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3일 금요일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 매일같이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굳이 나의 연애 status가 달라졌음을 공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연애가 이어지는 동안 서서히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굳이 문자를 보내지는 않았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거나,
혹은 매일 연락을 하던 친구를 통해 매일 연락을 하지 않는 친구가 알게 된다거나.
그런데 꼭 그 연애가 끝나버리게 되면.
마치 의무처럼, 나는 나의 변경된 status를 공지해야 할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든다.
정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을 제하고는
내가 헤어졌음을 공표한다.
그들의 인식을 정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이상하게 의무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겠지.
아버지의 부고.
나의 인간관계 중,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애매한 사람을 제외하고, 인식에 정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같이 똑같은 문자를 보낸다.
- 아버지가 죽었데.
내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표현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들은 똑같이 내게 답장한다.
- 어?
- 너 괜찮니?
15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중에 단 두 명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준다.
나는 그게 참 고마웠다.
지금의 내가 고인에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류를 받은 날 저녁, 나는 팀장에게 곧장 이 사실을 말한다.
회사에는 그 간의 사연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이 딱 두 명이 있다.
팀장은 조의금이라도 꼭 받으라고 한다.
주택공사에 그의 사망을 재확인하고 다음으로 한 일은
회사 경영지원팀에 나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하기 어려웠기에 그간의 사정이 있어서 그의 부고를 이제야 접했다고 말한다.
그의 사망이 접수된 날은 1월 22일이라고 한다.
경영지원팀은 조의금 지급을 위해 사망진단서를 가져오라는 단 한 줄의 답장만을 보내온다.
몇 차례 메일을 하면서 사망한 직후 장례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회사에서 별도로 제공하는 휴가는 없다고 한다.
아무도 분주하지 않은 죽음이다.
아마도 나에게는 처리해야 하는 어렵고 복잡한 문서와 절차들이 있을지도 모를 테지만.
그 누구의 삶에도 이동이 없다.
어딘가로 향하거나 모이지 않으며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법한 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은 죽음이다.
아마도 내가 슬퍼 보이지 않으니, 누구도 슬퍼해주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슬퍼할 자신이 없으니
누구라도 슬퍼해주길 바라고 싶다.
내가 마주하지 못하는 슬픔들이 자꾸만 내 안에 쌓인다.
잠을 푹 자지 못한다.
밥을 잘 먹지 못한다.
숨을 잘 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출근을 하고 일을 한다.
나의 삶은 나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 하나 다를 것 없이 흘러간다.
나조차도 나의 슬픔을 모른다.
슬퍼 보이지 않는 나는, 내가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시간들을 보낸다.
원래도 없던 아버지가
아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