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A Nonsense Song' by Charlie Chaplin
[1936년작 〈모던 타임즈〉는 그가 떠돌이 캐릭터로 등장한 마지막 영화이자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였다. 〈모던 타임즈〉는 미국의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부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인 1860년부터 1910년까지 약 50년간 급속한 산업화를 이뤘다. 찰리가 나사를 돌리는 똑같은 노동을 반복하는 장면은 채플린이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뒤 구상한 것이다. 그는 잠시도 쉴 틈 없는 공장 상황을 마임을 통해 생생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낸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나사를 조여야 했던 찰리는 작업을 교체한 뒤에도 나사를 조이던몸동작이 얼마간 몸에 남아 있는 상태를 보인다. 그는 한 차례 크게 몸을 털어준 뒤에야 제 패턴을 찾는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 역시 패턴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는 나사처럼 동그란 것들만 보면 조이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그의 눈에는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에 달린 단추들 역시 조여야 하는 나사로 보인다. 이를 통해 기계화 시대에 인간 역시 기계화 되어야 함을 마임을 통해 표현한다. 시대를 반영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표현도 눈에 띈다. 기계를 발명하는 회사인 벨로우즈 직원이 급식기계를 들고 공장을 방문한다. 벨로우즈쪽은 급식기계가 점심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급식기계는 손을 대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기계로 찰리는 이 기계의 실험 대상으로 뽑힌다. 기계에 머리를 대면 입의 위치에 맞춰 접시가 놓인다. 접시는 돌아갈 수 있고, 입을 벌리면 기계가 음식을 입속으로 밀어넣는다. 옥수수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각도를 기울여 수프를 먹여주며 입도 닦아준다. 그러나 결국 기계는 오작동을 일으켜 옥수수 기계는 찰리의 이빨을 갈아버리고, 수프는 찰리의 윗옷을 적시고, 입을 닦는 기계는 찰리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급식기계 장면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기계가 경우에 따라 비효율적일 수 있음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73072&cid=42621&categoryId=44422
1931년에 그는 한 신문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계는 인류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지 그것이 비극을 불러오고 일자리를 빼앗아가서는 안됩니다.” 나는 발달된 사회의 편리함에 되려 불편함을 느낀다. 너무 수고롭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건성으로 아무런 댓가없이 누려도 되는 지에 대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려 애쓰는 사람이다. 아마 편한것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인 것 같다. 불편함은 가치관과 이어진다. 너무 편하고 너무 쉽게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할때 나는 실업을 마주한 것만 같은 극심한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세상의 가치를 돈이라는 단위 안에 구겨넣어서 생각하고 싶지않다. 나라는 사람 안에 담아보아 결정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안에 넣어보고 얼마나 무거운지 어느정도 가득 차는지 등등을 고민해보고 따져보며 무엇을 가치있게 여겨야하는지를 판단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없는 불편함은, 내가 맞춰야하는 불편함이요. 내가 바꿀 수 있는 불편함은, 나에게 책임이 있는 불편함이렸다. 기계 문명의 사회를 받아들이고 뒤따라가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매순간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판단하려는 불편함은 감사한 책임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관한 얘기를 했다. 영원성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소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했고, 그것을 판단하는 우리의 능력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지금의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도 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는지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잡지가 언제까지 당신의 손에 들려있을지 모른다, 언제까지 당신의 책장 한 켠을 차지하고, 언제까지 당신이 함께 들어있는 CD를 들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당신의 머릿속에 이 이야기들이 오랜 시간 희미해진 영수증 위의 카드번호와 당신의 계좌에서 출금된 금액처럼 수년이 지나 까맣게 잊혀지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또 그의 연기처럼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이 선명히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기억이 되기를 원한다. 채플린은 1964년 75세의 나이로 자서전을 펴낸다. 그는 놀라우리만치 자신의 삶을 세세하게 기억하며 있는 그대로 글에 옮겨적었다. 그의 삶은 그가 남긴 이 한마디로 함축될 수 있다. “세상은 내게 최상의 것과 최악의 것을 동시에 선사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지 않은 일을 많이 겪었지만 나는 행운과 불운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종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 때문에 나는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일이 일어나면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기뻐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인생사 새옹지마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불편함은 지키려는 책임이 남아있다면 그 세상은 언제까지나 따뜻하고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