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사귀면서 누군가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이번 남자 친구, 정확히 말하자면 전 남자 친구지만 이 사람을 만나면서 그와 나를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정말 문득 어느 날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이런 내 모습에 나조차 놀랐어
작년 말과 올해 초까지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나였는데, 이 사람으로 인해 생각이 바뀐 건가 싶었고 내가 생각보다 그를 많이 좋아하고 있음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
그리고 연이어 든 생각은, 남자 친구는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결혼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마음이 졸아드는 것 같았어, 사실 이때부터 이별을 직감했던 것 같아 아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겠구나 하고...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만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연인이라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고
그러던 중 용기를 내어 지난주 남자 친구가 나를 바래다주던 길에 이 이야기를 꺼냈고, 엄청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차 안 공기, 시간이 모두 얼어붙은 것 같았어
지금 당장은 일이 너무 바빠서 결혼 생각은 없다는 남자 친구의 말에 나도 지금 당장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5년 정도 안에는 결혼을 하고 싶고, 일상을 같이 나누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남자 친구는 지금까지 살면서 결혼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어
30년 넘게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6개월도 만나지 않은 나로 인해 생각이 바뀔 수 있을까?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보겠다는 답변이 고맙더라.. 이런 성격을 내가 참 좋아했나 봐
그날 이후 이미 헤어진 사이처럼 우리는 서로 연락은 하지만 애정표현은 하지 않는, 그런 위태로운 상태로 일주일을 보냈고
결국 어제 헤어졌어
나는 스스로 잘 몰랐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가정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남자 친구는 그보다 자신의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오롯이 가정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주변 기혼자들의 결혼생활을 들어보았을 때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안들었나봐, 무엇보다 혼자 있는 편한 그 시간을 놓을 수 없었던 것 같아..
사실 전 여자 친구와도 비슷한 문제로 헤어졌다고 말하더라고 나쁜 놈 진작에 말하지.. 헤어지고 나서 전 여자 친구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고 자신은 그때 결정에 후회가 없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데 누가 내 심장을 점점 작아지게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 내 심장이 몸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
가정을 이룬다는 건 사실 많은 희생과 책임이 따르는 거니까, 지금보다 더 많은 역할을 짊어지고 싶지 않은 남자 친구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지 지금도 마음이 아리네
한 편으로 결국 나를 그만큼밖에 좋아하지 않는구나, 내가 없어도 이 사람은 괜찮은 거구나 하는 생각에도 절절하게 마음이 아팠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고 미련일 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아. 그저 담담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제 둘 다 펑펑 울고 집에 와서 침대에 몸을 뉘었을 때 내 온몸에 피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몸이 가벼워도 너무 가벼워서 손가락 한 개도 까딱 할 수 없이 힘이 없었고 그냥 누워서 천장 바라보면서 눈만 깜빡깜빡
얼마 전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고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라니
30살이 되었어도 여전히, 여전히 이별은 힘들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말, 시간이 약이라는 말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힘을 믿고, 이별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을 모두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