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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이 Jun 28. 2019

[김호이의 사람들]'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인터뷰

"나를 만든건 집념과 욕망"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어느덧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 된 지도 1년이 돼가는데요.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30년 전 88서울올림픽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1주년과 함께 88서울올림픽 31주년이 되어가는데요.
평창동계올림픽에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그리고 그 이전에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를 기억하시나요? 이번 인터뷰는 호돌이 아빠로 잘 알려진 김현 디자이너의 인터뷰 인데요. 88서울올림픽 이후 31년 동안의 김현 디자이너의 흔적을 인터뷰를 통해 돌아봤습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호돌이 아빠 김현 디자이너 ]


Q. 88 서울올림픽이 열린지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내셨나요?
A. 재작년 연말까지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다가 직원들에게 회사 다 물려주고 이제는 쉬면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Q. 30년만에 열린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의 수호랑도 호돌이와 같은 호랑이인데 우연의 일치일까요?
A.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저는 신문사에 기고도 하고 대학 강의도 나가고 기업체 특강을 많이 다녔어요. 그때마다 동계올림픽을 하더라도 동계의 눈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흰 색이기 때문에 흰 호랑이가 드물지만 실제로 있는 동물이니까, 호랑이로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몇 년 동안 얘기를 했어요.

왜냐면 “하계 올림픽 때도 호돌이를 했는데 동계올림픽 때도 백호로 해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을 확실하게 호랑이로 우리 걸로 만들자”했고 마침 전 세계에 호랑이를 국가상징으로 들고 나오는 나라는 현재로서 아무데도 없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가 시비를 걸기 전에 빨리 우리가 먼저 획득하려면 동계올림픽 때도 호랑이로 한번 더하면 그만큼 우리가 더 유리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하고 다니던 중에 마침 정말로 호랑이로 돼서 참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Q.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호돌이로 선정됐을 때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A. 그건 기분을 따질 때가 아니죠. 단군이래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행사였고 개인이 정한 게 아니라 전 국민한테 공모를 한 거예요.
“우리나라 서울올림픽의 상징을 무엇으로 하면 좋겠냐”해서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하지만 그때는 관제엽서를 사서 우체통에 넣어서 산더미만큼 쌓인 엽서들이 있었는데 많은 후보들 중에서 호랑이로 하자는 의견이 제일 많이 나왔어요.

그건 전 국민의 뜻이지 개인의 생각이 아니에요.      


[사진= 네이버/ 호돌이 ]



Q. 호랑이라고 해도 다른 캐릭터들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호돌이라는 상징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요?
A. 83년도에 저는 대우라는 회사의 디자인실에 다니고 있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대학교수, 만화가 광고대행사 등 일곱 군데와 경합을 하게했는데 당시에 3개월 안에 2점씩 내라고 해서 일곱 명이 2점씩 내서 총 14점이 접수가 됐어요. 심사를 한 결과 제가 낸 2개 중에 하나인 호돌이로 선정이 된 거예요.

Q. 간혹 길을 가다가 그리고 지하철역 같은 곳을 보면 아직도 호돌이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는데 30년 전 호돌이를 봤을 때와 지금의 호돌이를 볼 때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지금 하나 안타까운 건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전체가 타일로 호돌이가 올림픽 경기 종목의 형식으로 전시돼 있었는데 요즘에는 위험하다고 칸막이로 유리막을 해놔서 보기가 힘든데 그때는 역을 지나갈 때마다 많이 봤어요. 그래도 일단 오래된 거지만 계속 흔적이 남아있으니까 저로서야 기분 좋은 일이죠.
        


