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첫 도형수업에서 점이 모여지면 선이되고 선이 만나서 면이 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면이라는 납작하게 누워있는 공간의 크기를 재었고, 나이를 먹을 수록 앉아있는 면의, 서있는 면의 부피를 재었다.
담긴 것들의 종류에 따라 무게를 재었고, 제한된 공간 안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우리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배웠고, 학교가 끝난 후엔 세상이라는 공간에 적용시켰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방이라는 공간에서 쓸데없는 공상을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점이라는 것도 까만 것들이 가득 들어찬 작은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선이라는 것도 깡마른 까만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가느다란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나'라는 공간.
그걸 들어주고 앉아있는 '너'라는 공간.
공간의 사전적 의미 중에는 무언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 있다.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도 끊임없이 별들이 살아숨쉬고, 행성들이 제자리를 찾아 도는데,
이 세상에 공간이 아닌 곳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만의 공간을 소유하길 원하고, 공간을 팽창시켜 나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어떠한 장소에 앉아 숨을 쉬면서, 책을 읽고 있어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것은 내게 공간이 아니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제 허리를 못펴고 앉을자릴 찾지 못해 잠식해버린다면, 나는 그들에게 적합한 공간이 아니었던걸까.
집이라는 재미있는 공간의 합체는 다양한 역할들을 제공하고, 요구되기도 했는데
눈치보지 말고 한없이 외로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했고, 다른 곳에서 그 고독함을 위로받을 수도 있어야했다.
포만감을 선사할 공간이 있어야했고, 허기짐을 되찾아줄 수도 있어야했다.
생각들을 깨울 공간이 있어야했고, 다시 잠재울 수도 있어야했다.
얼마나 뛰어난 건축가여야 이 다양한 역할들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방'을 가져보지 못한 적이 있다.
공간의 부족함을 순간으로 위로하려하다가 슬퍼진적이 많았다.
순간의 찰나를 저장할 공간조차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중한 순간이 하루, 이틀을 머물다 원하면 제 집마냥 살 수도 있을 공간이 나는 지금도 너무나 간절하다.
세상 가장 화목한 집은, 공간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제 구실을 하는 곳이 아닐까.
행복한 순간들이 배가 부르도록 부풀어오르고
아팠던 마음들이 꾀병을 부리며 세상이라는 학교에 결석을 하기도 하고,
지친 생각들이 마음놓고 늦잠을 자기도 하는
내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 나를 다시 살게하는 그런 방.
옆방문을 두드리면 좋아하는 사람의 공간이 나오고 공간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온기를 나눌 수도 있는 그런 집.
돌아오고싶을 곳. 돌아올 수 있는 곳.
항상 따뜻하고 안심이되는 곳.
지금 많이 외롭다면, 많이 지쳐있다면 나의 공간부터 얼마나 건강한지 돌아봐야할때가 아닐까 싶다.
방법은 나도 잘 모른다.
아마도 좋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진열된 작은 선반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어린 배려 정도로도 가능한일 아닐까?
2013.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