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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08. 2022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1 - 아르바이트 편

제 2 화

 


  광주에서 담양으로


아르바이트하면서 늘 보던 프로방스 풍경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하다가 담양으로 돌아오기를 결심한 건, 코로나19가 시작되고 6개월 정도 지난 이후다. 귀향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아르바이트 자리의 부재였다. 나는 주로 카페 아르바이트 위주로 일을 해왔는데, 코로나19 이후 아르바이트 자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저시급의 인상과 더불어 많은 자영업자들이 어려워진 것이다.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주 15시간에 가깝지만, 결코 15시간을 넘기지 않는 시간으로 측정되는 근무시간. 되도록 사장이 직접 일을 하고, 마감시간 위주에 아르바이트 생들을 채용하는 곳이 많았는데, 나는 대학원 수업이 야간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한정적이었다.


여러 이유들이 맞물리면서 나는 결국 담양으로 돌아갔다.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의 LH 아파트를 중간에 내놓는 것이 아까웠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전체 일자리의 개수가 적더라도, 늘 젊은 사람들의 일손이 부족한 담양이 차라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엔 더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본가에서 지낸다면 최소한의 용돈벌이만 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방스의 한 돈까스집, 그리고 카페에서


16개월 동안 일하면서 열심히 키운 선인장. 지금도 누군가 잘 챙겨주고 있을까?


담양에서 여기저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다녔다. 카페 업무가 좋았지만, 카페 업무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여름이 모두 끝난 시기여서 카페 일자리가 많지 않기도 했다. 주로 공장, 식당 주방, 서빙 일이 많았다. 인스타 감성의 한 맛집에 점심 타임 서빙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오픈한 지 꽤 된 걸로 알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 부분에서 왠지 감동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감동도 잠시, 주 15시간 이상이니 혹시 주휴수당을 주시는 게 맞냐고 물었지만, 잠깐 고민하는 얼굴로, 그 부분은 이야기를 해보시죠. 하더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몇 번 더 면접을 보러 다닌 후, 나는 메타프로방스에 위치한 한 카페에 고용되었다. 식당과 나란히 붙어 있고, 문도 뚫려 있는 곳이었다. 식당을 먼저 운영하다가 옆 카페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대부분 식당 손님이었고 카페는 주말 기준 1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적자 매장이었다. 그래서 사장님은 한 가게처럼 생각하고 일하라고 했다. 카페 구인공고가 모집이 잘 되니, 카페로 구인공고를 하고 사실상 서빙과 카페 업무를 모두 해야 하는 셈이었다. 주휴수당에 대해 여쭤보니, 그런데 담양은 주휴수당 주는 곳이 없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도 챙겨주신다기에 이곳에서 일하기로 했다. 주말 서빙 보조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바뀌어서 혼자 일할 때도 있고, 코로나19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만큼, 손님이 많았다. 나는 이곳에서 16개월 정도 근무했다.



  누군가의 여행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


쌍화차 팔고 꽤나 뿌듯했던 날. 근데 가끔 견과류가 너무 많아서 싫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르바이트 자리는 생각보다 많지만,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직장처럼 근무해야 하는, 사실상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사무직을 원하거나, 사무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은 모두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이 서비스직에 종사한다.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화에 다뤄볼 예정이다.) 그렇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남아 있다'기 보다 '남겨졌다'에 가깝다. 실제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그러하다. 부족한 청년층 인구를 보조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을 한다.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이 쉴 때 일을 하는 삶이다.


이것을 양질의 일자리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법보다 관습이 중요한 이곳에선 매년 오르는 최저시급을 지키는 것보다, 일당 십만 원이 표준에 가까운 일이다. 나 또한 메타프로방스에서 16개월을 카페와 식당을 오가며 일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반토막난 퇴직금이었다. 일을 할 땐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원만히 해결하고 싶어서 기다렸지만, 퇴사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노동청에 신고를 넣은 상태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저녁은 항상 아름다웠던 불 켜진 프로방스 (사람만 좀 적으면^^)


한 다리만 건너도, 아니 동네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거나 사우나만 가도 모두가 서로를 아는 지역사회에서, 나쁜 일이 웃음거리가 되고 좋은 일도 흠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노동청 신고라는 건 꽤나 얼굴을 붉히는 일이다. (내가 피해자여도 그렇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메타프로방스는 담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타지에서 들어와 장사를 하는 사람이 더 많고, 애초에 손님이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 평판 같은 걸 생각하지 않고 신고를 한 부분도 있다. 신고를 해도 소문이 나서 손님이 끊기는 일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사장님에게도 다행인 일일지도 모른다.



  비도시의 노동에 대하여


내가 아이디어 내고 레시피&디자인 짰던 냄비 팥빙수. 옛날 스타일 빙수로 어르신들이 되게 좋아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담양에서 나고 자란 많은 또래 친구들이 도시로 올라가기를 '실패'하거나 '남겨져'있다. 결국 누군가는 채워야 하는 자리인데, 왜 우리는 그렇고 그런 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을까? 누가 노동을 신성하다 했는가. 신성한 노동의 종류는 모두 도시에 있는 것 같다. 청년층을 붙잡아 두기 위한 비도시 지역의 여러 정책들이 있다. 이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일 것이다.



- 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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