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욕망해, 네가 여자일지라도

<너는 나를 불태워 (You Burn Me)>-사포는 어디에나 있다

by 박자아


-2024전주국제영화제-


<너는 나를 불태워 (You Burn Me)>는 체사레 파베세의 희곡 <레우코와의 대화> 중 ‘바다 거품’ 챕터를 각색한 영화다. 영화는 미학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장치를 곳곳에 숨겨둔다. 화면의 비율과 지류의 활용, 종이가 넘어가고 쌓이듯 중첩되는 이미지와 사운드, 몇 번이고 반복되는 대사들, 음의 소거, 노광 된 듯한 화면의 효과 등등 말이다. 더불어 <너는 나를 불태워>는 시와 등장인물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영화는 원작의 질서에 맞춰 진행되지 않지만, 시인 사포와 브리토마르티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는 여성 서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예컨대 여성 감독이 제작하는 것, 여자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흔히 여성 서사로 일컫는다. 처음에는 이 작품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체사레 파베세 희곡 속 사포를 끌어와 이야기하는 것이 여성, 특히 레즈비언으로써의 사포를 잘 담아낼 수 있을지, 대사에 치우쳐 그녀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은 아닐지. 그렇지 않아도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사포의 존재가 작품을 거치며 비산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이러한 걱정을 거둘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너는 나를 불태워>는 매우 시적이고 섬세하다. 대사 하나하나는 사랑에 다치고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만큼 아름답다. 레즈비언 영화 속에서 쉽게 등장하는 물과 절벽의 메타포 속에서 감독은 ‘불태우다’라는 키워드를 반복해서 등장시킨다. “욕망은 뱀처럼 파괴하고 불태우죠”라는 대사 뒤에 붉은 사과를 직접 따서 먹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을 고려해 보면, <너는 나를 불태워>라는 명제는 결국 ‘나는 너를(혹은 너는 나를) 욕망한다’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여기서 ‘너’는 사포나 브리토마르티스일 수도 있겠고, 삶과 죽음일 수도 있겠으며,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겠다.

브리토마르티스 그리고 사포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향해 ‘제 전우가 되소서, 사랑하지 않으면 곧 사랑하게 되리’를 되뇌는 대담함과 용감함은 섬세함에 이어 과감함을 더한다. 회의적인 삶, 죽음을 좇는 것, 영화는 죽음과 비관을 향해 흘러가는 듯하지만, 엔딩에서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사포를 점차 선명하게 조명하면서 사실 사포의 삶은 언제나 나답게 살기 위한 여정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따뜻했던 대사이자, 원작에도 등장했던 브리토마르티스의 말을 첨부하며 이만 줄인다.


“오, 사포, 그건 미소 짓는 것이 아니에요, 미소 짓는다는 것은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파도나 나뭇잎으로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한 형태로 죽고, 다른 형태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과 운명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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