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책을 모두 읽었다. 가장 최근 출간한 <허송세월>을 완독했다. 오랜만에 내놓은 산문집인 만큼 그의 글을 사뭇 달라져있었고, 오랜만에 읽은 책이기도 한 만큼 내 머릿속에 남은 인상깊은 문장과 스치는 생각들이 많았다.
밥벌이와 생의 치열함과 생명력과 애씀을 부르짖던 김훈은 이 책에서 나이듦과 내려놓음, 받아들임, 종교와 신앙을 이야기한다. 또렷하고 날선 눈으로 정치와 사회를 노려보던 김훈은 듣는 이에게 손 내밀며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우리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그리고 유독 청춘을 추억한다.
일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김훈은 일산 호수 공원에 자주 나와 새와 사람들을 관찰한다. 책에는 공원 풍경 속에서 쓴 듯한 글들이 많다. 어떤 글은 정말이지 의식의 흐름대로, 일필휘지로 휘갈겨 쓴 듯한 글도 있었다(호수공원의 봄2). 정작 김훈은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고 글을 맺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길잃고 방황하듯 한참 우회했다던 그 글은, 문장들은 자유스럽게 미끄러지면서도 아름답고, 전달하고자 하는 또렷한 주제를 향하여 마지막 마침표까지 힘차게 달려나간다. 70세 가까이 한 평생 글을 쓰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걸까하는 순간이 이 책 군데군데 숨어있다.
나이들어가는 김훈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말투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사물과 사람에게 뿌리내린 실체 있는 생활의 언어와 생에 대한 집요한 애착은 그대로 담긴 책. 또 하나의 김훈이 들여다보이는 책이었다.
내게 남은 문장들
1.
와인은 첫 잔에 입술을 댈 때, 그 몽롱한 입구로 사람을 끌어당기지만 출구를 찾기가 어렵다. 와인이 마음속에 펼쳐 놓는 미로를 따라서 멀리 갔다가, 그 미로를 다시 거꾸로 거슬러 나오면서 깰 때는 술 깨는 시간조차도 몽롱하고 흐리멍텅하다. 와인의 입구는 로맨틱하지만 출구는 멀고 힘든데, 들어갈 때는 나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막걸리는 생활의 술이다. 막걸리는 술과 밥의 중간쯤 되는 자리에 있다. 막걸리는 술을 밥 쪽으로 끌어당긴다. 젊어서 육군에 복무할 때 모내기철이면 대민지원을 나가서 농부의 일을 거들어주었다. 그때 농부들과 함께 막걸리를 곁들여서 들밥을 먹었다. 막걸리는 밥을 술처럼 먹게 하고 술을 밥처럼 먹게 한다. (...)
비논리적이라는 점에서 막걸리와 와인은 같은 계층이지만, 막걸리는 생활적이고 와인은 몽환적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하다. (늙기의 즐거움, 13page)
2.
젊은이들은 회사를 욕하고 부장을 욕하고 정치권력을 욕하고 용 나온다는 개천을 욕하고 애 낳으라고 몰아대는 꼰대들을 욕한다. 바닥에 침을 뱉고 신발 바닥으로 뭉개고 나서 욕을 계속한다. 소주잔을 부딪치고 손바닥을 부딪친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욕하다가도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함께 웃어댄다. 웃음소리는 크고 맑아서 식당 안에 가득 찬다. 시냇물이 빠르게 흘러가는 소리다. 나처럼 혼자 먹으러 온 사람은 벽 앞으로 설치된 1인용 자리에 앉아야 한다.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혼밥으로 저녁을 먹을 때, 삶의 기쁨과 슬픔은 영롱하다. (말년, 41page)
3.
퇴계 선생님은 죽음이 임박하자 이런 시문을 남겼다.
조화를 따라서 사라짐이여
다시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임종의 자리에서는 "매화 화분에 물 줘라"하고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이 기록했다. 아름답고 격조 높은 유언이지만 생활의 구체성이 모자란다. (...)
내 친구 김용택 시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김용택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김용택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 때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 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재의 가벼움, 53page)
4.
