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에세이
“여기 앉으시죠. 마땅한 자리가 없네요." 나는 말하며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켰다.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 시계는 새벽 두 시 이십삼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시간 넘짓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운전해 도착한 상기된 표정의 젊은 남자와 나는 3인용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만이 있기에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은 쓸데없이 커다란 방이었고, 그 안에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 병원은 야생 들개들이 병원 구역에 종종 목격될 정도로 외진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창문 밖은 정말 칠흑같이 어둡고 적막했다. 문을 닫으니 그 남자와 내가 단둘이 세상의 시공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직 커다란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만 이 곳의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우리의 심장 소리를 초 단 위로 잘게 나누고 있었다.
그날 밤은 기장군에 위치한 지방 연계 병원에 두 달 동안 파견 나온 지 딱 절반이 지난 때였다. 두 시간 전 나는 병동에서 말기 암 환자였던 그 사내의 어머니의 흉부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그곳을 필사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수많은 약물이 주입된 후에 희미하게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다시 멈추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였다. 담당 과장님은 어서 보호자를 불러 DNR(Do Not Resuscitate, 소생술 금지) 동의서를 받으라고 전화로 지시했고, 그렇게 해서 그와 이 공간 안에 같이 있게 된 것이었다. 나의 하늘색 당직복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 짙은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고, 에어컨 바람은 너무나 차가워 감기가 걸릴 것 같았다. 극도로 피로했지만 의무기록에 유일한 보호자로 적혀 있던 아들에게 지난 두 시간 동안 발생한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 새벽 열두 시 사십이 분에 발생한 심정지로 환자분께 심폐소생술 시행했습니다. 약 사십 분간 심장압박과 함께 혈압을 높이기 위해서 약물 주입했고요. 지금 다시 심장이 뛰어 중환자실로 이송하긴 했지만 혈압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맥박도 불규칙하고 아마 곧 다시 멈출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세한 검사는 못하지만 이미 뇌와 심장에 많은 손상이 갔을 것으로 추측되고, 아마 의식을 되찾으실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 동의서는 추가적인 소생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머님 상태가 악화되어 심장이 다시 정지하더라도 추가적인 심장압박과 약물 주입을 안 하겠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어머님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저희 의료진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죄송하지만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의 눈이 화들짝 커지며 나의 눈을 애타게 좇았다. 나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동의서만 바라보며 어떤 치료 옵션을 중지할 것인지에 대해 조곤조곤 자세히 설명했다.
불현듯 나는 설명을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혹시 더 오실 보호자는 없나요?”
그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없어요. 저밖에 없어요.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고 친형도 작년에 이 병원에서 하늘로 보냈는데 어머니도 이렇게 보내는 건가요? 어머니도 두 달 전 건강검진에서 갑자기 위암으로 진단받고 오신 것이에요. 아직 해드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약속했는데, 이렇게 가시면 안 되는데... 어떻게 저에게 이러실 수 있죠?”
긴 침묵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우리 둘 사이를 휩쓸고 지났다. 사내는 돌연히 굵고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흐느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남자는 이 종이에 서명을 하는 순간 이 세상에 온전히 혼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두려움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그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동의서가 부착된 플라스틱 판을 서슴없이 들이미는 매정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더 궁금하신 것이 없으시면 여기 성함을 적으시고 옆에 서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명 칸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으로 그는 나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부탁입니다. 조금이라도, 저희 어머니가 저와 함께 이 땅 위에 머물게 해주십시오.’라고.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사라졌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더 이상 그분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좌절과 후회의 깊이를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수분의 정적이 흐른 후,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들었다. 볼펜은 동의서 위에서 흐느끼듯 움직였다. 나는 멋쩍은 위로의 말을 몇 마디 애써 중얼거린 후 동의서를 중환자실 스테이션에 전달하기 위해 대기실에서 나왔다.
당직실 침대에 몸을 드러누웠을 때는 벌써 새벽 세시였다. 연속당직으로 인한 수면 시간 부족과 심폐소생술 때의 긴장이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극도의 피로감이 나에게 엄습하였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뒤 나는 사망선고를 해달라는 중환자실의 연락을 받았다. 사망 선언을 할 때 그의 꿈꾸는 듯한 표정, 충혈된 눈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끔 생각하곤 한다. 그 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의사가 최선을 다해도 누구에게나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를 결코 막지 못한다. 그리고 떠난 자가 남긴 부재의 슬픔은 고스란히 산 자가 짊어지게 된다. 이따금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이의 심장은 이미 떠난 이들이 넘겨준 삶의 짐을 짊어지고 뛴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랑의 기회를 미래로 미루고 애써 외면하며 지내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생기는 죄책감, 후회, 그리고 슬픔으로 우리 영혼의 짐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지방에 계신 부모님과 외국에 나가 있는 누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그리고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먼저 사랑한다고 꼭 표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