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 'Birds of a Featehr' by Mocky
우연히 날 좋은 마당의 울타리 넘어로 작은 새 한마리를 만났다. 한국에서의 참새와 꽤나 닮은 듯 했는데 그 이름모를 새는 꽤 오랜 시간을 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꺼내어 그 아이를 담아볼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했다. 첫번째 이유는 카메라를 꺼내려는 부산스런 동작에 그 아이의 머뭄을 방해라도 할까봐, 그래서 그렇게 홀연히 날아가버릴까봐가 아쉬웠고, 두번째 이유는 어떻게 예쁘게 담을까 고민하다 새와 나만이 존재하는 이 짧은 순간의 공간을 카메라의 전자파로 갈라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새를 몇 번이고 놓쳐본 사람은안다. 수많은 새들과의 숨 멎는 만남을 찰나의 아쉬움으로 바꾸어본 사람은 안다. 그 작은 새를 마주한 아주 사소한, 행운같은 순간 앞에선 오래 간직해야지하는 욕심따윈 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평생 보고싶다는 가치를 지금 충분히 만끽하는게 더 값어치 있는 일이라고. 순간의 행복과 기억의 가치는 언제나 현재여야 가장 크다. 그렇게 나는 떠나간 새들의 빈자리를 찍어왔다. 어쩌다 우연찮게 프레임에 잡힐지 모르는 새를 포착하여 그 깃털의 윤기와 눈동자와 부리 색깔의 조화를 간직하느니, 공기 한번 내 맘대로 들이마쉬고 내쉬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릴만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예술이 되었는지에 보면 그게 그림이 되었던 사진이 되었던 그 본질에는 '기록'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기록을 하기 위하여 발달된 도구와 방법들이 후에는 미를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수단이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문명과 결합하며 우리는 예전보다 더 격렬하게 존재에 가치에 대해 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피사체의 가치에 대해서 묻고 처음으로 제작된 회화의 가치에 대해서 묻고 그 모든 과정에서의 주체인 자신들에게 또 묻는다. 실내에서의 정적인 분위기, 머물 수 있는 사물, 그리고 사람만이 모델이 되던 시절을 지나 작가들이 야외로 나와 실외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바깥세상에서의 순간이란 허무하기가 짝이 없어서 뭐하나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 없다. 1초 사이에도 수십번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바뀌고 나뭇잎에 와닿는 햇살의 그 익어가는 정도가 다르다. 흩날리는 머릿결이 다르고 몸을 휘감는 옷자락이 다 다르다. 아마도 인상주의 시대부터의 화가들은 눈 앞에 머물러있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신 머무른 적이 있었던 그러나 잊고싶지 않을 정도로 찬란했던 순간을 마음의 기억에 의존하여 완성해 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치가 있었던 것은 바람과 공기와 빛이 만들어낸 아주 완벽한 순간, 그 속에 존재했던 피사체와 그것을 가치있다고 여기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지 짐작해본다.
그런 이들에게 사진기의 발달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미국의 여류 작가이자 사진과 현대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던 Susan Sontag(1933-2004)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진은 삶을 시간 순으로 몰래 관찰하는 수단이며 그것은 모든 것들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존재가 부재하기 전에 그 가치를 담아내려는 욕망이 발달시킨 새로운 수단이었지만 그것은 그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대신에 가치의 희소성을 무너뜨렸다. 어제의 나의 행복이, 수 초전의 아름다움이 너무 아쉬워서, 또 그리워서 그것을 오래도록 지니고 싶은 마음, 남들에게도 자랑하고 뽐내보고 싶은 욕심이 부재를 존재하게 만들었고 또 존재를 부재하게 만든다. 오랜 시간동안 신발 박스에 차곡히 쌓여갈 사진들 어딘가에서 나는 다시금 그 새를 만날 수 있겠지만, 당시 프레임에 곤두선 신경으로는 그 순간의 바람의 색깔이나, 공기의 온도, 햇볕의 기분 같은건 온전히 느낄수가 없다. 그 완벽한 시공간에서 피사체와 나와의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과, 공유되어지는 느낌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저 소유하기 급급한 마음만이 남는다. 그렇게 남은 사진에서 나는 그곳에 갔었노라, 그것을 보았노라라는 기억은 선명하게 되살려줄지 몰라도, 그곳에서 나는 어땟노라. 하는 감정의 부재는 소유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존재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진실성을 잃어가고 더이상 주체에게 행복을 주지도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사로잡지도 못하게 된다. 어떠한 것이 존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점점 옅어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아니 사실 그것은 단지 사진의 잘못은 아닐터이다. 더이상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된 주체가 만든 오류에서 시작된 것이겠지. 물론 이것은 눈의 기억을 종이에 옮겨담은 이들의 이야기이지 그 사진이 피사체로서 공유된 다른 이들에겐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끔은 그 자리에 없어야 할 것을 애써 다시 있게 하는 일보다, 그 곳에 있기를 바라는 것을 없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더 가치있게 존재하는 일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소중한 순간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