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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Sep 10. 2020

불온한 미쿡 아줌마의 당돌한 여행기-평양은 처음이지?

  

생애 처음 간 북한 여행


2019년 7월 31일 ~8월 7일  북한을 다녀왔다. 7박 8일 일정으로 평양, 개성, 판문점 등을 방문해 교육시설, 문화시설, 공공시설을 둘러보며 북녘 동포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주하였다. 거리, 식당, 카페, 시장, 학교, 공원, 박물관, 유원지, 동물원, 병원, 고아원 등 다양한 생활공간과 공공시설에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유적과 관광명소도  탐방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주 새로운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놀라움, 감동, 희망을 발견한 여행이었다.


내 생애 처음 간 북한 여행이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남한에서는 한미 군사훈련을 하던  때였다.  7박 8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의 무사귀환에 남편, 아들, 부모님과 동생들은 안도하며 축하해 주었다. 방북 기간 동안 나를 많이 걱정했다고 했다. 실은, 방북 기간 내내 가족으로부터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통해 북한은 위험하니 어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내가 여행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위험한 곳이 아님을 어느 정도 입증한 셈이다. 정말 북이 위험한 곳이었다면 나의 여행은 끔찍했을 것이며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평양 청춘거리 연인들


나의 북한 여행은 새로운 발견과 감동으로 가득한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평양을 떠나는 날, 평양 순안 공항에서 고려항공 비행기에 오를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눈물의 의미는 나도 모른다. 여행 내내 나의 가슴을 채웠던 경이로움과 감동의 폭발이었을까? 감동으로 가득했던 여행을 끝낸다는 아쉬움이었을까? 7박 8일 동안 느꼈던 순박한 북한 동포들의 정에 때문이었을까? 


내가 처음 밟은 북한 땅 평양. 평양은, 북한은 처음이었다. 보스턴-서울-심양-평양. 한반도 땅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보스턴에서 서울과 심양을 거쳐 평양에 닿았다. 서울에서 평양. 육로로 3시간 가는 거리를 중국을 경유해 비행기를 갈아타고 12시간 걸려 돌아간 것이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해, 평양에 첫 발을 내디뎠던 순간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했다. 나의 가슴은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해 오후 4시에 평양 순안 공항에 닿을 때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머나먼 여정이었다. 어쩌면 물리적 거리보다 더 먼 것은 정서적 거리일 것이다. 70년 분단의 철조망이 가른 남과 북의 장벽은 70년 세월만큼 이 깊고 높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어려서부터 받아온 반공반북 교육에서 형성된 악마화 된 모습이다. 머리에 불이 난  사람들이 사는 곳.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된 곳. 노예나 좀비와 같은 삶이 있는 곳. 이런 류의 이미지와 이해가 우리 머릿속을 지배한다. 


평양 미래과학자 거리



또한 북한은 70년 세월을  전 세계와 고립되어 살아오고 있다. 미국의 적대정책에 의해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태다. 이런 북한에 대해 우리는 매우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있다. 우리의  북한에 대한 이해는 무지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미디어는 끊임없이 나쁜 나라, 악의 축으로서의 북한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다. 내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와 의식은 이런 영향의 산물은 아닐까? 


대한민국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30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주해 살아온 나.  전혀 새로운 세계,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곧 발을 딛게 된다. 이미 북한을 방문한 다른 여행자들에 대한 정보를 통해 안전에 대한 신뢰는 있다. 하지만 나의 가슴은 묘한 설렘과 긴장감으로 떨렸다. 가깝고도 먼 땅, 금단의 땅, 북한의 수도, 평양에 내가 왔다!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꿈만 같았다.


전차를 기다리는 평양의 여인들



내가 알고 있던 북한이 아니다


내가 7박 8일간 체험한 북한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너무도 달랐다. 뿔이 난 사람도, 좀비같이 사는 사람도 보지 못 했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동포들이 우리와 너무도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단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참 지고지순하다는 것이다. 온정과 호의, 그리고 동포애를 내내 느꼈던 여행이었다.


변화와 도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평양과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양시민들의 모습과 표정을 보았다. 거리 카페인 빙수와 청량음료 매대, 버드나무 늘어진 거리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평양 여성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이힐과 양산, 선글라스, 핸드폰…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이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다. 청춘거리 다정한 연인들과 부부들, 해가 진 인민대 학습당 앞에서 데이트하는 연인,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지하철 연인들에 이르기까지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북녘 동포들의 삶을 목격했다.


평양 대동강 수산물 식당에서 평양시민과 한 때를 보냈다. 대동강변에서 만난 배드민턴 치는 노인들, 보통강변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 아파트촌 공원에서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을 통해 노년의 모습을 보았다.

평양 류경 치과 병원 어린이 치료실



보통강에서 뱃놀이하는 평양시민들, 문수물놀이장, 능라 인민유원지 등에서  여가를 즐기는 북한 주민들을 통해 북한의 여가 문화를 경험했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 평양 교원대, 육아원, 애육원, 창덕학교, 김책공대 등의 탐방을 통해 북한 교육의 현주소를 보았다.


류경 안과 종합병원, 류경 치과병원, 옥류 아동병원 평양, 유선종양연구소 등의 의료시설도 둘러보았다. 평양에서 개성 가는 길을 자동차로 달렸다. 옛 고려의 도읍, 개성도 가 보았다. 분단의 현장, 판문점에서 해외동포와 8천만 겨레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여름 정말 꿈을 꾼 것 같았다. 일주일의 꿈결 같은 추억을 가슴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북한에서의 여정에 독자를 초대하겠다. 나와 함께 평양으로 출발하자!


길거리 카페 빙 매대


평양 문수물놀이장

평양의 고아원, 애육원 어린이들의 재롱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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