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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보 Oct 24. 2021

그냥 사람 사는 곳, 북한


방북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나? 


북한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여러 통로를 통해 알아보았다. 먼저, 북한에 가려면 북한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나는 미국 영주권자이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여행금지 조치에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으면 방북이 가능하다.  


가는 교통편을 알아봐야 한다.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용이한 방법은 중국을 통해 비행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심양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평양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중국의 북경과 심양 두 곳에서만 있다. 즉, 항공편으로 평양에 가려면 반드시 이 두 곳 중 한 곳을 거쳐야 한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서울발 항공편과 평양행 항공편의 연결이 가장 편리한 심양을 택했다.  


그다음, 평양행 항공권 구입이 필요하다. 나는 미국의 재미동포연합을 통해 북한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 방북 의사를 전달했다. 비자발급, 항공권 구입, 여행 일정 등 모든 준비와 절차는 재미동포연합과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맡아서 해 주었다.  


아는 것만큼 보이는 법이다. 미리 북한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어두었다. 방북계획서를 세우기 전에 방북 경험이 있는 분들과 이메일과 전화로 충분히 대화하고 필요한 사전 지식을 얻었다. 이런 사전 준비와 해외동포위원회의 세심한 배려가  “한반도 평화 운동을 위한 북한 바로 알기”라는 나의 방북 목적을 최대한 실현하는 여행 일정을 가능케했다. 


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북한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70년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따로 떨어져 살아온 우리다. 최근 북을 다녀온 방문자나 기자들에 의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일부 알려지긴 했으나, 북한은 여전히 나에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이다. 북녘 동포들의 삶이 너무 궁금했다. 대북제제로 주민들의 생활이 어렵다고 들었다. “주민들의 삶은 어떠할까?  “우리 북녘 동포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우리네 삶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을까? “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쏟아져 나왔다.  


나는  여러 해 교직에 몸담은 교사이기에 북한의 교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초, 중, 고, 대학교의 각급 학교를 방문하고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고 싶었다. 희망 방문지로 북녘 동포들의 일상을 이해하고 경험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공공시설, 교육시설, 문화시설 등을 상세히 요청하였다. 애육원, 육아원, 평양 교원대학, 김책공대, 문수물놀이장, 능라유원지, 중앙동물원, 자연박물관, 평양 지하철, 병원, 약국 등 평양의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을 일정에 넣었다. 또한 개성과 평양의 역사유적지도 방문 일정에 포함하였다. 



                                            방학 중 공부하러 나온 김책 공대 학생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람 사는 북한  


7월 31일에서 8월 7일에 나는 북한에 머물렀다. 남한과 미국에서는 북의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북에서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다. 남한을 향한 비난도 없었다. 북한에선 자신들의 무기를 테스트하는 거라고 했다. 가족이 얼른 돌아오라고 계속 SNS 메시지를 보냈다. 미사일 때문에 난리라고 했다. 이런 시기에 북한에 있으면 위험하다며 나에게 당장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평양의 분위기는 가족의 우려와는 전혀 달랐다. 대동강 주변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평양시민,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평양 거리를 산책하는 연인, 방학에도 김책 공업 종합대학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갓길을 재촉하는 직장인들, 모든 게 평화로웠다. 


그곳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북한은 없었다. 7박 8일간의 북한 방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무시무시하게 무서운 북한의 모습은 보지 못 했다.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모두 내가 보스턴에서 서울에서 흔히 보던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우리네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곳. 그곳이 북한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평양은 한여름 더위를 물놀이장을 찾아 달래고, 하루의 피로를 맥주 한잔에 씻으며, 길을 걸으며 바쁘게 통화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였다.


나는 북한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한 핏줄을 나눈 형제”임을 실감했다.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심성을 지닌 북한 동포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그들이었고 그들이 우리였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7박 8일의 짧은 시간에 그것도 여행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북한 사회를 보고 이해할 수 있냐고. 그러나, 우리는 북에 대해 언론이나 제도 교육을 통해 교육받고 듣기만 했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북을 경험하지 못했다. 생동하는 평양 거리, 그 거리에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실제 평양시민들을 보지 못 했고 그들과 두 손 맏잡고 온기를 느끼며 대화해 보지 못했다. 제도 교육과 보수언론을 통해 전해 들어 알고 있는 북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손선풍기를 들고 청춘거리를 걷고 있는 연인들



나는 여행자였다. 하지만 7박 8일을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추억을 가슴속에 담아 왔다. 


내가 보고 체험한 북녘 땅과 북녘 동포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 어쩌면 분단의 장벽은 저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는 장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북을 마주대 할 때, 우리는 진정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막고 있는 우리 의식 속에 있는 분단의 장벽을 이제는 허물어야 한다. 북에 대한 인식이 전환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형제를 제대로 모르고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배척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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