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희망하기 위하여>
어느 작은 마을에 4년마다 교장이 바뀌는 학교가 있었다. 새로운 교장은 늘 새로운 교과서와 규칙을 들고 왔다. 행정실의 직원들은 새로운 규칙에 따라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잎을 빨간색으로, 혹은 파란색으로 바꾸느라 바빠지기도 했다.
첫 해에는 지난 교장의 계획을 검토하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 치열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계획들은 백지화되는 일이 많았다. 또한 새로운 교장은 교사들의 배치에도 무척 공을 들였다. 혁신적인 교육을 위해 수학 교사에게 미술 과목을 배정하기도 했다. 미술 교사는 수학 교사가 되었지만 주로 교장의 점심을 챙기는 일에 매진하였다. 다행히 자리를 이동하지 않은 국어 교사는 주 1회 해오던 학생들과의 야외 수업 일정을 조용히 취소했다. 교장은 학생들을 만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어느날에는 온종일 학생들을 만나느라 중요한 결재를 놓친 적도 있었다. 또 어느 주에는 학생들이 교장실에 불려가느라 온종일 수업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둘째 해에는 미술 교사였던 수학 교사가 점심시간마다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제안을 쏟아냈다. 아니, 교장의 지시였는지 수학 교사의 제안이었는지 사실 정확하지 않았다. 어쨌든 학생들의 급식환경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급식 체계를 적용하기 위해 식당의 조리 환경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다. 영양사와 조리원들도 대거 교체되었고 식재료의 공급 체계도 새로이 마련되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적응하기 시작했다. 둘째 해가 지날 무렵 학생들의 영양상태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급식환경의 혁신에 따라 장기적으로 학생들의 교우 관계 개선은 물론 교내 기자재의 활용도 또한 크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교사들은 비문으로 가득한 보고서를 짐짓 모른척했다. 학생들은 그런 보고서가 있는지도 몰랐다. 교장은 수학 교사였던 미술 교사의 수업 방식을 여전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셋째 해에는 학생 조직 개편이 화제가 되었다. 주로 교장이 비밀스런 역할을 부여한 학생들이 다양한 학생 조직의 리더가 되었다. 아주 많은 학생조직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실내화 색이 같은 학생들의 모임도 만들어졌다. 크고 작은 학생 조직의 리더가 된 학생들은 때로 교장과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무렵 미술 교사였던 수학 교사는 교감으로 승진했고 더 이상 수학 수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 수학 교사였던 미술 교사는 다시 수학 교사가 되었지만,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원점에서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되었다. 국어 교사에게는 학생들과의 야외 수업을 추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3년 만에 재개된 야외 수업에서 교장은“우리 학교가 변화의 주체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학생들은 이전 교장 때와 같아졌는데, 무엇이 변화되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넷째 해, 학생들은 교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미술 수업은 왜 하지 않는지, 통학버스는 왜 이리 불편한지, 급식실에 물이 새는 것은 언제 해결할 것인지 모이는 자리마다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교장이 학생들의 최근 언행에 대해 급식실의 한 조리원과 공공연히 협의한 일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교감과 학생 조직의 리더들 조차 이 일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학 교사는 여전히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원점에서 끌어올리는 중이었고, 국어 교사는 새로이 구상하던 어린이 창작교실 계획안을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오랫동안 공석이된 미술 교사 자리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연말이 되자 다음 교장이 누가 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그간 크게 눈에 띄이지 않던 보건 교사가 새로 물망에 오른 교장 후보를 만나더라는 소문도 함께 돌았다.
네 해마다 오는 교장은 때로 지역에서 크게 자산을 형성한 사업가 이기도 했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온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때로는 여기저기 비슷한 학교를 옮겨 다니는 직업 교장들도 있었고, 또 때로는 언론인 출신의 교장도 있었다. 이번 물망에 오른 교장 후보는 학부모회의 의장 출신이었다.
4년의 시간은 늘 짧았다. 그 무엇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학생들은 교장이 바뀌는 일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도 했다. 교사들 또한 때로는 수학교사로, 때로는 미술교사나 국어교사로 몸과 마음을 옮기는 일에 익숙해졌다. 늘 그렇듯 교감이 되기 위해 애쓰는 교사들도 어디선가 나타났다.
네 해마다 오는 교장들은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마을 아이들은 한 번도 완성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똑같은 4년이 무한히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