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누구도 나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데일리 카네기의 명언 저서 중 일부를 읽고

by 김미경

"나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 나는 어린 시절 내내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 같은 아이는 절대로 다른 이들의 눈에 들 리 없고, 예쁘다는 칭찬을 받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가 있는 언니나 동생들과 달리 내게는 절대로 애인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 왔다.


나는 미운 오리 새끼였으니까…어린 시절 난 부끄러움이 참 많았다. 이모들이 입었던 옷을 고쳐 입어야만 했고, 다른 자매들처럼 춤을 잘 추거나 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했다. 다른 자매들과 난 너무 달랐고, 무도회에 가도 춤출 상대 하나 없는 인기 없는 아이였기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랬던 내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함께 춤을 추자고 한 소년이 있었고, 그때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소년의 이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열등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가문은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들까지 모두 뉴욕 사교계에서 쟁쟁한 미인들이었는데, 어째서 나만 못생긴 아이로 태어났는지, 정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엘리너는 참 재미있는 아이랍니다. 이 애는 행동하는 게 노인 같아서 가족들이 ‘할머니’라고 부르죠.


이랬던 내가 열등감과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건 나보다 힘든 환경에 처해 있던 이들을 도우면서부터다. 돌아보니 이 세상에서 두려움만큼 마음을 해치는 감정은 없다. 나는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 두려움과 싸웠고, 결국 그 해묵은 감정을 극복해 냈다. 두려워서 손 쓸 엄두도 나지 않던 일들을 어떻게든 해낸다면 누구든 두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의 경험이 계속해서 쌓일 때까지 두려워하던 일들에 도전해야만 한다.”

By 앨리너 루즈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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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나는 열등감에 대한 나의 분노가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적, 나는 ‘키가 더 컸으면, 얼굴이 더 예뻤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많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돈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이러한 부족함과 바람이 모두 열등감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나의 부족함이 열등감으로까지 발전할까? 열등감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어떤 수준일까?


생각해보니,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았을 때, 그것이 마음의 질병처럼 열등감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내가 아무리 못생겼더라도, 내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준다면, 외모적 열등감으로 고통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열등감은 그 누군가가 혼자 만들어낸 마음의 병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상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무심코 내던진 말이든, 작정하고 상처 주려고 내뱉은 말이든, 이런 말로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우리들 아닐까?


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열등감을 만들어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나 자신이 누군가의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악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감은 두려움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앨리너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연설에 계속 도전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냈고, 어릴 적 가졌던 열등감도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서 떨쳐냈다. 나는 이 점에서 그녀를 본받고 싶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나는 공황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공황장애의 원인 행동을 피하기만 했지, 맞서지 못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원인 행동에 반복적으로 도전함으로써 안정을 찾아가는 경험을 했다. 좋아지는데 2년 넘게 걸린 것 같다.


이런 경험 덕분에 앨리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면 마음이 강해져서 어떤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비난과 평가에 전혀 휘둘리지 않을 만큼 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인은 누군가를 평가할 능력이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더라도 철저하게 무시하는 차단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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