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이미랑, <딸에 대하여> 그리고 엄마에 대하여

by 박자아


2017년 더위가 밀려오던 어느 계절 <딸에 대하여>를 엄마에게 내민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책은 너무나도 나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엄마의 감정은 고려할 바 없이 벅찬 마음으로 급히 들이밀었던 것이다. 엄마는 힘겹게 책을 다 읽었다. 소감이 어떻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단 두 마디로 화답했다.


나는 내 딸이 평범했으면 좋겠어.

너는 내 딸이잖아.

더위가 가시는 이 무렵 <딸에 대하여>를 다시 마주했다. 8년이라는 세월을 흘러보내며 나의 여러 레인을 마주했고 또 이별했다. 어떤 감정은 짙어지고 어떤 정체는 모호해졌다. 반쯤 움츠러들고 조금은 게으른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너는 내 딸이니까. “ 엄마의 말이 다시 재생되는 순간이 다가온다. 나는 전혀 무방비한 상태로 나의 엄마를 영화 속에서 마주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아닌, 엄마에 대한 것이었다.


반으로 쪼개진 붉은 수박은 다시 붙일 수도, 온전해질 수도 없다. 엄마와 딸이 그렇다. 엄마는 자고 있는 딸 주위를 맴돌며 눈치를 보지만 닿을 수 있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딸은 항상 무심한 말을 던지며 엄마 곁을 떠났다 돌아오길 반복하고 엄마는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런 엄마와 살을 맞대며 끊임없이 대화(일방적일지라도)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기억하지 못하는지 기억하지 않는지, 말하고 싶은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나이 지긋하고 돌볼 자 없는 어르신이다.

딸, 딸의 여자친구, 엄마, 어르신의 존재가 비선형적으로 생동하며 맞닿는다. 어르신은 딸 그린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다.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니? 자식은 낳을 수 있어? “라며 딸을 나무라는 엄마는 역설적이게도 어르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앞에서 ”가족이든 아니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라는 말을 던진다. 말하지 않는 어르신의 얼굴을 부여잡고 자신이 누군지 되묻는 엄마는 자신을 외면하는 사회의 발목을 잡아끌며 자신이 누군지 증명하는 딸의 모습과 닮아있다. 엄마와 딸은 각자의 영역에서 같은 주제로 투쟁하지만 서로 알지 못한다.

어르신이라 불리던 이름은 죽음 앞에 비로소 진실해지고, 빈소를 찾은 딸의 여자친구와 친구들을 뒤로한 채 엄마는 조용히 눕는다. 비선형적으로 굽어지던 그들의 존재가 일치하며 중첩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 엄마의 숨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라. 조용히 들이쉬고 내뱉는 숨결 사이, 죽음이라는 순리와 이치 앞에서 사랑이란 증명하고자 하는 것도, 거스르고자 하는 것도 아닌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김혜순 시인의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라는 시집을 떠올려 본다.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아니 우리는 숲에 드러누워 잡초로 회귀한다. 엄마는 가만히 빈소에 누워 죽음을 감각하며, 동시에 생명력이 가득 찬 사랑을, 딸들의 사랑을 느낀다. 시간이 지난 뒤 길을 가던 엄마는 비로소 딸과 같은 존재들을 눈에 담는다. 엄마가 딸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이 모든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너는 내 딸이니까. 폭력적인, 그럼에도 따뜻한 이 말은 내 마음을 꼬집고 들쑤신다. 나는 당신의 딸인 덕분에 사랑을 배웠다. 지금 그 사랑이 엄마의 사랑과는 다른 형태일지라도 나는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 사랑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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