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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평양의 유적, 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평양의 유적, 역사의 향기를 찾아서: 대동문, 평양종, 련광정, 을밀대


대동문


우리의 평화자동차는 평양 도심의 역사유적으로 향한다. 첫 방문지는 대동문. 대동문은 북한의 국보 제4호로 고구려 시대 축성된 문루이다. 안내원에 의하면, 대동문은 고구려에서 6세기 중엽에 평양성 동문의 내성으로 건축되었으며, 그 후에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가 1635년에 재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한국전쟁 시 미군의 폭격으로 심히 훼손되었으나 1959년 원상 복구했다고 한다.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대동문을 둘러본다. 19 m 높이의 다소 아담한 느낌의 성문이다. 촘촘히 견고하게 화강암으로 쌓은 돌축대 위에 이층으로 된 문루가 자리 잡고 있다. 일층과 이층 각각 서체가 다른 <大同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서로 쓴 글씨가 예사롭지 않다. 안내원에게 누구의 작품인지 물었다. 조선시대 4대 명필 중의 하나이며 한석봉과 필적할 정도로 출중했던 양사언의 작품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에 <읍호루 挹灝樓>라는 현판도 발견했다. 무슨 뜻일까? 뜰 읍挹. 넓을 호灝. 대동문 문루에서 손을 뻗어 대동강 물을 떠 올린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이름이다. 대동문 바로 옆에 초록빛의 대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대동강 옆에 운치 있게 자리 잡은 대동문. 이 둘은 아주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다. 이 아름다운 현판에서 선조의 풍류와 지혜가 느껴진다.


1500년 세월을 대동강을 바라보며 함께 한 대동문. 오늘은 21세기로 도약하는 평양과도 호흡하는 듯하다. 대동문은 주변의 고층빌딩과 잘 어우러지며, 고전과 현대가 만나는 나름의 멋을 연출한다. 이곳은 옛 멋과 현대의 세련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평양 대동문 앞



평양종


대동문 옆 평양종으로 이동한다. 평양종은 북한의 국보유적 23호이다. 이 종은 1726년 (영조 2년)에 청동으로 제작된 것으로 1890년대까지 평양시민들에게 시간과 비상경보를 알려 주었다고 한다. 밤 10시와 새벽 4시에 종을 울려 성문을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었고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는 비상경보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육중한 범종이다. 높이 254㎝, 지름 163㎝, 무게 12t이다. 개성의 연복사종, 강원도 평창의 상원사 동종, 경주의 성덕대왕 신종, 천안의 성거산 천흥사 동종과 함께 우리나라 5대 명종의 하나라고 한다.


평양종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300년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고 재해나 전쟁을 대피하도록 했던 종이다. 종은 6등분으로 나누어져 단마다 각각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사천왕상, 팔괘 문양이 보인다. 제일 하단에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평양인민위원회가 세운 안내문은 평양종을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주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유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북에도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평양시 인민위원회에서 세운 <력사유적지에서 지켜야 할 리용질서>라는 안내문에 눈길이 갔다. “력사유적지 안에서 자전거를 타지 말며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그 밖에 몇 가지 규칙이 더 안내되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을 물게 된다. 북에서도 벌금제도가 있음을 알았다. 남이나 북이나 역사유적을 잘 보존하려는 노력은 다름이 없다. 역사유적을 훼손하지 않고 잘 보호하기 위해서는 관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유적 보존을 위해 시민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평양종


                                            평양 역사유적지에 세워진 이용질서 안내문




련광정


대동문 근방 련광정으로 향한다. 련광정은 국보 16호로, 조선 시대에 지어진 정자이다. 대동강 기슭 바위 위에 지어진 이 정자는 관서팔경(평안도에 있는 명승지 8곳)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그 경치가 수려하다고 들었다. 과연 듣던 대로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하다. 푸르른 대동강이 바로 코앞에 흐른다. 대동강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동강의 풍광과 잘 어울리는 정자다. 정자에는 몇몇 평양시민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무더운 한여름 더위를 피해 강바람을 쐬러 나왔나 보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오순도순 정담을 나눈다.


