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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믐 Mar 20. 2020

부고 일지 7일 차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배가 너무 아프다.

배를 자주 아파본 사람은, 미묘한 고통에도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배는 명백한 신경성이다.

화장실에 생리적으로 갇혀있는 동안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지나버린다.

화상 미팅이기는 하지만, 회사에 어서 도착해야 할 텐데.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다.


차를 이용하면 한강을 꼭 가로질러야만 한다.

오늘은 황사가 좀 있는 듯하다.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노라면 한강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앉는 자리가 한강보다는 차도에 가깝기 때문일 테다.

출근길의 한강은 퇴근길의 한강보다는 한 뼘 더 가깝다.

곳곳에 개나리 나무들이 보인다.

개나리 나무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노란색 꽃망울들이 봄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


2년째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낸다.

작년엔 추위를 미세먼지와 맞바꾼 것만 같고

올해는. 미세먼지가 없어서 감사하지만 이리도 춥지 않음은 분명 온난화 때문일 게다.

춥지 않은 겨울이 지날 때면, 내가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정녕 그 겨울에 충실했는가.

이전의 어떤 겨울은 추위가 너무 극심하여 충실하다 못해 목이 빠져라 봄을 기다린 적도 있다.


2년째 나는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혹은 겨울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은 채

나보다 계절이 더 빠르게 옴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나간 시간 속의 나는 계절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를 도모하곤 한다.

그래서 종종 감기에 걸리기도 하지만..


일요일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안심 상속 원스탑 서비스는

매일매일 내게 새로운 상속 뉴스를 전해주고 있다.

토지나 자동차가 없었던 사람.

오늘은 대부업 기관에서 문자가 온다.

이렇게 나는 지난 17년간의 그의 삶을 추측해본다.

써놓고 보니 참 짧았던 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고작 13년, 그와 떨어진 시간이 2년, 그를 모르고 산 게 15년.

우리의 인연은 고작 30년짜리다.


오늘은 시에서 제공하는 무료 법률 상담 예약이 잡혀있다.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지긋하신 변호사분에게 전화가 연결되었다.

간단한 상황을 말씀드리고.


누군가에게 같은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놀라우리만큼 축약되는 현실이 잔인하다.

그렇게 축약해버린, 나에게 일어난 이 일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으로 해야 할 말을 잃는다.


나의 세상을 떠났던 아버지가 이 세상도 떠난다.

나는 2달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1순위 상속인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의 사망에 대하여 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나의 경우 상속개시일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날이 아닌, 내가 이 소식을 접한 날부터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에게는 3개월의 시간이 생긴다.

그의 지난 삶을 내가 모르고, 이로써 내가 상속인임이 공공연하게 밝혀졌을 때에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상속을 받기로 한다면, 이마저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웬만하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당신은 변호사여서 절차나 필요한 서류들은 잘 알지 못하고, 이런 경우 법무사를 쓰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예약된 시간은 한 시간이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15분으로 끝이 난다.

나는 서둘러 지인들에 괜찮은 법무사가 있는지를 묻는다.


나와 엄마의 삶이 넉넉하지 않을수록

행여나 그가 기적처럼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는, 결코 그러지 못할 사람이다.


또다시 13시간짜리 출근을 끝마치고 침대에 누워보지만 곧바로 잠에 들 것 같지 않다.

나는 왜인지. 오늘은 조금 울 수 있을 것 같다.

소리 내어 울 종류의 슬픔은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변호사의 말에 긴장을 조금 놓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힘을 꼭 주고 있었나 보다.

더한 충격들이 와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음을 깨닫는다.

마치 변호사가 여기까지 알게 된 사실들을 이만 받아들여도 된다고 허가를 해 준 것만 같다.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기에, 아무거나 기억해본다.


세 살인가 다섯 살인가 엄마는 아빠 보고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라며 등을 떠밀어 놀이터를 내보낸다.

아빠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내게 무어라 말을 하고 나는 아마도 엄마에게 그것을 쪼르르 말한 것 같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낸다.


초등학교 때 내내 집에서 시간을 보냈던 아빠는 늘 내가 끝날 시간에 나를 데리러 온다.

대부분 그가 푹 빠져있던 신앙에 대한 이야기나, 어떻게 하면 엄마를 화나게 하지 않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야한 영화를 보다 어린 내게 들킨 적도 있다.


그는 매일 등교하기 전의 나를 한쪽 무릎에 앉혀놓고 기도를 해준다.

기도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닦달로 내게 가끔씩 수학을 가르쳐주거나 글 쓰는 것을 봐준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의 글씨체가 멋있는 편이었다는 것만 떠오른다.


아빠는 머리숱이 적어 인조 모발의 도움을 받곤 했는데

양면테이프를 길게 2개, 짧게 1개를 잘라서 붙인다.

기억 속의 나는 반대쪽 끈적이는 부분을 덮고 있는 하얀색 종이를 떼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가끔 내게 작은 집게를 건네주면서 등의 털을 뽑아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생각보다 그 일을 재미있어한다.

그 작은 집게를 나는 여전히도 가끔 유용하게 쓰고 있다.


아빠는 몇 차례 내게 배드민턴이나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는데,

결과는 실패다.


아빠가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지켜본다거나, 무언가에 대하여 칭찬을 해준 기억은 없다.


아빠가 집에 있게 된 이레로 엄마는 집안일과 가계를 맡긴다.

엄마가 화를 내면 아빠는 늘 아무 말 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만 있다.

엄마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화를 내어서야 아빠는 점점 요리도 하고 청소나 빨래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아빠는 고등어조림과 콩나물과 느타리버섯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아주 잘 만들게 된다.


내가 아주 작았던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나는 아빠의 품 안에 들어가 앉아있는 장면이 많은데

그렇다고 딱히 아빠의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거나

내가 아빠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은 없다.


기억들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행복했던 느낌이 없다.

나는 부고를 들은 이후, 두 번째로 아주 잠깐 운다.


그의 부재에 대해서 나는 이미도 많은 시간을 울어버렸다.

그렇게 울어버리며, 그의 존재에 대해서 나는 많은 기억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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