[사진= 김호이 기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남아있는 호돌이 흔적 ]



Q. 호돌이를 디자인하기까지 수정 작업을 얼마나 거쳤고 많은 소재들이 있었을텐데 호돌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어쨌든 일곱 사람이 두 개씩 출품해서 14점이 접수가 됐는데 제일 좋은 점수를 받아서 선정이 됐어요. 그런데 문제가 호랑이는 호랑이인데 어떻게 해서 한국의 이미지를 나타낼까가 제일 중요한 점이었는데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상모를 쓰고 상모 끈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한 게 제일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Q. 예전에 공모전에서 35번을 떨어졌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만약 35번이 아닌 50번을 떨어졌더라도 계속 도전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A. 될 때까지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아마 했을 거예요. 혹시 기우제 지내는 인디안 주장 얘기를 아시나요? 그 인디안 주장이 기우제만 지내면 비가 반드시 온다고 하잖아요. 왜냐면 올 때까지 기도하니까 이거와 마찬가지예요.

Q. 김현 디자이너가 처음에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하게 된 거예요.

Q 김현 디자이너의 작품 중에 대표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A. 아무래도 사람들이 호돌이를 제일 많이 아니까 호돌이 아빠로 알려 진거고. 제가 브랜드 디자인 전문회사를 34년 동안 했는데 예를 들면 청와대 상징로고와 최근에는 새로 바뀐 정부상징 로고까지 34년 동안 약 500개 정도 디자인을 했어요.

근데 그중에 뭐가 대표적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다 애정이 가고 혼신의 힘을 다 했어요. 모두가 제 작품들이고 자식이니까,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Q. 그런 디자인들을 보면 감회가 어떠신가요?

A. 아무래도 흔적이 눈에 많이 띄니까 “아 그래도 살면서 뭔가의 역할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이건 내가 생각해도 가장 의미 있었다”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기존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분야인데 제가 ‘뷰티플코리아’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한국의 아름다움을 포스터로 몇 십년동안 디자인한 게 있어요. 그건 돈 버는 것과 상관없이 전시회 같은 곳에 낸 건데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이유가 있나요?
A.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잖아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



Q. 김현 디자이너가 평소 가지고 계신 습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특별한 습관은 없지만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거 같아요. 좋은 디자인이 나오려면 엄청난 고민을 많이 해야 돼요.

Q. 지금의 김현 디자이너를 만들어 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그건 집념과 욕망이예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공모전에서 여러 번 떨어져도 계속 했던 이유가 “될 때까지 해서 끝장을 봐야한다”는 그런 생각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Q. 디자이너 선배로서 디자이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몇 번 잘 안되고 실패한다고 해서 포기 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실수하려면 빨리 해봤으면 해요. 나중에 나이 먹고 뒤로 갈수록 실수나 실패를 하면 그만큼 피해가 더 커요.

그래서 학생 때는 여러 가지 시도를 많이 하면서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도 자기가 노력한 것만 조금 억울하지 남한테 피해는 안주거든요. 근데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직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일을 하다가 실수나 실패를 하면 그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거잖아요.

그리고 만약에 사장이나 이런 사람들이 실수나 실패를 하면 회사가 문 닫는 거예요. 나라의 총 책임자인 대통령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사람이 커지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뒤늦게 실수를 하면 피해가 엄청나게 커요.

그러니까 젊은 학생들이 실수와 실패를 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빨리 실수하고 실패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대신에 똑같은 실수나 실패는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현명한 사람은 실수를 하더라도 다른 실수를 하고 그게 자기 자신의 재산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Q. 김현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기억으로 남아주었으면 하시나요?

A. 멋진 디자인을 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최고의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디자인을 처음 공부할 때 디자인을 잘하는 선배나 작가들의 작품을 흉내 낼 수 있지만 빨리 거기서 벗어나서 자기의 세계를 새롭게 찾아야 되는데 그건 굉장히 힘들어요.

남의 흉내를 내지 않고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은 그 사람의 디자인에서 처음 느끼는 걸 각자가 찾아내야 되는데 그건 말이 쉽지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에요. 그러려면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이 하고 실패도 많이 해야 되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기만의 세계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빨리 찾아내느냐와 함께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김현 디자이너와 ]


여러분 혹시 이번 김현 디자이너의 인터뷰 어떻게 보셨나요? 만약 공모전에 35번 떨어졌다고 해서 포기했더라면 지금의 김현 디자이너 그리고 88올림픽의 호돌이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35번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기에 지금의 김현 디자이너와 호돌이가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도전해서 원하는 걸 이뤄내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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