내고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중략...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 국민들에게도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우리의 주한 미군들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미국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줍니다. 천문학적인 군비가 건강보험, 주택, 교육, 환경문제 개선에 쓰인다면 우리의 복지는 나아질 것입니다....”
그는 한국전쟁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4월 27일, 남북한 지도자들은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이 지도자들이 시작한 일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표명해야 할 때입니다…”
역사적인 평화회담에 대한 기대와 희망만큼이나 집회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이제 콜이 나를 지목하며 나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마이크를 받는 순간 가슴속에 불꽃이 타는 듯했다.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 차례다.
“저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여는 보스턴 행동의 이금주입니다. 한반도와 세계의 항구적인 평화를 바라는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여러분의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나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왜 한국인들이 70년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 체결을 염원하는지 말하였다.
“ 한국전쟁은 1953년에 끝났다고 알고 계시지요. 실은 그것은 공식적인 종전 아니라 휴전협정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은 70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남과 북이 총을 겨루는 군사적 긴장 속에 8천만 한국인들은 70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70년 전쟁을 끝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할 때임을 힘주어 말했다. 남북에 70년을 헤어져 살고 있는 수십만의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70년 헤어진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습니다!”
“ 오늘 미국과 북한의 두 지도자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평화 협상에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분도 있을 겁니다. 트럼프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의 북한과의 외교적 노력을 지지해 주세요! 여러분의 지지가 한반도에 전쟁을 끝낼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여러분의 초당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내 앞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돌아갔다. 퇴근하는 보스턴 시민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보인다. 와, 보스턴 시민들이 우리의 평화의 메시지에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언론의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논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민들이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나는 힘이 났다.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우리를 지켜보는 시민들을 향해 외쳤다.
“미 행정부가 평화협정을 조인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고 의회에 말해 주세요! 의회가 평화의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전쟁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 의회가 할 일입니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지지하라고 의회에게 말해 주세요!”
가슴속 불같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토해내는 심정으로 보스턴 시민들을 향해 호소했다. 가슴에서 나오는 절절한 바람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를 바라며 연설을 이어갔다. 우리 한국인의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마이크를 타고 보스턴 커먼에 울려 퍼졌다. 코리언 아메리칸의 평화의 메시지가 보스턴 시민들의 귀가 닿았다. 촛불 집회를 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에서 호의가 느껴졌다. 우리의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 정도의 연설이 끝났다. 내 연설이 끝나자마자, 나는 어느새 여러 명의 기자와 카메라맨들에게 둘러싸였다.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왜 보스턴 커먼에 섰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가? 코리언 아메리칸들에게 정상회담은 한국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 보스턴 지역 한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한반도 평화가 왜 중요한가? 내가 연설에서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이야기했는데, 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가? 북미 정상 회담의 성과가 남과 북의 관계에 어떤 영향이 있겠는가?, 남북의 협력과 교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과 북의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쇄도하는 질문에 정신이 없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분주하게 내 앞에서 움직인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질문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정성을 다 해 대답하려고 했다. 나의, 우리의 진심이 미국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바로 내 눈앞에서 미국의 주요 미디어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큰 관심과 기대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역사적인 순간을 앞두고 매스컴 앞에서 우리의 평화 문제를 이야기하는 나는 나도 모르게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순간 나는 격앙되었고 흥분했다. 기자의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내 뜨거운 심장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평화다. 정상회담이 큰 성과를 내어 70년 전쟁을 끝내고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교류하고 협력하기를 바란다.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경제협력을 한다면 남과 북은 눈부신 번영을 이룰 것이다. 우리는 하나 되는 한반도를 함께 계획하면서 차근차근 통일을 준비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더 구체적으로 평화협정 체결은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 인도주의의 문제이다.’
