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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17. 2022

'시민'을 위한 낙원으로써의 농촌

제 4 화


주말의 담양 중앙로


관방제림의 구름다리


주말엔 되도록 외출을 피하는 편이다. 내 의사가 그런 것이 아니라,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읍내'라고 할 수 있는 담양터미널 부근의 중앙로는 길이 정말 좁다. 오래전부터 그곳이 중앙로였던 탓이다. 터미널 이전 이야기는 여러번 거론되었지만, 인근 상인들의 반발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렇듯 좁은 차도, 인도에 반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중앙로는 주말이 되면 그 밀도가 더욱 높아진다. 관광지로 향하는 길은 여러 개가 있지만, 참 이상하게 모든 네비게이션은 꼭 중앙로를 통과하도록 지시하는지, 주말이면 중앙로는 북새통을 이룬다.



나의 주말 나들이


영산강 문화공원 봄맞이 포토존


모처럼 친구와 관광지를 돌기로 했다. 담양은 산책로가 정말 잘 마련되어 있다. 국수거리에서부터 영산강문화공원, 관방제림을 통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까지. 중간중간 죽녹원과 메타프로방스도 들릴 수 있지만 그렇게 돌면 하루종일 걸어도 못 다 걷는다.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풀냄새, 햇볕에 빛나는 영산강까지. 걷다보면 자연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야말로 힐링 가득한 산책로들. 하지만 주말에 이곳을 산책하는 데는 나름 큰 다짐이 필요하다. 주말이면 미어터지는 중앙로 못지 않은,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한 곳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좋은 곳


어린이 프로방스


영산강문화공원에는 봄을 맞아 담양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았고,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 관방제림의 바람은 사람의 밀도와 관계없이 여전히 선선하고, 영산강은 흐른다. 빼앗겼다는 표현을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 과격하다면, 다른 말로 정정한다. 내가 군민으로서 양보해야 하는 것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위한, 인프라의 부재다. 낙원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지을 수 없었던 일상의 편의를 위한 시설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담양은 원래 아무것도 없었고, 관광객들이나 몰리니까 이런 산책로라도 생기는 것이라고. 그러면 나는 되묻겠다. 그래서, 정작 담양 사람들은 쉬는 날에 얼마나 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가? 잘 가꾸어진 자연을 누리러 온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노동자가 되어 있진 않은가?


어디어디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가진 것만으로도 몇 년 사이에 큰 부자가 되지만, 그들을 위한 휴양지로 남아야 하는 어떤 땅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값이 오르지 않는다. 분명 비도시는 도시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사막에 사는 사람에게 모래가 아름다울까? 저 극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이 아름다울까? 물론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내 말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님을 뉘앙스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끼"에서 "리틀 포레스트"로, 농촌은 아직도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재정의될 뿐 어떤 주체성을 가지진 못 한다.


어렸을 땐, 별 대신 조명이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엄청 동경했던 것 같다. 그건 마치 파리에 환상을 품는 일본인들의 어떤 것과 같다. 아름다움은 단순히 미적인 것만 내포하지 않고, 또 미적인 기준에 의거하더라도 그것은 시대에 따라 주관적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담양이 좋고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가 도시와 비도시를 모두 경험해봤기 때문에 확실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요지는, 도시인들이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는 것처럼, 비도시인들도 상경의 낭만을 꿈꾼다. 출퇴근 길의 만원 지하철과, 바삐 걷는 사람들의 흐름에 속해 있다는 어떤 소속감과, 늦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과 만취한 사람들.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일상일 그 풍경이, 다른 누군가에겐 간절한 낭만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식민지


메타 프로방스


백인들은 일광욕을 참 좋아한다. 베트남 호이안의 안방비치에 방문했을 때, 한국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은(나를 포함) 예쁜 옷과 밀짚 모자를 걸치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사진을 찍기 바쁜데, 백인들은 정말 해와 모래를 즐기려는 사람들처럼 오일을 바르고 드러 누워있다. 그러면 베트남 사람들은 썬베드와 파라솔을 대여해주고 망고주스를 만들고 보따리 속 소품을 내밀며 장사를 한다.


나는 가끔 담양이, 호이안 여행에서 보았던 그 해변의 풍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잘 보전되고 가꾸어진 이 자연은 담양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것이 아니다. 도시의 건설을 위해 "빼앗긴" 자연을 여행으로 누리도록 만들어진 시민의 것이다. 비도시인들의 일자리를 저당잡아 유지되는, 그들의 낙원이다.


담양에서 일찍이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를 시작한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대부분 부자가 되었다. 담양읍의 어지간한 상가를 다 가지고 있는 A돼지갈비를 운영하는 집이나, 얼마짜리 집을 지었다는 국수거리의 B국수집 이야기들. 그러면 이 직업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한 지역의 특정 분야의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고 권력층과도 어느 정도 결탁해 있는 이 지위. 하지만 그들의 자녀는 대부분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없다.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는 가장 '못난'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물려질 뿐.


남겨진다, 머무른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의 연못


학창시절에 친구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막연히 꾸었던 꿈은 수능대박이나 대학합격이 아니었다. 우리의 꿈은 탈비도시, 즉 도시 입성이었다. 서울로, 아니면 수도권으로, 그것도 안 된다면 최소한 광주로. 20살과 도시는 밀접했고, 성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꼭 도시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화려한 밤거리와 클럽, 죽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거리를 배회하며 깔깔거리는 갓 성인의 유흥.


도시는 항상 성공의 반증이었고, 누구든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떠나지 못한 사람', '남겨진 사람' 같은 건 실패한 청년이라는 낙인이었다. 20살에 대학 입시라는 필터로 우리는 한 번 걸러진다. 그러면 비도시엔 '모자라'거나 '부족한' 사람이 남겨진다. 우리를 끝없이 걸러내는 필터는 삶의 구간마다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가 꼭 그것을 남겨진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까?


간신히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 시장이라는 필터를 통과하지 못한 누군가가 또 되돌아온다. 누군가는 부러 떠나온다. 남겨진 이들과 돌아온, 떠나온 이들은 생각보다 스스로 살 길을 잘 찾아간다. 그것이 공무원 시험을 보는 일이든, 가게를 차리는 일이든, 부족한 공부를 더 하는 일이든 간에, 비도시에서도 잘 살아간다. 때때로 관광지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겸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이어진다.그래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는 것이다. 이곳은 누군가를 위한 낙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진행되는 일상이다.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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