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우화-신(神)의 재림

<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희망없는 엘리트>

by 쌍둥이 아빠

학교 어귀에 어느날 신(神)이라 불리우는 사람이 나타났다. 비록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지금은 신의 업무를 잠깐 쉬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은 격이 다른 존재라 말했다.


학교의 교장은 그의 경력을 나열하며 그가 신이 맞다고 말했다. 교장은 그가 본인의 대학 후배이며, 사실 후배 중에는 몇몇의 신이 더 있다는 말도 함께했다. 학부모회의 의장도 그가 아주 크고 높은 곳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해온 사람이라 말하며, 본인의 고향 후배의 친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교장과 의장은 신이라 불리우는 사람에게 무언가 학교를 위한 일을 맡기자는 제안을 했다. 교사들과 학생들은 신이라 불리우는 사람이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주 크고 높은 곳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결국, 신이라 불리우는 사람은“자문의 신”이라는 낯선 직책을 맡게 되었다. “자문의 신”은 주로 본인이 좋은 대학을 나왔으며, 아주 크고 높은 곳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해온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일에 매진했다. 또, 지인과 가족 중에 본인에 버금가는 신들도 많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교장도 자신이 아는 유능한 신중에 한분이라고 했다.


어떤 문제든 본인과 본인의 지인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 말은 들은 사람도 있고, 못 들은 사람도 있었다.


“자문의 신”의 활약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의 말은 전지전능한 것이었다. 그의 진단과 처방은 늘 간결한 것이었고,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것이었다.


학교 운동장을 좀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는 말했다. “학교 운동장은 학생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합니다.” 교사들은 어리둥절했지만, 그가 무언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 믿었다.


몇 일이 지나자 “자문의 신”은 무척 화가 난 표정으로 다시 교사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내가 학교 운동장이 학생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는 거죠?”그의 말은 전지전능한 것이었다. 앉은뱅이여 일어서라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것과 같았다. 교장과 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의 교과 편성을 새로이 마련해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도 그는 말했다.“교과 편성은 창의적인 교육을 목표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교장과 의장도 어리둥절했지만, 신에 대한 불신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져버리는 일이라 생각하며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 무렵 학생들 사이에는“바다여 갈라져라!”라고 외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학부모회의 몇몇 위원들이 “자문의신”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자문의 신”은 식사 자리에서 조차 자신이 아주 크고 높은 곳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해온 사람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석한 어떤 위원과 사소한 언쟁이 있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좋은 대학 출신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도무지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아주 중요하고 큰 행사가 열리던 날 교장은 “자문의 신”에게 아주아주 높고 중요한 사람의 학교 안내를 부탁했다. 교장은 약간 겸연쩍어 하며 실내화 색이 같은 학생들의 모임 총무에게 은밀히 “자문의 신”을 좀 도우라 말했다.


실내화 색이 같은 학생들의 모임 총무는“자문의 신”이 학교 정문에서 교무실까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주아주 높고 중요한 사람 대신에 그의 비서에게 먼저 가서 인사를 하며 본인이 좋은 대학 출신임을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놀랐다.


아주아주 높고 중요한 사람은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교장에게 항의하였으나, 교장이 그가 좋은 대학 출신임을 말하자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교장은“자문의 신”에게 한동안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어쩔 수 없이 “자문의 신”에게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와 잠시 차를 한잔 마시게 한 일이 있었다. 그날 “자문의 신”은 줄 풀린 강아지처럼 좋은 대학과 아주 높고 중요한 일에 대해 계속 계속 계속 말했다. 찾아온 용건을 잃은 학부모는 심하게 혀를 차며 돌아갔고, “자문의 신”은 오랜만에 의미 있는 일을 해서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장은 1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그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주며 학교가 너무 작아 당신처럼 전지전능한 신을 품기 어려울 것같다고 말했다.


“자문의 신”은 학교가 본인을 담을 수 없는 그릇이라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래도 교장 선생님과 같은 격이 다른 분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거액의 위로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유유히 학교를 떠났다.


그는 다시 신의 업무를 잠깐 쉬고 있는, 본질적으로 격이 다른 사람으로 돌아갔다. 떠나던 그는 정문 앞을 지키던 은행나무 아래 잠시 멈춰서서 생각했다. 지난해에는 동쪽 마을의 학교에서 자문의 신을 했으니, 이제 남쪽 마을 학교의 교장을 찾아가면 되겠다고 결심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또다른 신이 학교에 찾아왔다. 그리고 먼저 다녀간 신은 동쪽 마을 학교에서 물의를 빚어 해고된 신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본인은 잠시 신의 업무를 쉬고 있지만, 교장의 부탁이라면 잠깐 정도는 학교를 위해 일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 마을 학교에도, 그 이웃 마을 학교에도, 또 그 이웃 마을 학교에도 신의 재림은 계속되었다. 그 많은 신들은 학생들을 위한다며 전지전능한 말들을 쏟아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신들의 말처럼 좋아지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노을진 학교 마당에 빈 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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