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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09. 2022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2 - 직장 편

제 3 화


일자리를 구합니다


20대 후반이 되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첫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기를 가진 후 두 번째 직장에 입사했다. 나는 여전히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대학원생'이라는 이름 하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올해 초,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적금을 제외한 퇴직금과 남은 돈으로 1년 정도 공부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내가 퇴직금을 절반밖에 받지 못하면서 무산이 되었다. 나는 내가 계획했던 기간보다 3개월 정도 일찍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은 전공 공부. 글 쓰는 일과 각종 화려한 아르바이트 경력. 여러 가지 코로나 제한이 풀리고 여름이 되자, 담양에는 새로운 카페가 많이 생겼다. 일자리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난 화에 언급했듯, 담양의 면단위 지역에 생기는 대형 카페들은 직장처럼 근무해야 하는 곳이었고 곧 개강하면 저녁에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에겐 적합하지 않았다. 또 면단위는 버스가 많이 없어서 차 없이는 출퇴근이 불가능했다.



수치스러운 백수


주변의 친구들은 회사를 다녔다. 어쨌든 전공을 살려 뭔가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거나, 전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코딩을 배워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어쨌든 고만고만한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 경리라는 이름 하의 온갖 일들을 담당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가 그런 삶을 향하고 있었고, 그것이 1인분의 몫을 하는 삶이었고, 나는 조바심이 났다.


재작년과 작년, 휴학을 하고 메타프로방스의 식당&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는 얼굴을 정말 많이 보았는데, 그리 친한 편도 아니었고 내 상황이 누군가에게 자랑할만한 것도 아니어서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중학생 때 꽤 친했고, 중간에 연락이 끊긴 것이 늘 아쉬웠던 친구여서 내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친구는 서울로 대학을 갔었지만, 졸업 후 다시 담양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전공은 살리지 않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공부를 잘하는 친구여서 금방 합격할 것 같았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무렵,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다. 담양에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학업, 그다음 단계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늘 알바몬, 알바천국, 군청 구인구직 게시판을 뒤져왔지만, 나는 이번엔 취직 사이트로 눈을 돌렸다.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상황이 된다면? 그래도 내가 계속 소설을 쓰고 싶을까? 나는 문학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n층에서 손절하지 못하고 계속 들고 있다가 거의 회수가 불가능해진 주식처럼. 어쩌면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기하는 일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지도 모른다. 난 글 쓰는 게 좋아. 문학이 좋아.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안정된 삶에서 문학을 찾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아르바이트만 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직활동이라는 스트레스와 직장생활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경험의 단계로 넘어가는 일에 대한 공포였을 수도 있겠다.



실낱같은 희망, 혁신도시


그래도, 이제는 해야만 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피크타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가게는 내 나이와 경력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듯했다. 중간에 취직을 해서 관둘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한참 지방 활성화를 위해 서울의 주요 공기업을 이전시키는 정책이 있었다. 담양에서 가장 가까운 혁신도시는 아마도 나주. 어쩌면 나주에는 광주보다 괜찮은 일자리가 많을지도 몰랐다. 담양에서 나주까지 출퇴근은 불가능하지만, 나주-광주 출퇴근은 생각보다 많았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디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나주의 한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유령도시가 되고, 사원들이 강제로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이 정책에 대해, 정말 많은 부정적인 통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정책의 덕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전공도 살렸고, 사회초년생으로서 급여도 만족하고, 같이 일하는 분들의 상냥함과 쾌적한 환경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업무가 재미있다!



비도시의 기업, 그리고 청년


사원증은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아무래도 부정적인 통계가 많기도 하고, 내가 무슨 정책이나 정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이냐 실패냐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는 일이고 과장하면 인생이 결정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것은 결국 기업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물론 모여 있는 게 기업들 입장에선 효율적이지만.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들이 비대면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겼기 때문에, 비도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앞으로를 좀 더 기대해봐도 좋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다.



- 4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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