                                                              련광정 내부



돌계단을 올라 정자에 들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과 기둥을 보았다. 화려한 단청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붉은빛이 강한 단청이다. 남쪽에서 보던 단청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더 화려하고 강렬하다. ‘천하제일 강산’(天下第一江山)이라는 현판이 중앙에 걸려 있다. 명나라의 명필 주지번이 썼다고 한다. 안내원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다. 그가 어떻게 평양까지 와서 현판에 글씨를 남겼는지 그 사연이 궁금했다. 주지번이 이곳 련광정의 풍경에 반해 남긴 글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명나라의 명필도 반할만한 천하제일의 빼어난 경치다.




                                                 대동강변에 위치한 정자 련광정



                                            대동강변 련광정 근처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



계월향비


련광정의 수려한 경치에 취해 한때를 보내고, 근방을 둘러보았다. 대동강변의 역사유적지에는 계월향의 비도 있다. 남쪽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다. 명기 계월향. 평양시 인민위원회의 유적지 안내문에 의하면, 계월향은 임진왜란 때 평양에 침입한 왜장을 평안도 부장어사 김응서와 함께 기묘한 계책으로 목을 베고 왜적을 물리치고 평양을 해방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 명기이다. 남쪽에 ‘논개’가 있다면 북쪽에는 ‘계월향’이 있다. ‘계월향’의 애국심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1835년에 계월향비를 세웠다고 한다.



외세에 맞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드높은 애국심은 남이나 북이나 우러르는 가치이고 이를 실현한 애국자는 높이 추앙하고 존경한다. 남과 북이 70년 세월 갈라져 살았어도, 우리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남이나 북이나 우리는 외세의 침략에 의연히 맞서 싸운 위대한 선조의 후손이다. 우리는 동족이고 운명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 기생의 몸으로 민족과 나라를 구한 위대한 계월향에 대해 배우며, 남과 북은 운명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자  을밀대


우리의 목적지인 을밀대에 도착했다.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지은 평양성의  누대  중 하나로 지어진  정자이다. 북한의 국보 제19호로 고구려의 우수한 축성술을 엿볼 수 있는 우리 선조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평양시민들에게는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름답게 날개를 편 팔작지붕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붕의 선이 우아하다. 완만한 모란봉과 잘 어울린다. 예서체로 쓰인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을밀대(乙密臺). 이 현판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살았던 서북지역의 서예가였던 호정(湖亭) 노원상(盧元相, 1871~1926)이 쓴 것이라고 한다. 


돌계단을 올라 정자에 들었다. 평양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을밀대 아래로 흐르는 대동강과 멀리 능라도까지 아름다운 도시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을밀대는 평양을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을밀선녀가 을밀대에서 바라본 경치에 반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연 선녀들이 반할만한 경치다. 아름다운 도시, 평양 한복판의 아름다운 정자다.  


을밀대는 언덕 벼랑 위에 세워진 정자다. 11m 정도 높이의 돌로 쌓은 축대가 정자를 견고히 받치고 있다.  정자 주변은 돌담으로 둘러쳐 있다. 운치 있는 누각이다. 과연 평양 팔경 (옛날 평양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가지)으로 꼽힐만한 경치다.  을밀 상춘(乙密賞春)이라 하며 을밀대의 봄 풍경을 평양 팔경 중 제일로 친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한여름에 을밀대를 찾아왔다. 을밀대가 평양시민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주는 정자 이건만,  3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에 을밀대를 찾은 행락객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을 을밀대 정자 안에서 만날 수 있었다. 봄에 다시 을밀대를  찾아와  을밀 상춘을 만끽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아쉬움을 사진 몇 장으로 남겼다. 


대동강 주변 유적지는 일반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평양시민의 휴식공간인듯하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나오신 어르신들은 나무 그늘 아래 부채질을 하며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데이트하는 남녀까지 다양한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양 을밀대



                                    을밀대 누각 안에서 더위를 피하는 평양시민



유적지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대동문, 평양종, 련광정, 을밀대 등 둘러본 모든 유적지의 보존 상태가 좋아 보였다. 유적지 주변은 휴짓조각 하나 떨어진 것 없이 깨끗했고 잘 관리되어 있었다. 입장료는 부담 없는 가격이었다. 어른 300원, 어린이 150원, 외국인은 1유로. 대동강변 역사유적지에서도 우리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양시민의 일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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