기자들은 나의 말을 경청했다. 공격적인 질문이나 반론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들에게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한국인의 관점으로 보려고 하는 자세를 보았다. 코리언 아메리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들으려고 했다.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평화는 또한 내게는 단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라고. 북에 고향을 두고 온 부모님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우리 부모님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 북에서 남으로 넘어오셨습니다. 단 몇 주 미군의 공습과 폭격을 피해 남으로 피난을 나오신 것인데, 그 이후 고향에 돌아갈 수 없으셨습니다. 평생을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사셔요. 살아생전 고향 방문하시는 것이 평생소원이세요. 북에는 어릴 적 헤어진 먼 친척들도 살고 계세요. 오늘의 회담이 좋은 결과를 맺어 우리 부모님이 고향을 방문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남북 경제협력이 잘 이루지고 끊어진 남북의 철도가 이어져, 기차를 타고 온 가족이 부모님의 고향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NBC, CBS, WCVB 기자들이 부모님의 사연을 방송에 내보내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의 사진을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저녁 뉴스에 오늘 촛불집회를 보도해야 하니 빨리 보내달라고 한다.
기자들의 반응과, 시민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는 성공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이루기를 열망하는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보스턴 시민들은 우리의 목소리에 관심과 호의를 보였다. 게다가, 주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았다. 우리의 촛불집회가 미국의 주요 방송인 NBC, CBS, PBS 등에 보도된 것이다. 부모님의 사연 또한 전파를 타고 뉴잉글랜드(Massachusetts, Main, Vermont, New Hampshire, Connecticut, Rhode Island 등의 미국 동부 6개 주) 지역 전역에 전해졌다.
뉴스가 초를 다투는 일임을 실감했다. 부모님 사진이 없었던 나는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부모님과 연락을 하는 사이, 기자들로부터 독촉 전화와 문자가 왔다. 저녁 뉴스에 내보내야 하기에 부모님 사진을 빨리 보내달라고 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모님께 사진을 받아 바로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몇 분 후, 기자들로부터 방송된 뉴스 링크를 받았다. 내가 부모님 사진을 보내자마자 바로 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우리 한반도 평화 촛불집회와 한인들의 목소리가 미대 중들에게 주요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그날 밤, 기자들로부터 온 링크를 통해 티브이 뉴스에 나온 우리의 촛불집회 보도 내용을 보았다. CBS와 NBC에서 저녁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그다음 날 PBS 라디오 오전 시사프로그램에서 보도했다. 모두 우리 코리언 아메리칸의 심정과 소망을 잘 담았다. 내가 연설한 장면과 인터뷰 장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의 70년을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연도 다루었다. 한반도 평화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우리는 평화를 염원하는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도해 주었다.
그다음 날 출근하자, 방송의 위력을 실감했다. 나를 보자 모두 뉴스 얘기다. 동교 교사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나를 티브이에서 보았다고. 우리 선생님이 나와서 기뻤다고 했다. 나는 동료 교사와 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았다. 슬픈 한국의 역사를 몰라서 미안하다.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처음 알았다. 오랜 전쟁을 끝내고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한반도 평화를 함께 염원하는 진심 어린 말을 들었다.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와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던 다음날, 학교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더욱이, NBC 기자가 나를 심층 인터뷰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학생들도, 교사도, 교장도 모두 기자의 방문으로 다소 흥분된 듯하다. 한반도 평화와 보스턴 커먼 촛불 집회, 나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로 술렁거렸던 하루였다. 이 날은 한국 평화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티브이 방송사 뉴스를 통해 한반도 평화 촛불 집회와 나의 인터뷰 모습을 본 교사 동료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나의 활동에 대한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표현했다. 내가 나의 고국 한국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임이 자랑스럽다고 나를 격려했다. 어제 뉴스에서 나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나에게서 가슴 절절한 평화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고, 나를 진정이 담긴 운동가라고 했다. 나의 동료들이 나를 그렇게 보아주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감사했다.
