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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의 외출 1

연꽃 보러 가자

by 가을웅덩이

"연꽃 보러 가자"

단톡방에 올라온 문자 뒤로 환호의 이모티콘이 뒤 따라 이어졌다. 연꽃이 주인공인 계절이다. 코로나가 지나고 여기저기 조성된 꽃잔치는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한낮의 기온이 뜨거운 여름이면 연꽃을 만나러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울산 회야댐 생태 습지에 피는 연꽃은 한시적으로 하루에 정해진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다. 매년 7월 초에 예매가 시작되는데 올해는 시기를 놓쳐서 며칠 지나서야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이미 매진된 데다 시간대 별로 대기자 수도 모두 차 있었다.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울산시청 홈페이지를 닫았다.


부산 사상에 있는 삼락생태공원에도 매년 연꽃이 피고 있다. 친정어머니의 바람으로 세 자매가 시간을 내어 연꽃 구경을 가기로 정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우선,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차편을 네이버 길 찾기로 알아보니 울산태화공항버스를 타고 김해 공항 국제선에 내린 후 경전철을 타고 사상역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배차 시간과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고 짐을 챙겼다.


부산, 양산에서 각각 출발해 사상역에 모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건 여동생과 친정 부모님이었다. 딸 셋이 모인다고 하니 아버지도 함께 동행하셨다. 내가 도착하고 10분 정도 흐른 후에 언니가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3번 출구로 나온 후 사상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괘법르네시뜨역까지 경전철 아래로 펼쳐진 그늘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온은 31도였지만 그늘인 데다 바람까지 불어서 생각보다는 덥지 않았다. 역을 지나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날 때는 양산에 햇빛을 가렸지만 등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강을 지나니 연꽃 단지가 보였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연꽃은 이미 많이 피고 졌는지 연밥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보드라운 연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연꽃 단지 가운데 정자가 있고 그 주변에는 호수가 있었는데 수련이 가득 피어 있었다. 흰색, 분홍색, 연한 자주색으로 구분 지어 피어 있어서 오히려 그곳에 더 눈길이 갔다.


정자에 앉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몸을 식히는 동안, 까마귀 한쌍이 중앙에 우뚝 선 나무 위에 앉아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하나 사이로 문명과 자연이 나뉘어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하기도 했다. 올해 연세가 여든두 살이신 친정 부모님은 걸음이 조금 느려지셨지만 지치지 않고 걸으셨다. 굽어진 다리와 어깨, 희어진 머리카락, 마른 손을 보며 한동안 뵙지 못했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모이기가 쉽지 않다며 아버지는 카페를 두 군데나 가면서까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5시 30분이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의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연꽃을 보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출발했던 하루가 부모님과 지나온 시절들을 이야기하며 세 자매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으로 바뀌는 마법의 시간이다. 웃으며 옛말 하는 시간이었다. 네 여자의 외출에 함께 발을 들여놓았던 아버지는 사진들을 엮으며 좋은 추억으로 핸드폰에 담아 두실 것이다. 그 추억은 네 여자들의 마음에도 한 편의 그림이 되어 어느 날 들여다보며 웃음을 지을게다. 분홍빛을 살짝 머금은 뽀얀 연꽃처럼 수줍은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되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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