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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25. 2022

누구의 딸도 아닌, 김도예

제 7 화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나'라는 사람은 이름으로 정의하지만, 이름으로만 정의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과 딸, 친구, 스승과 제자처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아가 여러 개 있다.  어떤 자아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와 같은 사춘기다운 생각을, 학창 시절에는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은 주로 엄마 모임에 따라가서, 엄마의 토템처럼 가만히 앉아서, 내 발언권 같은 건 하나도 갖지 못한, 그런 '나'이지 않나 싶다. 엄마는 늘 나에게 학생의 신분을 가진 딸로서 '고분고분함'의 중요성을 설파하곤 했다. 늘 비슷하게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특별한 사고를 치지 않았고 학교와 학원이 끝나면 이탈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담양은 학교-학원-집 외에 이탈할 만한 놀이공간이 없기도 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도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인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한참 서울살이의 외로움과 단절을 말하는 예술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가 있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서울이란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 고독을 동경할 수밖에 없던 내 어린 시절이 있다. 모두가 나를 모르는 곳. 나를 알려면 나에게 직접 나이도, 이름도, 고향도, 물어야만 정보가 공개되는 그런 곳. '정'으로 포장된 오지랖과 누구네 딸로 정의된 '나'라는 존재가 지겹던 농촌 토박이 사춘기 학생에겐, 그 외로움과 단절이라는 감수성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방실이 - 서울탱고


무조건 반사


2013년도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담양에 사는 나는 그리 많은 자아를 가질 순 없었다. 맺을 수 있는 관계가 협소하고 한정적이었다는 뜻이다. 굳이 한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그 집 숟가락 개수에 일 년 제사 횟수까지도 낱낱이 꿰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사는 일은, 생각보다 더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삶이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조차도 그 소리가 담을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싸움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농촌 학교의 특성상 초등학교 동창-중학교 동창-고등학교 동창으로 이어지는 루트. 최대 4반까지 밖에 없는 탓에 반이 바뀌어도 친구는 늘 보던 얼굴이고, 서로의 부모 또한 담양 사람으로 어지간하면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한 번의 실수가 낙인처럼 남아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세대를 거쳐 내려온다면?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성격이 아닌데,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것이 내 성격인 줄 알았다. 담양을 떠나 대학에 들어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직을 하면서 나는 생각보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담양살이의 후유증(?)인지 그때와 비슷한 환경 속에 놓이면 나는 또다시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 된다. 무릎을 탁 때리면 나도 모르게 발을 앞으로 쭉 뻗게 되는 것처럼. 이건 무조건 반사 같은 것이다. 이미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과정은 모두 잊히고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내가 되길 바라고


2015년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함께


대체로 나는 엄마의 얌전한 딸이었다. 얌전하기만 한 사람이 없고 발랄하기만 한 사람이 없듯이 나 또한 당시에도 외향적이고 쾌활한 모습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두가 얌전한 사람으로 나를 알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쾌활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른들은 얌전하고 성실하지만 싹싹하고 재롱을 잘 부리는 아이를 참 좋아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모순된 어린이상인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 모임에서 노래방이라도 따라가면 얌전하고 성실한 딸에서 한 순간에 싹싹하고 외향적인 딸이 되어야 하는 나는 그 양끝의 간극이 버티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늘 '김도예'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른 학창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어딜 가서 나쁜 짓이라도 하면? 그리고 누군가 그걸 목격한다면? 그건 3일 안에 엄마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농촌은 그런 곳이었다. 목욕탕과 마을회관과 미용실 같은 곳을 거점으로 삼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계이기도 했다. 어딘가에 반드시 회자되면서 그것이 구설수는 아니어야 하는, 마치 세대를 거쳐 롱런하는 연예인 같이 철저한 사생활 관리가 필요한 삶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지나왔을지, 나는 이제야 조금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열일곱의 처세술


2011년 A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 체육대회


훗날 3개월가량, 고양시로 학교를 다니며 파주에서 하숙한 경험이 있다. 열일곱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때의 내가 얼마나 설렜을지 상상할 수 있을까? 무려 5분 거리에 롯데리아가 있었다. 버스로 20분만 가면 방송국이 있었다. 모든 종류의 화장품 로드샵이 다 있었고 내가 가고 싶을 때면 언제든, 쉽게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아무도 나를 몰랐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그대로 '나'가 되었다. 오롯이 내 행동으로만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기엔 어렸던 것 같다. 한마디로 처세술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 삶은, '나의 처세'보다, '어느 동네 누군가의 딸'이, '나'라는 사람을 판단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던 것이다.


그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과 고향에 있는 친구들의 사회성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일에 대해서 도시 아이들은 빠르게 습득하고 있던 것이다. 농촌에서는 비단 재산만 대물림 되지 않는다. 대단한 성공 같은 건 아니다. 하지만 흠집 없는 명예, 순결한 도덕성, 부모님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많은 사람들. 이것이 부모님이 물려주시는 가장 큰 재산 중 하나가 된다. 물론 고향에 뿌리박고 살 생각이 없다면 한낱 쓸모없는 명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담양에 살 거라면, 굳이 내가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큰 노력 없이,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재산이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들


2016년도 대학 동기들과 서울 여행


농촌엔 정이 가득하고, 도시는 인간성이 사라져 가고. 이것은 누가 만든 이분법일까? 도시라고 꼭 부도덕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비도시도 그리 순박하지만은 않다. '정'이라는 단어 아래 있는 농촌의 폐쇄적인 네트워크가 외부인에게는 비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독이 된다. 독은 방법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 지역의 출신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에겐 다소 불공정한 '혜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끝물에서, 계급은 신분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비도시의 청년 또한, 쉽게 얻을 수 있는 신분을 버리고 막연히 도시의 삶을 꿈꾸기는 어렵다. 막연한 성공을 쫓아, 남들을 따라 서울을 향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 세대는 나에게 가장 효율적인 일을 찾고 불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대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너무 자명하다.


'김도예'보다 '누구의 딸'이 더 효용성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서울의 어떤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월 200을 받아, 세금과 월세와 학자금 대출로 이리저리 내 삶과 시간을 빼앗기고 근근이 살아가는 삶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고향에 부모가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혀 있다면 그것이 다소 부도덕하더라도 이용해서, 무기계약 행정직 자리라도 하나 얻는 게 나은 것이다. 혹시 이것이 그렇게나 불편하고 불온해 보인다면, 수도권 집 값이나 좀 내려주고 지적하시길. 누구나 한때는 행복한 서울살이를 꿈꾸던 시절이 없지 않았다.


* 제목은 홍상수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인용하였습니다.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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