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우화-학부모회 위원들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희망하기 위하여>

by 쌍둥이 아빠

학부모회는 교장의 전횡을 막고 학교 측에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대리자들의 모임이었다.


학부모회 위원들은 4년에 한 번씩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뽑았다. 학생들이 사는 마을별로 위원들을 한 명씩 뽑을 수 있으니 꽤 여러 사람이 학부모회의 위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학부모회 위원 후보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추천할 수 없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학교 사정에 대해 알 리 없는 먼 마을의 촌장들이 위원 후보를 결정하였다.


먼 마을 촌장들은 간혹 그 학교 학부모가 아닌 사람을 위원으로 추천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먼 마을 촌장들은 무척 훌륭한 사람이니 그냥 추천을 받으라는 식이었다. 낯선 후보들은 당당히, 학교 주변에 서서 인사를 하곤 했다.


학생들은 후보가 좋든 싫든, 혹은 후보를 알건 모르건 어쨌든 투표해야만 했다. 투표 전 후보자들은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으며, 학부모회의 위원으로 자신을 뽑아달라 간곡히 부탁했다.

그들은 본인이 이 학교 어느 교사의 사촌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는 학교 운동장에 실내 체육관과 테마공원과, 대규모 리조트와 골프장까지 3개월 안에 지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투표를 하는 날이 되자, 학생들 대부분은 밀린 공부를 하느라 투표를 하지 못했고, 일부는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었다며 투표하지 않았다. 간혹 투표장에 간 학생 중에는 하라는 투표는 안하고, 투표용지로 종이비행기를 만들다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학생수나 학교 규모에 비해 학부모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인원이 많다 보니, 어떤 위원은 표를 셀 필요가 없을 만큼 적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위원으로 당선되었다. 사실 실내화 색이 같은 학생들의 모임 총무도 그보다는 많은 지지를 받은 사람이었다.


결국, 학부모회는 구성되었고, 선출된 위원들의 면면을 보아하니 어찌된 일인지 소란스런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 있었다. 간혹 본인들끼리도 어떻게 저런 사람이 위원이 되었냐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학부모회를 담당하는 행정직원은 위원들의 전문성을 살려 상임분과를 구성해야 했는데, 위원들 모두가 한결같이 특기가 없어, 이렇게 구성하나 저렇게 구성하나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행정직원이 대강 구성한 상임분과에 대해 위원들은 모두 만족했고, 행정직원은 일이 쉽게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투표가 끝나자 본인들이 직접 선출한 학부모회에 대해 기대도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임기가 시작되자 학부모회 위원들은 각자 작은 배를 타고 일제히 바다에 나가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배 위의 싸움이 격렬해질 때 즈음에는 일제히 안전한 육지로 돌아와 만찬을 즐겼다. 4년간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사이 교장은 교사들의 담당 교과를 마음대로 바꾸었고, 학생들은 갑자기 바뀐 급식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으며, 급식실의 어느 조리원이 학교 중요 사항에 대해 결정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부모회를 통해 학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대신 학교를 떠나거나 학업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의 학생들은 교장이나 학부모회의 위원이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얼마 후 학부모회 의장이 다음 교장이 될 것이라는 소문과, 교사들 몇몇이 학부모회 의장을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장은 모든 업무를 뒤로 하고 학부모회 의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실 그들은 평소 호형호제하던 사이였다.


학교는 점점 더 어수선해졌다. 교장과 학부모회 의장 간 싸움이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무렵, 먼 마을 촌장들은 낯선 사람들을 학교 주변에 보내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게 했다. 어느새 새로운 학부모회를 준비하는 계절에 이르러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애초에 학부모회 위원 후보를 먼 마을 촌장들이 결정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교장도, 학부모회의 의장과 다른 위원들도, 또 몇몇의 교사와 학생들까지도 먼 마을 촌장들과 저녁 식사 약속을 잡기 위해 무척 분주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새로운 학부모회가 구성되었을 무렵 당선된 위원들은, 몇몇 학생들의 비판적 의견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본인들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겠다면 “학부모회”라는 명칭을 “학부모 학당”으로 바꾸고 BI인지 CI인지도 새로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교정에는 따스한 햇살 아래 봉숭아 꽃도 활짝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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