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다, 부레 없는 우리 - 법의 마음>
공무원들은 답답하다. 무능하다.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하려 했지만, 대부분의 설명들은 시작도 전에 변명으로 간주 되기 일쑤였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체념의 말은 가장 고통스러운 말이었다. 개도 풀도 영혼이 있는데. 사람 누구에게나 영혼이 있는데. 공무원에게도 영혼은 있다. 다만, 불행하게도 공무원은 영혼으로는 일할 수 없고, 영혼으로 일해서도 안되는 직업이었다. 오랜시간 동안.
인간의 가치관과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신념이 작동하는 순간 행정은 형평과 일관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법과 제도라는 언행의 기준을 만들어 공공행정을 통제하고 형평과 일관을 유지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와 신념의 불완전을 해소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판단의 경직과 집행의 편협함을 키웠고, 더욱이 선언적 수준의 법과 제도로는 사회가 당면한 여러 현상 또는 개개인의 복잡한 사정까지 일일이 다룰 수도 없었을 것이다. 창조적인 행정, 수요에 부합하는 행정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마 아주 오래된 일일 것이다. 어쩌면 선사시대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예산이 없어서 어렵습니다”라는 그 흔한 예산 타령도 실은 진짜 돈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법과 절차에 따라 집행이 허락된 예산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혹은 규정된 절차에 따라 집행하자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본인이 본인임이 분명함에도 법이 정한 방식의 신원 확인을 하지 못하면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신뢰로 처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반드시 법과 제도가 정한 절차와 범위내에서 일해야만 했다.
더욱이, 아무리 시급한 사안이라도, 심지어 그것이 생사를 다투는 재난과 재해라 할지라도 법과 제도가 규정한 절차에 반하거나 대항하여 무언가를 실행한다는 것은, 실무행정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영혼 없는 공직사회를 혁신하겠다 약속한다. 곧 지방선거가 시작되면 또다시 영혼없는 공직사회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열변도 토해질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법과 제도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다. 수천만개의 법과 제도를 만든다 해도 인간 모두의 일을 모두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은 법과 제도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곳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법과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 유연히 대응할 수 있고, 특별한 절차를 요구하지 않으며, 문제의 주변 환경까지 신속히 고려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장치는 무엇일까? 멀지 않은 시기에, 사실은 조급히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서로를 더 미워하기 전에, 아직 신뢰가 남아 있을 때,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의 집합체인 공동체에 대해, 더 나아질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다만, 법과 제도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우리 사회의 가장 위험한 절벽 끝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위험을 알리는 등불을 켜고 여기까지 오지 말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주인은 늘 당신입니다
나는 그저 당신이 이 절벽에 다가오지 않도록
반듯한 모습으로 지키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자주, 당신은 멀리 있는 나를 탓하고 원망합니다
당신을 돕지 않는 나를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때로 당신은 주인이 아닌 자에게 애원하여
제게 불편하고 긴 다리 또는
어울리지 않는 큰 눈을 달아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내 몸을 산산이 흩어 놓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닙니다.
괴물처럼 변한 나는 괴롭습니다.
나는 오히려 당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주인이 아닌 자로 인해 이미 저의 생명은 다해갑니다
그러니, 주인이여, 이제 당신은
당신을 닮은 이들을 만나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는 진정 서로를 지켜야만 합니다.
꼭 그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제가, 오랫동안 당신께 하고픈 말이었습니다
주인이여, 내내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