한국어로 문장을 쓸 때나 한국어로 쓴 문장을 읽을 때 나는 늘 조사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머뭇거린다. '은, 는, 이, 가, 을, 에...' 따위의 한국어 조사는 한 음절로, 생김새는 허름하지만 쓰임새는 넓고 깊다. 조사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고 단어에 지위를 부여해서 단어를 부린다. (조사 '에'를 읽는다, 134page)
5.
새들의 생명은 파충류의 생명과 섞여 있다. 뱀이 진화해서 새가 되었다고 생물학 책에 나와 있다. 어던 새의 종아리에는 지금도 비늘이 남아 있어서,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얼마나 큰 소망과 그림움이 뱀을 날게 하는 것이며 새들을 대륙 간 비행으로 몰아내는 것인가를 나는 생물학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생물학 책에는 '그리움'은 없고 '적응'만 나와 있다. 두 단어는 같은 뜻이 아닐까. (새 날개 치는 소리를 들으며, 212page)
6.
비글호는 1831년 12월 27일 영국의 데번주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 다윈은 배가 정박하는 모든 육지와 섬에서 동식물과 지질, 지형, 기후를 탐사했다. (...) 출항할 때 다윈은 영국의 대문호 존 밀턴의 <실낙원>과 그가 신뢰하는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를 지니고 배에 올랐다.
<실낙원>의 서사구조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바탕하고 있다. 이 대서사시는 하느님이 창조한 낙원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쪽에서 인간세의 기원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지질학 원리>는 이 지구의 현 상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결과물이라는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두 권은 화해하기 어렵고, 연결시키기 어려운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스물두 살의 다윈이 왜 이 책 두 권을 기나긴 항해의 동반자로 선택했는지를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또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쪽으로 가려면 양쪽을 모두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윈의 마음이었을까.
7.
사람은 지나가지만 사람됨은 지나가지 않는다. (박경리, 신경림, 박낙청 그리고 강운구, 264page)
8.
법의 적용과 집행이 법으로서 정당한 것이라 해도, 이로써 인간 세상에 정의가 구현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283page)
9.
흉악범죄나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는 사람들의 죽음은 TV 화면 아래쪽의 자막뉴스로 흘러간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283page)
10.
지금, 언어는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욕망과 당파성으로 무장한 입들이 여러 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무기화된 언어를 발포해서 공유지를 폭격하고 있습니다. (...) 말을 할수록 인간 사이가 단절되고 소외가 심화되는 사태이고, 정치는 공허해지고 있습니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89page)
11.
아마도 '국민'이라는 한국어는 한국 사회의 여러 당파집단들이 이 신기루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빈번히 동원하는 단어일 것입니다. 정치 슬로건이 언어를 무기화하면 그 언어는 형해화될 수밖에 없는데, '국민'이라는 한국어의 가장 불쌍한 피해자는 국민입니다. (...) '우리는 국민의 뜻에 따른다'라고 말할 때, 이 언설은 매우 민주주의적인 겉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이 '국민'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국민은 이 사람도 아니고 저 사람도 아니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기도 하고 저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도 아닌 사람인 동시에 누구나인 사람입니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93page)
12.
'정치공세하지마라'라고 외치는 쪽도 '정치수세'를 하고 있으니 공세와 수세가 부딪쳐서 정치와 언어는 '내용 없음'으로 굳어지고 '정치'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시야를 환영의 벽으로 차단하게 됩니다. (...) 크고 모호한 단어 뒤에 사실을 감추는 어법은 이 시대 정치적 언설의 특징입니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95page)
13.
(...) 그러므로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거대질문보다도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소박한 물음이 오히려 인간의 편에 가까울 것입니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97page)
14.
어떤 논객과 세객들은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는 저서가 많이 팔리고 '좋아요'가 많이 붙었다고 해서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물량과 숫자의 크기에서 정의가 발생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97page)
15.
나는 말에서 태어난 말을 버리고 사람과 사물에게서 얻은 말을 따라가기에 힘썼다. (새와 철모, 330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