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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r 17. 2020

부고 일지 6일 차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부재의 부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삶으로 대변되는 일을 쫒으며 어김없이 하루를 살아낸다.

일로 대변되는 삶인 것이 더 나으려나,

오늘도 꼬박 12시간을 넘게 일을 한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4시간만 머리를 대고 나면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일어날 기운도 없는 것이 잠들 기운도 없어

잠에서 채 깨기 전부터 각성되어 있다.


맥에서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확인할 수 없다.

오늘 내가 회사를 향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 것이 있다면

바로 회사의 공용 컴퓨터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라거나.

서류에는 사인과 신고자, 사망신고가 접수되기까지의 절차들까지도 나와있는 상상을 한다.

나는 궁금하고 싶은 걸까, 궁금하지 않고 싶은 걸까.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라도 품었던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믿고 싶어 한 기억이 없다.

(망)이라는 표기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사망을 떠올릴까

그저 어디까지나 '잊혀진' 상태임을 나타내는 말로 해석하고 싶어 질까.


가족관계 증명서는 명료하다.

이번엔 '사망'이라는 글자가 박스 안에 들어있다.

이것저것 발급해볼 법한 서류가 있는지 뒤져본다.

가족관계 증명서의 모든 칸들을 눈으로 뒤져본다.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는 모든 칸에는 사망이라는 단어가 네모난 박스 안에 들어있다.


서류를 2부 프린트한다.

조의금을 받기 위해서, 또.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중이라는 담당자는 수요일이나 되어야 제출하러 오라고 말한다.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는, 

업무 상의 수많은 단어들에 뒤섞여 흩어진다.

그렇게 흩어질 수 있는, 무게도 없는 감정에 젖지도 않는 단어일 뿐이다.


시간이 없어서 미뤄만 오던, 처리해야 할 문서가 또 하나 있었다.

아버지와는 무관한, 아버지의 소식을 알기 전부터 숙제처럼 남아있던 서류였는데

보이질 않는다.

나의 성격에 분명히 사본이며 원본이며 고이 한 군데 모셔뒀을 건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집에다 가져다 두었을까.

짐을 챙긴다.

생수를 두 통 사서 택시에 오른다.


분명히 내일 아침이 되면 서류를 찾는 것을 잊어버리겠지.

나는 옷을 훌러덩훌러덩 바닥에 벗어던지고,

회사에서부터 찾던 것을 계속 찾는다.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다.

아.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나는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대출을 알아보며 떼 두었던 이런저런 서류들이 보인다.

가족관계 증명서다.

발급일이 1월 9일이다.

그의 사망이 접수되기 2주 전.

그의 이름 앞에는 아무런 수식이 없다.

사망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네모난 박스가 없다.

이때까지도, 그는 살아있다.

이때까지도, 몇 주 후 자신의 이름 앞에 사망 박스가 붙으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이때까지도, 몇 달 후 자신의 딸이 자신의 이름 앞에 사망 박스가 붙은 것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언제 코 없었던 그가

여전히 없다는 것보다도

언젠가는 있었다는 사실이 아주 조금 실감이 난다.


1월 9일의 가족관계 증명서와

3월 16일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나란히 두고 볼 수 없다.


나의 세상에서 늘 부재였던 이가

이 세상 어딘가 존재했었다는 것만으로

이제는 나의 세상 밖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줄 것만 같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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