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치기

三難 III

[부제 : 3막 15장]

by 그믐

세가지 어려움에 대한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첫째는 정의내리지 않는 일에 대한 어려움이었고, 둘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솔직해지는 일에 대한 고통이다.


'솔직' 이라는 상태나, 성향, 마음가짐이나 순간이 어렵다고 느꼈던 시발점은 좋아하는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답답함이었다.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나는 나때문에 그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감정도 존재도 기억 속으로 생매장을 시켜오던 와중에, 새로운 문제와 봉착하며 세가지 어려움의 마지막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사개월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고민 중 하나는 내가 살아가는 드라마에 대한 점검이었다.

작년 10월부터의 분량은 3막 15장 정도의 부분이었는데,

나는 미처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일들을 마주했고 아팠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사람을 잘 만나지 않아야했다.

휴학 첫 달은, 열심히 살지 않는 순간에만 부릴 수 있는 열심히 살아온 날들에 대한 교만으로 바빴다.

둘째 달은, 적응에 대한 부정과 한계를 겪기 시작했고

셋째 달엔, 근육이 다 없어지도록 이불 속에 파묻혀 수분만 날려보내는 시체로 보냈다.

네번째 달에서야 비로소, 있을 사람도 갈 사람도 아닌 사람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 찾은 듯 했다.

나는 한국 사람이었지만 한국에서 날아본 적은 없는 성충이었고, 영국의 바람을 마음껏 가로지르지는 못하는 나비였다.

더 넓은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떠난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분명 그 나이 그 시기에 좋은 숲을 만났지만,

그 곳에서 돌아온 후에 여기는 지금의 내게 대륙이었고, 세상이었다.

반년 후 내가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반년후에 걸맞는 더 큰 시야를 가지게 되겠지.

런던의 바람을 가로지르는 일이 힘들었던 나는 따뜻한 집의 온기 속에서 지친 지난날을 위로하며 새로 날개짓도 배우고, 몇날 며칠을 비행할 힘도 길러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라는 질문에 가로막혀버렸다.

그것은 백일이 넘는 긴 시간동안 나를 옥죄여왔다.

3막 8장쯤이 시작됬을 이천십일년 시월부터 나에겐 '김신혜를 찾아라!' 라는 중대한 임무가 떨어졌다.

15장에 들어서도록 내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게 된 계기는 자기소개서였다.

그나마의 안도를 한다면 적어도 나는 비행 연습을 하기에 좋은 곳들을 몇군데 찾았다는 것이었는데, 간혹 그들은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자기를 소개하는 내용의 글을 쓰는 것을 더러 봐온 터라, 한국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시작하기 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더러, 어설프게 완성한 글을 제출하고서도 찝찝한 기분이 베여 지워지지 않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급하게 제출하고 난 나의 글엔 내가 없었다.

나의 이력서에도, 포트폴리오에도 나는 없었다.

이력서는 그들이 편견을 가지기에 가장 적합했고, 포트폴리오는 대조를 극대화 해줄 것이며, 자기소개서는 형식의 가려진 진실일 뿐이었다.

다만 이런 부족함 투성이인 내가 지원할 용기를 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다운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세가지로만 나를 평가할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걱정이 되었고 그것을 걱정하는 내 스스로를. 나는 이미 비웃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해왔다. 하지만 잘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표현하면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일들을 배우면서도 나는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를 표현하는 일보다, 저들이 알아줄까에 대한 의심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비로서 마지막 어세스먼트때 튜터가 내게 던진 불쾌하고 수치스러웠던 단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UNDERCONFIDENT'


나조차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자신이 없었다.

몰랐다. 내가 그런줄.

없는대로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했고, 아무데서나 내 이야기를 턱턱해댈 정도로 당당했다.

때론 재수없을 정도로 제 말이 옳기도 했고, 뭐가 그리 잘났다고 평가해대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나와 같은 경주를 하고 있는 평범한 이들 속에 어울리지 못할까봐, 뒤처질까봐, 혹은 외로워질까봐.

끊임없이 그들이 어떻게 볼지 눈치보며 그 편견에 두려워했다.

"내가 이상해보여도 이해해줘. 나는 너네랑 달라, 나는 특별해." 라거나.

혹은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봐, 그들이 보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돌연변이일까봐.

"나를 보여지는대로 보지말고 내가 부탁하는대로 시키는대로 나를 판단하고 대해줘야해." 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왔던 것 같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여, 솔직하고 마는 오류를 매번 저지르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어서 자신있고 마는 착각을 하게 했고,

당당하지 못해서 교만하고 마는 모순을 낳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라는 드라마에 주연인 적이 없었다.

스스로의 삶 속에선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느 신파 못지 않게 괴로운 순간들을 견뎌야 했고, 울기도 많이 울어야 했으며, 가련한 적도 있었고 뜻밖의 행운이나 우연을 마주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모든 일에 복선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것들은 일어났어야해서 일어난 일들이고 나는 장과 막이 거듭될 수록 변하고 자라왔다.

그러나 세상의 드라마는 달랐다. 그것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였다.

나의 인생 3막 8장에서 내가 만난 인생의 축소판은 내게 말했다. 1학년은 살아내는 법을 배우는 단계이며 2학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고, 3학년은 살아갈 준비를 하며 졸업 후, 우리는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몇막 몇장이 끝나야 내가 세상의 드라마 속 당당히 주연을 하게될런지 모르겠다.

이 또한 3막 15장, 1학년인지 2학년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내가 다음 비행을 위해 배워야하는 것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더불어, 수많은 갈등 속에 울며 웃을 드라마 속 조연들의 삶도 쉽게 지나쳐서는 안되는 것임을.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관대해져 수많은 번외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을 울릴 날도 오지 않을까.

살아내기에 바빠 진정한 솔직을 행하기엔 자신감이 부족했던 수많은 조연들을 응원한다.


인생은 조연이 주연인 것을 아무도 모르는 드라마다.


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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