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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21. 2022

부지런한 백수의 '여름이었다.'

제 5 화


'BMW' 대신 'BMW 콜라보 수동 킥보드'



내가 사는 동네는 행정구역상 담양읍이지만, 면단위로 넘어가기 직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읍'이라서 사실상 면에 가깝다. 그도 그럴게, 배달어플로 치킨이라도 주문하려고 하면 담양읍 기준의 통상 배달비가 적용되지 않고 m당 일정 금액이 붙은 거리별 배달비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담양터미널이 위치한 '진짜' 읍내까지, 내 걸음속도 기준으로 40분이 걸린다. 버스는 약 1시간 20분 간격으로 한 대씩 지나가고 그마저도 마을 정류장을 지나치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버스시간 알림 전광판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렇기에 담양은 자차 없인 돌아다니기가 불편한 지역이다. 시골이지만 읍내가 좁은 편은 아닌 데다가 각종 공공기관은 마을마다 하나씩 배정인지 어쩌는지, 다들 떨어져 있다. 하지만 꼬박꼬박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내 입장에서, 그런 이유로 덥석 차를 구입하기에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내 선택은 수동 킥보드였다. 처음 수동 킥보드를 구입한다고 했을 땐 백이면 백, 모두가 나를 말렸다. 차라리 자전거는 어때? 돈을 조금 더 보태서 전동 킥보드를 사는 건 어때? 분명히 사면 일주일 타고 안 탈 거야.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요점이 무엇인지 알았다. 애들이나 타는 수동 킥보드. 자전거보다 효율이 좋지 않고, 전동 킥보드라는 더 나은 대안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수동 킥보드를 선택했고 반년이 넘도록 잘 타고 있다.


내가 수동 킥보드를 고른 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에잉? 자전거를? 싶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자전거 못 타는 친구들 주위에 많다. 물론 탈 수야 있지만, 능숙하지 못하다는 뜻이고 자전거 안장 특유의 딱딱함에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 중심을 잡는 것도 어렵고 내가 빠르게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주 타고 다니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둘째, 수동 킥보드는 안전기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도로교통법상 탈 것에 포함되어, 면허와 헬멧 등이 필요한 전동 킥보드와 달리, 수동 킥보드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읍내를 돌아다니며 휘뚜루마뚜루 타고 싶은데 언제 헬멧을 썼다 벗었다 할까? 요즘 많이 서비스되고 있는, 길에 널린 전동 킥보드도 장비 없이 타는 사람이 많다. 따지고 보면 아주 위험한데. 그래서 비교적 느리고, 안전한 수동 킥보드를 고른 것이다. 셋째는 그냥! 내가 킥보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걸 타던 초등학생 시절에도, 나는 킥보드를 좋아했다. 자전거나 스케이트 같은 것에 잼병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맨 땅에 두 발을 완전히 딛고 서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컸던 것 같다. 중심을 잘 못 잡고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킥보드를 좋아했다. 걷는 것보다 빠르고, 완만한 내리막길에선 더 빠르고, 원하면 언제든 내 발을 땅에 디딜 수 있으니까.


이왕 사는 거 괜찮은 걸로 사서 오래 타고 싶었다. 내가 살면서 bmw를 탈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에 킥보드라도 bmw를 타보자 싶어 콜라보 제품으로 구입했다. 생각보다 몸무게 하중이 낮아서 사실 좀 걱정이긴 하다. 시골길이 고르지 못한 만큼 승차감(?)이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지만, 선캡과 팔토시로 모든 햇빛을 차단하고 킥보드를 타면 아주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어린이가 아니면 거의 타지 않는 수동 킥보드를 타고 읍내를 누비는 일상. 가끔 중고등학생들이 빤히 쳐다보면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뭐 어때 홍대병 말기 환자의 기분으로 관심을 즐기면 된다. 한 번씩 발로 땅을 차주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대학원생이라는 이름의 백수




집에 있으면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기 때문에 가끔 카페에 나와준다. (예상할 수 있듯, 킥보드와 함께하는 외출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카페에 가는 게 돈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생각보다 멘탈이 리프레시 되는 기분이 들어 종종 방문한다. 스케줄러를 쓰거나, 가계부를 쓰거나, 간단히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 나를 강제하는 것이 없는 삶이기 때문에 나태해진 나를 다스려줄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이란 뭘까? 엄마는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학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 때에도, 공공기관에서 어떤 혜택을 받을 때에도 학생이란 이름으로 얻을 수 있는 특혜에서 모두 제외된다. 대학원생은 학생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초년생도 아니다.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급여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럼 뭘까? 결국 백수라는 정의밖에 남지 않는다.


가끔 학교를 가고 과제를 한다. 모아놓은 아르바이트비로 재테크도 한다.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정해놓은 여러 가지 일도 한다. 이 정도면 그래도 부지런한 백수가 아닐까? 뭔가 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열심히 살지 않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싶다. 대학원생이라는 이름의, 아주 부지런한 백수가 되고 싶다.



마크라메 드림캐쳐, 만들어볼까?




담양은 아무래도 문화예술 관련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도서관이나 군에서 운영하는 강연이나 행사가 있으면 되도록 참여하는 편이다. 그동안 코로나로 많이 없었는데, 슬슬 하나 둘 다시 생기고 있다. 담양군일자리통합지원센터는 이력서를 제출해두고, 여러 가지 원데이 클래스를 체험할 수 있다. 물론 자주 열리진 않고 담양군 공식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에 공지가 뜨기 때문에 구독하고 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 신청하면 된다. 클래스에 와 보니 주부들이 정말 많았다.


마크라메는 사실 몇 년 전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릴리쿰과 협업하여 진행한 '빛을 엮는 기술'이라는 클래스에서 체험을 해 본 적이 있다. 다른 작품들은 할만했는데, 마크라메만큼은 정말 어려워서 중간에 탈주하고 싶었던 생각이 난다. 오래되어 매듭법도 기억이 잘 안 나서, 이번 담양 원데이 클래스 때 마크라메를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었다. 뜨개질을 좀 하시는 분들에게도 생소한 마크라메는 기본적인 손재주를 많이 타는 공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디 가면 나름 '금손'에 속하는 편인데도, 마크라메는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지, 많은 분들이 중간에 탈주 닌자가 되셨다는.....



아무튼, 나 또한 중간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요즘 자잘한 실패를 연속으로 경험하는 바람에 많이 위축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고 신청한 클래스까지 마치지 못하고 집에 가면 더 우울할 것 같아서 끝까지 체험을 했다. 남아 있는 분들은 모두 손재주가 좋아서 나는 마지막까지 완성을 못했지만, 후반에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결국 완성을 했다. 모양은 우그러지기도 하고 들쭉날쭉이라 예쁘진 않지만, 과거에 어려워했던 경험에 새로운 기억을 덧씌워준 값진 체험이었다. 사소한 성공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주가 넘도록 지속되었던 불안이 이 날을 기점으로 약간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내 스트레스의 원인(조만간 한 편의 에세이로 다룰 예정이다.)이 아직 그대로이기 때문에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로 바뀌기 마련이다. 실패도 습관이고 성공도 습관이다.


이상으로 여기까지가 부지런한 백수의, 여름이었다.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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