나는 그날 평화운동가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들의 말은 한반도 평화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는 있는 용기를 주었다. 여전히 적응 중인 이주민이라는 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힘을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동료들의 말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겨 두고 있다. 오늘도 나는 진심을 담은 평화활동가가 되고자 한다.
보스턴 커먼 두 번째 촛불집회 “헤어진 가족들의 만남을 위하여”
2주 후, 우리는 다시 보스턴 커먼에 섰다. 첫 번째 집회의 성공에 힘입어, 두 번째 촛불 집회를 계획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제안했고 시민들에게 전할 전단지도 내가 작성했다. 한반도 평화 집회는 이제 코리언 아메리칸이 주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6월은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던 시기였다. 나는 첫 번째 촛불 집회에서 미국 대중들에게 미국 미디어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평화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때, 그들은 이해하고 공감함을 터득했다. 가장 인간적이면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 그들은 귀를 기울이고 감동을 받는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일은 결국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고리를 찾아서 한반도 평화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가족 분리정책에 반대하는 미국인의 여론과 한반도의 이산가족 문제를 연결하기로 했다. 미국인들은 전통적 가치를 존중한다. 특히, “가족”의 의미를 소중히 여겨 가족이 격리되는 상황에 대해서 매우 가슴 아파한다. 2018년 멕시코 국경에서 발생했던 불법 이주민 어머니와 아이의 격리 수용은 미대 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6월 29일 미 전역에서 트럼프의 “가족 분리” 정책에 대한 반대 집회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우리는 이 “반가족 분리” 시위에 맞춰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한반도의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집회를 가졌다.
트럼프의 가족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이 날의 시위에 수천 명이 참여했다. 이 시위자들은 우리의 한반도 이산가족의 상봉과 재결합을 위한 집회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가족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캠페인에 연대하고자 함을 먼저 밝히며 우리의 집회를 시작했다. 한반도에 분단으로 헤어져 70년 가깝게 만나지 못하는 수십만 명의 이산가족의 고통에 대해 말했다. 나의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그들의 가슴에 울림이 있었다. 나는 이산가족의 재결합과 자유로운 왕래를 위해 평화협정은 꼭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시민들은 우리의 집회를 지켜보며 연설을 경청했다. 공감과 지지의 표현으로 손뼉을 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날의 집회도 성공이었다. 언론의 주목도 받고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보스턴 글로브에서 우리 평화 집회의 전체 과정을 취재하고 기사도 실어 주었다. 시민들이 한국전쟁, 분단, 전쟁상황, 이산가족 문제에 고통과 슬픔에 공감해 주었다. 몇몇 시민들이 한국전쟁이 53년에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며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공포와 이산가족의 슬픔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만드는 일 그리고 남과 북의 통일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두 번째 한반도 평화집회는 보스턴 시민들과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는 대화의 장이었다. 정말 그들과 소통하는 느낌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절박하게 외치는 한국인의 아픔을 이해시키고 평화를 향한 우리의 노력에 공감을 얻어내는 시간이었다.
촛불집회와 인터뷰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코리언 아메리칸이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때 미국 대중과 미디어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풀어 가는 주인공은 우리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고통의 당사자도 우리다. 우리는 평화를 갈망한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우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해되는 분단의 현실 상황이 그들에게는 짐작조차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한 그들은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가지지도 주목하지도 않는다.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미국 시민들과 주요 언론에게 우리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북한과의 70년 전쟁을 끝내고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가 올 수 있도록 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해 달라는 우리의 간절함을 전했다.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의 노력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우호적인 반응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나는 이렇게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가는 운동가로 배우고 성장하고 있었다.
2018년 초 여름, 두 차례의 한반도 평화 집회 이후에도 보스턴에서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되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집회와 시위, 평화행진, 미 의원과의 만남, 미 의원 사무실 방문,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서명 운동, 온라인 강연 개최, 미 의원 사무실과의 온라인 간담회 등 미국의 심각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쉼 없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