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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May 25. 2021

네가 뭘 한다고 그래?

회사나 잘 다녀라 제발 (싫어요...)

[네가 뭘 한다고 그래?]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회사를 쉬고, 글 쓰는 데 전념하겠다는 나의 선전포고에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었다.



‘네가 뭘 한다고 그래? 그냥 회사나 잘 다녀라 제발.’



제발이라는 단어에서 얼핏 느껴지듯이,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회사 일이 의미가 없다, 이직을 하겠다,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 등 당시에는 모두 진심이었던 이유들로 다른 일들을 꿈꾸었다.



67세의 나이에도 회사를 다니시고, 대학원까지 다니시는 아빠 또한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시고 무척 신기해하신다. ‘어떻게 회사를 다니면서 너처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와 ‘아빠가 회사를 다닐 때도 가끔 그런 신입들이 있었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 친구들은 금방 퇴사를 했는데 지금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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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황은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려 5년 동안.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정 시기에는 회사를 누구보다 편하게 다니며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자문하며 내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직을 지속적으로 꿈꾸고,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이후 사무실 근무를 했는데, 그때부터 약 1년간 나는 꽤 깊이 허무주의에 빠졌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다 죽을 텐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모든 것이 의미 없고, 부질없게 느껴졌고, 일에도 흥미나 의미를 느끼지 못해 괴로워했다. 서서히 내 영혼이 메말라갔던 것 같다.



그때 만난 남자 친구 덕분에 상황은 나아졌지만, 반년 뒤 헤어지고, 작년 비슷한 시기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더욱더 우울해졌던 것 같다.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우울감은 우울증에 가깝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그럼에도 살았던 이유는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슬퍼할 테니까, 나로 인해서 가족들이 마음껏 웃지도 못하고 불행하게 살 모습이 자명해서,’ 그게 눈에 걸려서였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위로를 받으며 많이 나아졌고, 또 이직을 꿈꾸던 나는 결국 이직 대신 맡은 일을 바꿔달라고 팀장님께 말해 새로운 일을 맡을 수 있었다. 마침 새로운 팀원을 뽑던 시기여서,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 이후 지금까지 바뀐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문제는 나 자신을 돌볼 여유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그 일을 위하여 시간을 쏟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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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이것이 과연 ‘문제’인가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 일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도덕적 명제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좋아 보인다. 일반적인 사회가 생각하는 문제는 그 기간 동안 내가 얻지 못하는 노동소득과 복귀 후 진급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결국 돈.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많은 돈이 있었다면, 나는 매일 글만 썼을 것 같다. 지금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이야기 소재가 있는데, 이 소재들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관련된 글쓰기 강의를 듣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지금의 난 웹소설도 쓰고 싶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싶고, 드라마 대본도 쓰고 싶다.



나이 서른에 가족들의 반대에 막혀 경제 활동을 그만두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하고 사는 인생이라니. 10대, 20대의 내가 봤다면 정말 한심하게 혀를 끌끌 차면서 봤을 것 같다. 40, 50대의 나는 어떻게 볼까? ‘그때라도 해볼걸,’ 하며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게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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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는데, ‘죽음’과 ‘거대한 우주, 자연’을 생각하면 사실 이런 고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당장 내일 교통사고 혹은 정말 어이없는 사고로 죽을 수도 있으며, 우리는 지금 이유 없는 우주(pointless universe)에 살고 있다는 사실과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정말 미미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점을 떠올리면 가족들의 반대, 직장에서 진급 누락이 무슨 대수인가 싶다.



고작 6개월이라는 시간이고,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도전하기는 더 어려워질 텐데.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맑은 정신으로 일주일 동안 가족들을 설득 및 회유하여 목표를 이루어내야겠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내가 좋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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