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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예 Oct 30. 2022

남의 나라, 코로나

제 8 화


뉴 노멀, 뉴 모럴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일상에 많은 변화가 시작되던 2020년에, 나는 메타프로방스의 한 돈까스 집, 그리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팬데믹과 코로나 이후의 뉴 노멀 같은 단어가 포털사이트를 장식했다. 코로나가 기술을 몇십 년 앞당겼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빠르게 ‘새로운 표준’에 적응해나갔다. 좀 더 철저한 방역·위생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많은 규칙이 생겼으며 규칙은 곧 공공 도덕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새로운 기준을 중심으로 많은 것들이 쉽게 분열되었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멸. 낱낱 하게 공개되는 누군가의 동선을 보며 우리는 타인을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인 더 담양



서울과는 아주 거리가 먼, 작은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코로나 초창기에 거의 체감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쓰라고 하니까 마스크를 쓰고, 소독을 하라니까 손 소독도 하지만, 내 주변에 확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연일 울리는 핸드폰의 재난 문자 경보음도 남의 일 같았다. 내 일상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카페 오픈 준비를 하고, 돈까스 집에서 서빙 업무를 보고, 또 카페 손님을 맞았다. 관광지 특성상 봄과 가을, 그리고 어린이날이나 명절에 손님이 몰리는 곳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백신 패스에 인원 제한까지. 여러 가지 제한이 걸릴 때에도 그런 것은 모두 남의 일인 것 마냥, 프로방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마 당시 담양은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으니, 코로나 청정구역 같은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났다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에도 조금 과감해진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관광지 서비스 업종의 노동자로서 언제든 코로나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수시로 손을 씻었고 마스크를 갈아 끼웠다. 확진자 손님 테이블에 서빙을 하게 되어 pcr 검사를 받게 되는 것도 싫었다. 수기 명부를 쓰던 시절에는, 손님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볼 수 있었는데. 가까운 광주전남 지역을 차치하고, 서울 경기 등의 수도권에서부터 경상도 강원도 등등 전국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 시국에 나와 내 친구들은 서로 얼굴도 못 보고 지내고 있는데, 프로방스에서 코로나는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 같았다.



비대면의 세계로


텅 빈 강의실


많은 일상들이 비대면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학교 수업과 회사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대면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비대면이 불가능한 일은 속속들이 취소되었다. 축제와 행사 없는 2년 반가량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유용하게 즐기던 사람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겠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애초에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 모임을 갖고, 여행을 자주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내 일상은 큰 틀에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침 코로나 사태가 일어난 시점에 대학원을 휴학까지 하면서 더더욱 나에게는 낯선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비대면으로 전환됨에 따라 나도 그들과 함께 활동하려면 비대면 모임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것이 낯설고 불편했지만, 이제는 편의점에서 계산을 할 때 스스로 카드기에 카드를 꽂고 다시 가져오는 것 정돈 아주 익숙할 정도로 비대면 노터치에 적응하고 있다. 대부분 코로나와 관련한 현상에 대해선 부정적인 부분에 집중을 하지만, 어쩌면 나는 코로나의 수혜를 받은 사람 중의 한 명일지도 모른다.



사과와 애벌레


열심히 스터디를 하던 때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어쩌면 조금 더 편리해졌고 이전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물리적 거리의 한계로 참여할 생각조차 못 했던 강연이나 스터디를 할 수 있었다. 약속을 잡을 땐 시간과 공간을 정해야 했고 그 좌표가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가 만나야 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았다. 약속은 시간만 결정하면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우리에겐 시간이라는 좌표만 유효했고 정말로 격변하는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좋은 기회가 닿아 M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학우들과 스터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터디가 기본적으로 줌을 활용한 비대면 활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이라면 나는 그 학우들을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텐데, 이건 나에게 있어서 정말 좋은 기회였다. 모두가 어색한 듯 익숙하게 ‘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돈과 시간을 전처럼 많이 들이지 않아도 수도권 사람들이 누리던 문화적 인프라를, 조금은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웜홀을 설명하기 위해 종이와 펜을 사용한다. 종이에 직선을 그리고 우리는 이 직선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지만, 종이를 구부리고 연필로 종이를 찢으면서 공간을 통과한다. 개미는 사과 꼭지에서 반대쪽 꼭지까지를 기어가야 하지만, 사과를 파먹는 애벌레는 사과 속을 통과하여, 개미보다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하여 꼭지에서 꼭지까지 도달한다. 비대면 모임이 공간의 왜곡으로 인한 거리 단축은 아니지만, 나는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에게 거리는 무의미해졌다는 기분. 지역에서도 뭔갈 할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이다. 간단한 회의나 모임 정도는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시민들과 동등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큰 혜택 같았다. 이것이 지역민들을 배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고, 사건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겐 아주 부정적이고 또 누군가에겐 실낱같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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